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지단(之旦). 초명 흔(昕). 이름 호(晧). 시호 광효(光孝). 인종의 셋째아들,
의종의 동생. 비(妃)는 김온(金溫)의 딸 의정왕후(義靜王后).
1148년(의종 2) 익양후(翼陽侯)에 책봉되고, 1170년 의종을 몰아낸 정중부(鄭仲夫) 등의 추대로 즉위하였다. 무신의 집권 뒤 그들의 횡포가 과거의 문신보다 더 심하여, 사회질서 혼란을 초래하고 전국 각지에서 농민반란이 자주 일어났다. 김보당(金甫當)·조위총(趙位寵) 등이 무신 제거를 위한 난을 일으켰으나, 모두 실패하였다. 1197년(명종 27) 실권자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 능은 지릉(知陵)이다. 【김보당의 난, 명종3년(1173)】 고려 시대의 문신인 김보당 (金甫當 ?∼1173)은 1173년 동북면 병마사로 있을 때 군사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정중부, 이의방 등을 물리치고 전왕인 의종을 왕위에 복위시키고자 군사를 일으켰다 (김보당의 난). 그러나 정중부가 보낸 이의민, 박존위에게 체포되어
처형되었다. 그는 체포된 뒤 죽으면서 "문신으로서 이 모의에 가담하지 않은
자가 없다." 고 말하여 많은 문신들이 처형당하였다. 이를 계사의 난이라고
한다.
고려 중기의 문신 (趙位寵 ?∼1176). 병부 상서로 서경 유수를 겸하고 있을 때인 1170년(의종 24년)에 정중부, 이의방 등이 정변을 일으키자, 1174년(명종 4년)에 절령 이북 40여 성의 호응을 얻어 난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앙군의 총공세로 위기에 몰리자 금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지원병을 요청했으나 실패하였고, 1176년(명종 6년) 서경이 함락된
뒤에 처형당하였다.
고려 무신 정권하에서 일어난 천민의 저항 운동 가운데 가장 규모가 컸다. 이들은 공주를 점령한 후 북진하여 1년 반 동안 청주와 아산 등 충청도 일대와 경기도 남부까지 휩쓸었다. 정세유가 이끄는 토벌군에 의해 진압되었지만, 이 난을 계기로 정부는 향·소·부곡 등 천민 거주 지역을 군현으로 승2격시키는 등 천민의 요구를 정치에 반영하게 되었다. |
| 【최충헌 崔忠獻 (1149~1219)】
고려 무신정권기의 집권자.
1174년(명종 4)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벌, 별초도령(別抄都令)에
올랐다.
1197년 충성좌리공신(忠誠佐理功臣)에 봉해졌다.
그러나 왕이 봉사십조를 이행하지 않자 창락궁(昌樂宮)에 유폐시킨 뒤 평량공(平凉公)
민(旼:神宗)을 왕위에 앉히고 정국공신(靖國功臣) 삼한대광대중대부(三韓大匡大中大夫)
상장군주국(上將軍柱國)이 되어 최씨 무단정권을 확립했다. 같은 해 딸을 태자(太子:熙宗)의
비(妃)로 만들려는 동생 충수와 대립, 충수를 죽이고 독재정권을 더욱 강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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