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일신(日新). 휘(諱) 정(禎). 이름 식(?. 초명 전. 시호 순효(順孝).
고종의 맏아들. 비(妃)는 김약선(金若先)의 딸 순경태후(順敬太后).
1235년(고종 22) 태자에 책봉되고, 1259년 강화를 청하기 위하여 표(表)를 가지고 몽골에 갔다. 고종이 죽자 1260년 귀국 즉위하였다. 개경으로 환도하려다가, 1269년 임연(林衍)에 의해 폐위되었고 원나라의 문책으로 다시 복위되었다. 최탄(崔坦) 등이 서경(西京)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몽골에 투항하자, 몽골은 서경에 동녕부(東寧府)를 두었다. 그 해 몽골에 갔다가, 1270년 귀국하여 개경 환도를 선언하자 배중손(裵仲孫)을 중심으로 삼별초 (三別抄)의 난이 일어났으며, 1273년 여원(麗元) 연합군에 의해 평정되었다. 탐라에 다루가치총관부[摠管府] 를 둔 원나라로부터 일본정벌을 위한 전함 300척을 만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원나라에서 매빙사(妹聘使)가 오자 결혼도감(結婚都監)을 설치, 원성을 샀다. 능은 소릉(韶陵)이다. 【삼별초의 난 三別抄之亂, 원종11년(1270)】 강화도에 있던 삼별초가 몽고의 세력에 저항하여
일으킨 반란.
이에 삼별초는 몽고의 공격을 예상하고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1,000여 척의 배로 강화에 있는 가족들과 재물을 싣고 남으로 내려가 진도를 대몽 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다. 배중손이 지휘하는 삼별초군은 남해 일대의 제해권을 잡았으나, 관군과 몽고군에 밀려 일부는 달아나고 일부는 탐라(제주도)로 들어가 저항하였다. 조정에서 회유책을 써 보았지만 그들은 끝내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연합군의 탐라 공격으로 결국 삼별초는 항몽 정신만 남긴 채 저항하다가 진압되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