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明)은
원(元)대의 이민족 제도를 폐지하고 중국 고유의 제도로 돌아간다는 복고주의적
방침 아래 적극적으로 내정개혁에 착수했다. 이러한 개혁들을 통해 명조는 중국사상
더욱 강화된 중앙집권에 의한 군주독재체제를 확립했다.
명 태조는 전지측량과 호구조사를 실시하고 이갑제(里甲制)를 실시하는 등 농업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그러나 3대 성조 이후 기강이 문란해지고 관료의 당쟁과 환관의 전횡이 심했다. 15세기에는 서몽고의 오이라트가 침입했고, 토목(土木)의 변(變)에 이어 타타르의 침입으로 국세가 심히 위축됐다. 1644년 만주를 근거지로 한 만주족(옛 이름은 여진족) 왕조인 청(淸)이 쳐들어와 중국을 점령함으로써 명(明)나라는 멸망했다. 왕조의 잔여 세력이 장강(長江 : 양자강) 이남에서 전후로 복(福), 당(唐), 노(魯), 계(桂) 등의 왕조를 세웠는데 이를 남명(南明)이라고도 한다. 명조의 관제를 보면 중앙은 원(元)제국의 정치체제를 모방하여 중서성(中書省)
과 6부를 설치했으며, 지방제도는 전국을 15성에 구분하여 각성에 재정기관인
승선포정사(承宣布政司)와 사법기관인 제형안찰사(提刑按察司)를 설치하여 각각
소관업무를 맡도록하고 때에 따라서 임시로 총독 혹은 순무(巡撫)를 파견하여
군사와 민정을 독려하는 일도 있었다.
학문적으로는 왕수인(王守仁)이 제창한 양명학(陽明學)이 많은 지지를 받았다. 원대의 문학은 희곡(戱 )이 발달한 반면 명대에는 소설(小說)이나 문학비평 (文學批評)이 사회 전반에 큰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
| 격물치지
格物致知
농 락 籠絡 |
발본색원 拔本塞源 | 주 마 등 走 馬 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