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기(Le
drapeau tricolore)로 불리는 프랑스의 국기는 자유·평등·박애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삼색기는 1789년 프랑스혁명 당시 바스티유를 습격한 다음날인
7월 15일 국민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된 라파예트가 시민에게 나누어준 모자의
표지 빛깔에서 유래하였다. 나폴레옹 1세가 워털루전투에서 패한 후 한때 사라졌다가
1830년 다시 라파예트에 의해 등장하였다.
원래는 깃대 쪽에 빨강이 있었는데, 1794년 국기로 공식 제정하면서 현재의 배열로 바뀌었다. 원래는 3색을 시각적으로 같은 크기로 보이게 하기 위하여 3객의 비율을 30:33:37로 불균등하게 나누었는데, 1946년 3등분으로 고쳤다. 절대왕조(絶對王朝)에 대항하여 일어난 시민혁명을 표상한 이 삼색기는 국민주권(國民主權)의 상징으로 세계 여러 나라에 널리 알려졌다. 그 후 유럽에서는 절대왕조가 붕괴되고 속속 시민국가가 탄생하였는데, 이렇게 탄생된 시민국가의 국기 중 대부분은 프랑스 3색기의 영향을 받아서 제정된 것인데, 아일랜드의 국기가 그 좋은 예이다. 일찍이 영국에 대항하는 독립투쟁을 계속해 오던 아일랜드에서는 1848년 젊은 혁명지도자 T.F.메가가 프랑스로부터 녹색 ·흰색 ·오렌지색의 3가지 빛깔로 된 3색기를 가지고 돌아와서 국기로 하자고 주장한 일이 있으며, 그 해 프랑스의 2월혁명을 축하하면서 프랑스의 3색기와 함께 이 기를 전국에 게양하였다. 그 후 계속해서 이 기는 독립운동의 상징으로서 사용되어 오다가 1937년 독립선언과 함께 정식으로 국기가 되었다. 녹색은 가톨릭, 오렌지색은 프로테스탄트, 흰색은 양자의 결합과 우애를 표시한다고 한다. 그 밖의 나라에서도 그 나라 전통의 빛깔이나 국민들이 좋아하는 빛깔을 이용하여 3색기를 만들거나, 아니면 그 나라 독자적인 도안에다 프랑스 국기의 3색인 파랑 ·하양 ·빨강의 빛깔을 사용해 국기를 만들기도 하였다. 또한 프랑스 3색기는 유럽뿐만 아니라 중근동(中近東) 및 중남미(中南美) 여러 나라에까지 크게 영향을 끼쳐 19세기 중기와 후기에는 식민 본국에 대한 독립투쟁의 상징으로서 3색기의 3가지 빛깔을 가지고 자국의 국기를 만든 나라들이 많다. 아시아에서도 프랑스 3색기의 영향을 받았는데, 타이가 그 좋은 예이다. 타이는 근대화된 많은 나라들이 3색기를 사용하고 있는 데 자극을 받아 종래까지 사용해 오던 국기 대신 파랑 ·하양 ·빨강의 3가지 빛깔로 된 현재의 국기를 가지게 된 것이다. 한편, 신흥 아프리카 제국(諸國)의 국기들도 3색기를 가지고 있는 근대시민국가 또는 독립 전 그들을 지배하고 있던 본국 국기의 영향을 받아 제정된 것들이기 때문에 넓은 의미로는 3색기에 속하며, 실제로도 그들 대부분의 국기들은 3색기로 불리고 있다. 페루의 국기는 빨강 ·하양 ·빨강의 2가지 빛깔이지만 도안이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3색기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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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베르사이유 궁원 (Palace and Park of Versailles
: 문화, 1979)
- 성 미카엘 천사에 헌정된 고딕양식의 베네딕트 수도원과 마을은 수도원과 수도원의 보호 아래 성장한 마을이 있음
- 프랑스 고딕양식의 정점을 이루는 곳으로 12-13세기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돋보임
- 베젤레 언덕은 1146년 제2차 십자군원정때 성 베르나르드가 원정의 당위성을 역설했고 또한 1190년 제3차 원정때에는 영국왕 리처드와 프랑스왕 필립이 회맹을 하였던 역사적 장소임
- 르네상스와 프랑스 예술의 조화가 특징임
- 당시의 교회, 식당, 숙소, 빵공장 등이 남아있어 초기 시토교도의 공동체 생활을 나타내주는 유적임 (Roman Theatre and the "Triumphal Arch" of Orange : 문화, 1981)
(Roman and Romanesque Monuments of Arles : 문화, 1981)
- B.C 1세기의 로마시대 원형극장 등 기념물과 11-12세기의 수도원, 교회 등이 혼재해 있음
