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동 김씨의 60년 세도 정치는 왕권을 극도로 약화시켰으며, 그것은 곧
사회의 혼란과 불안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일본과 서구 열강이 점차 조선을
압박해오고 있었다. 고종은 이 같은 어려운 시기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몰락해가는 왕조와 풍전등화와 같은 국가를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수난과
고통 속에 외세에 의해 강제로 퇴위당하고 만다.
조선의 마지막 국왕으로서 34년(1863-1897), 대한제국의 황제로서 10년 (1897 - 1907), 통산 44년간 군주의 자리에 있었다. 고종은 1852년 남연군의 아들 흥선군 이하응과 여흥부대부인 민씨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아명은 [명복], 자는 성임이다. 이후 헌종의 모후 조대비에 의해 익성군에 봉해지고 1863년 12월 조선 제26대 왕으로 등극했다. 이때 그의 나이 12세였다. 고종은 명성황후 민씨를 비롯하여 7명의 아내에게서 6남 1녀를 얻었는데, 명성황후 민씨가 왕자 척(순종)을 낳았으며, 귀비 엄씨가 영친왕을, 귀인 이씨가 완화군을 비롯 2남을, 귀인 장씨가 의친왕을, 귀인 정씨가 1남, 귀인 양씨가 덕혜옹주를 낳았다. 고종이 왕위에 오를 당시 조정은 안동 김씨의 손아귀에 있었다. 그들은 순조 이후 반세기 이상을 계속해서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태였는데, 헌종의 어머니이자 효명세자(익종)의 부인인 신정왕후 조씨는 이 같은 권력 구도를 깨뜨리기 위해 남연군의 아들 이하응(자는 시백, 호는 석파)과 결탁하여 그의 아들 명복을 왕위에 앉히게 된다. 둘째 아들 명복을 즉위시키기 위한 이하응의 계략은 치밀했다. 안동 김씨 세력의 경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건달들과 어울려 지내는가 하면, 안동 김씨 가문을 찾아다니며 구걸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호신책 덕분으로 목숨을 부지한 그는 철종의 죽음이 임박하자 익종비 조대비와 연줄을 맺어 자신의 둘째 아들 명복을 왕위에 앉히려 한다. 조대비 역시 그와 마찬가지로 안동 김씨의 세도에 짓눌려 지내던 처지였기에 이하응과 뜻을 같이하게 된다. |

| 【오페르트 도굴사건, 고종5년(1868)】
독일의 상인, 항해가 Oppert, Ernst Jacob(1832∼?).
|
| 【운요호 사건, 고종12년(1875)】
1875년(고종 12년)에 일본의 군함 운요호(雲揚號)가
경기만에 불법으로 침입함으로써 일어난, 강화 수비군과 일본군과의 충돌 사건.
강화도 사건이라고도 한다.
|
| 【강화도 조약, 고종13년(1876)】
1876년(고종 13년)에 우리 나라가 일본과 맺은 불평등
조약(江華島條約).
|
| 【수신사 파견, 고종13년(1876)】
조선 말기에 일본에 보내던 외교 사절. 본래 통신사라고 하던 것을 강화도 조약 이후 양국이 대등한 처지에서 국교를 행한다는 뜻에서 수신사(修信使)로 고쳐 불렀다. |
| 【신사유람단 파견, 고종18년(1881)】
1881년(고종 18년)에 일본에 파견하여 새로운 문물
제도를 보고 오게 한 시찰단 (紳士遊覽團).
【영선사 파견, 고종18년 (1881)】 조선 말기에 근대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청나라에
파견된 사절(領選使).
【만인소 사건, 고종18년(1881)】 많은 유생들이 상소를 올려 정부의 시책을 비판한
사건 (萬人疏事件).
|
| 【우정국 사건, 고종21년(1884)】
조선 말기의 체신 관청(郵政局).
|
| 【거문도 사건, 고종22년(1885)】
1885년 4월부터 약 2년간 영국의 동양 함대가 전라
남도 거문도(巨文島)를 불법 점령한 사건.
|
| 【방곡령 사건, 고종26년(1889)】
1889년(고종 26년)에 내려진 곡식 수출 금지령, 방곡령(防穀令).
|
| 【교조 신원운동 敎祖伸寃運動, 고종29년(1892)】
조선 말기에 동학 교도들이, 억울하게 처형당한 교조
최제우의 죄명을 벗겨 줄 것을 정부에 요구한 운동.
|
| 【동학운동 東學運動, 고종31년(1894)】
1894년에 전라도 고부군에서 동학 교도들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중 운동.
|
| 【아관파천 俄館播遷, 고종33년(1896)】
고종 황제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겨 1년을
지낸 사건.
|
| 【만민공동회 萬民共同會, 고종35년(1898)】
1898년 3월에 독립 협회 주최로 열린 민중 대회.
|
| 【용암포사건 籠岩浦事件, 고종40년(1903)】
1903년(광무 7년) 러시아가 한·만 국경의 요지인
용암포를 불법으로 점령한 뒤 조차를 강요한 사건.
|
| 【국채 보상 운동 國債報償運動, 고종44년(1907)】
일본에 진 빚을 국민의 힘으로 갚아 경제적으로 독립하자는
운동.
|
| 【헤이그 특사사건 Hague特使事件, 고종44년(1907)】
1907년(광무 11년)에 고종 황제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 평화 회의에 이상설, 이위종, 이준을 비밀리에 보내어 을사조약의 불법성과
일본의 무력적 침략의 부당성을 주장하려던 사건. 헤이그 밀사사건이라고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