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bKorea > 인간의 처세술 > 유비와 제갈공명의 인간적인 매력

인자한 군주와 청렴결백한 정승

 유비가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선인으로 꼽히는 것은 소설 <삼국지연의>의 덕분이다. 이 책은 명나라 시대의 작가 나관중이 쓴 것으로 유비가 한나라 왕실과 같은 성씨(姓氏)였으므로, 촉한을 정통파로 하고 촉나라 사람들을 모두 정의의 인물로 묘사하였다. 한편 논션션인 정사(正史) <삼국지>는 서진(西晉)의 역사 자료 편집관이었던 진수(陳壽)가 정리한 것이다. 진수는 원래 촉나라 출신으로, 부친은 유명한 장군 마속의 막료였다. 역사적인 사실은 그대로 서술했지만, 옛날의 주인이었던 촉나라나 유비에 대해서 그리움을 느끼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싶다. <삼국지>에 주석을 붙인 남북조의 역사학자인 배송지(裵松之)도 유비에 대해서는 일종의 동정감을 가졌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통을 이어서 배양된 유비의 인간성은 당연히 정평있는 선인으로서 묘사되고 있다. 

 1. 비극의 주인공이기는 했지만, 역사상 드문 인자한 군주였다.

 2. 한나라 왕실의 혈통을 잇는 봉건시대에 있어서는 절대적인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3. 막연하지만 사람을 매혹시키는 불가사의한 흡인력을 지니고 있었다. 때문에 적대시하는 사람보다도 좋아하는 사람의 편이 많았다. 

 4. 포용력이 크고, 절대적으로 믿는 부하에게는 대폭적으로 권한을 부여하며, 일체를 맡겨 두었다. 

 5. 항상 태연자약하고, 조금도 서드르지 않는 대인의 인품을 갖추었다. 

 6. 무력, 재력, 재능, 전략의 면에서는 조금 뒤떨어지지만, 막후 공작이 특기이며 농간과 수단에 능란했다. 

 말하자면 '허점 투성이'의 타입이지만 처음에 말한 것처럼, 선인의 대표격으로 간주되고 있다. 

 제갈공명은 군사(軍師)와 정승으로서, 일생을 촉나라에 봉사한 인물이다. 그가 역사상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인간상의 덕분이다. 

 1. 27세에 출사한 후, 54세로 세상을 마감하기까지 전신 전령을 주군인 유비와 그가 남긴 아들 유선에게 몽땅 바쳤으며, 절대로 두 주군을 섬기려 하지 않았다. 이합 집산이 일상적이며, 보다 우수한 주군에게로 옮겨 다니며 일신의 영화를 꾀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던 봉건시대의 중국에서는 제갈공명과 같은 인물은 희귀한 예이다. 

 2. 불세출의 전략의 천재로서 약한 촉나라를 이끌고, 강대국인 위나라와 오나라에 대등하게 임하여 싸웠다. 그의 전략과 작전, 또는 발명했다고 전해지는 무기나 군수 자재는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3. 군의 통솔에 즈음하여서는 신상필벌로 관철하였다. 특히 가장 사랑하던 부하인 마속을 울면서 목을 베어, 제갈공명의 대의, 사심이 없는 통수력은 세상 사람들의 귀감이 되었다. 

 4. 몸가짐이 청렴결백하며, 항상 병사나 서민과 같은 행동을 취하고, 절대로 뇌물을 받는다든지 하는 오점을 남기지 않았다. 이것도 중국의 관료로서는 드문 일이다. 

 5. 인정미가 풍부하면서도 무서운 장군이었다. 판가름을 해야 하는 결정적인 시기에는 '무서운 귀신'이 되었지만, 반면에 인정미 넘치는 장군으로서 하급 병사나 백성, 서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결점으로서는 , 후계자의 육성에 소홀했다는 것과 작전상 후퇴의 시기가 적절치 못했다는 점이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