(Cape Girolata and Porto Gulfs and Scandola National Reserve : 자연, 1983)
(Place Stanislas, Place de la Carriere and Place d'Alliance in Nancy : 문화, 1983)
- 1752년부터 1756년에 건축되어, 군주의 위신은 높임 뿐만이 아니라 기능 면에서 성공적인 도시계획이 된 수도 - 개화된 군주가 국민의 필요를 인식하여 지은 근대 수도의 가장 오래되고 전형적인 예
- 고대로마시대에 건설된 50m높이의 수도관으로 공학적, 예술적 걸작품
- 노트르담 성당과 생트 샤펠성당은 건축학적 걸작품이며 호스만의 넓은 광장과 거리는 19세기말, 20세기의 전세계 도시화에 영향을 주었음 (Cathedral of Notre-Dame, Saint Remi Abbey and Palace of Tau : 문화, 1991)
- 상트 레미사원에는 프랑스 국왕의 성직임용을 주관하였던 St. 레미(440-553) 대주교의 유물과 9세기경의 아름다운 본당 회중석이 잘 보존되어 있음 - 타우 궁전은 이전에 대주교가 중요한 종교적 행사를 거행하던 곳으로 현재 건물은 17세기에 복원된 것임
- 건축미와는 별도로 팀파눔, 스테인드글라스 창문 등이 특히 뛰어나 중세 프랑스의 그리스도교 교세를 증명해 줌
- 광장에는 뛰어난 고딕 건축의 모범인 쁘띠뜨 팔래와 노트르담 로마네스크 성당이 세워져 있어 아비뇽의 14세기 유럽지역 그리스도교 전파의 중요한 역할 수행 사실을 잘 웅변해 주고 있음
- 산업혁명과 근대기술시대를 직접 이끌었던 기술 번영기의 모델을 제공 - 미디 운하는 기술혁신에 의해 높은 미적, 건축학적, 경관까지 가미된 디자인으로 유명함
- 뛰어난 도시계획과 각 시대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유명함
- 중세시대 전 유럽으로부터 몰려온 수많은 성지순례자들로 북적거렸음
(Belfries of Belgium and France : 문화, 1999 / 2005 확장, *)
(Provins, Town of Medieval Fairs : 문화, 2001)
- 유럽에서 가장 크고 깊은 2개의 협곡과 거대한 3개의 권곡(圈谷)등의 자연 경관을 가진 30,639ha의 보호구역 - 마을, 농장, 산악도로 등 과거 유럽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유적
Le Havre, the City Rebuilt by Auguste Perret : 2005)
32. 보방의 성채 (Fortifications of Vauban, 2008)
Pitons, cirques and remparts of Reunion Island (자연(vii)(x) , 2010)
- 이 유산은 인도양 남서부에 위치한 두 화산 유괴로 이루어진 라 레위니옹의 40%(100,000ha이상)를 차지 - 두 화산 봉우리와 육중한 벽, 절벽으로 둘러싸인 협곡을 중심으로 여러 종류의 험한 지형과 인상 깊은 급경사면, 숲이 우거진 골짜기와 분지가 장관을 이룸 - 다양한 식물의 자연 서식지로 지방 특유의 고유성을 자랑함
- 오늘날 구교(퐁 비외)와 생 살비 구역 및 교회는 이 도시의 10-11세기 발전상을 보여줌 - 순결파 이단자들에 대항한 십자군 전쟁 이후 강력한 주교 도시가 되었으며, 수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고 일관성 있고 동질적인 기념물과 주거 유적군을 형성 - 붉은색과 주황색으로 13세기 말 프랑스 남부의 독특한 고딕양식으로 지은 웅장한 성당은 시의 중심건물로 로마 카톨릭 성직자들이 되찾은 권력을 보여줌 - 주교의 거대한 베르비성이 성당과 나란히 위치해 강을 내려다보고 있으며 중세에 조성된 주택단지로 둘러싸임
-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던 일부 부분을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알프스 지역사회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비춰 볼 수 있음. - 전체 부지들 중 56군데는 스위스에 위치함.
-코즈 지역 주택단지의 마을과 단단하게 지어진 석조농촌주택은 11세기부터의 큰 수도원 조직을 나타냄. -이 지역 내의 몽 로제르는 여름 가축이동방목이 현재까지 이루어지는 몇 남지 않은 장소들 중 하나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