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승건(承乾). 휘(諱) 무(武). 시호 의공(義恭). 태조의 큰아들. 어머니는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 비는 대광(大匡) 임희(林曦)의 딸 의화왕후(義和王后).
호장(豪壯)한 기질로, 태조를 따라 후백제를 쳐서 공을 세웠다. 944년 대광(大匡) 왕규(王規)가 광주원군(廣州院君)을 후사로 세우려고 왕제(王弟)인
요(堯:定宗)와 소(昭:光宗)를 무고하여 왕의 형제간을 이간하고, 여러 차례
왕을 시해하려 하였다. 그러나 이를 처치하지 못하고 항상 신변보호에 힘쓰다가
병으로 죽었다.
고려 초에 왕규가 일으킨 반란 사건. 고려 태조(왕건)는 지방의 호족들을 회유하기 위하여
일종의 결혼 정책을 통해 이들과 인척 관계를 맺었다. 광주의 호족 왕규도 그의
두 딸을 태조의 제15비와 제16비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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