짜배기유머 > 고사성어 > 중국역사 > 흉노(匈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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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세기경부터 기원후 1세기 말까지 몽고 고원과 만리장성 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유목기마민족. 

흉노족은 터어키계, 몽고계, 아리아계 등의 설이 있으나 터어키계의 설이 유력하다. 진(秦)의 통일국가 형성 무렵, 흉노의 연제족의 두만(頭曼)선우가 몽고 고원의 여러 부족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아들 묵특이 자기 부친을 죽이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묵특은 남만주의 동호(東胡), 북방의 정령(丁令), 예니세이강 상류의 키르키즈를 정복하고 서쪽의 월지(越氏)를 격파하여 북아시아 최초의 유목국가를 세웠으며 이어서 산서성 북부에 침입하였다. 

이에 한 고조 유방이 직접 출진하여 싸웠으나 백등산(白登山)에서 묵특에 포위되어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후, 한나라 왕실의 딸을 선우의 아내로 보내고 매년 많은 견직물, 술, 쌀 등을 보낼 것을 조건으로 화의(和儀)를 맺었다. (기원전 198년). 

그 후로도 흉노는 중앙아시아 쪽으로 세력을 떨쳐, 그 결과 흉노의 지배권이 동은 열하(熱河)로부터 서쪽으로는 동터어키, 북쪽은 예니세이강, 그리고 남쪽으로는 오르도스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한무제(漢武帝 기원전 141~87)에 이르러 흉노에 대한 적극적인 공격에 의해서 흉노는 점차 그 세력이 위축되었으며 또한 이 틈을 타 정령, 선비족 (鮮卑) 족 등이 독립하여 나갔다. 
 
뿐만 아니라 흉노에서도 내분이 일어 서흉노(질지 선우)와 동흉노(호안아 선우)가 대립하였다(기원전 54년). 그 뒤 호한아는 항복하였고, 질지는 키르키즈 고원으로 쫓겨났다가 한의 군대에게 살해되었다(기원전 36년). 

그 후 흉노는 호한아를 중심으로 부흥하였으며, 한나라와의 관계도 평온을 되찾았다. 그러나 재차 내분이 일어 남흉노와 북흉노로 분열하였다. 
 
남흉노는 감숙, 산서, 섬서 지방에 나뉘어 살면서 점차 중국화되어 갔고 북흉노는 때때로 중국에 침략하기도 하였으나 선비(鮮卑)의 공격을 받고 선우가 살해되었으며, 후한과 남흉노의 연합군이 그 본거지로 쳐들어감으로써 대패하였고 이로써 몽고 고원에서의 흉노국가는 사라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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