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서부터
검정·빨강·노랑(금색)인 3색기이다. 공식명칭은 '연방기'라는 뜻의 ‘Bundesflagge’이며,
독일어로 3색을 뜻하는 ‘Schwarz, Rot, Gold’라고도 부르나 독일인들은 일반적으로
간단히 독일 국기라는 뜻으로 ‘Deutschlandfahne’라고 부른다. 검정은 인권
억압에 대한 비참과 분노를, 빨강은 자유를 동경하는 정신을, 노랑은 진리를
상징한다. 3색의 유래에 대해서는 1813~1815년에 걸친 나폴레옹 전쟁시 옛 프러시아군(軍)
의용병의 복장색이라는 설과 다른 여러 설이 있다.
역사적으로 검정·빨강·노랑의 3색기는 국기로서 3번 제정되었다.
1848년 통일 후 처음 채택하였으나 1852년 폐지되었으며 1867~1945년까지는
검정·하양·빨강의 3색기가 등장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9년 바이마르공화국
수립과 함께 검정·빨강·노랑의 3색기가 다시 채택되었고 1933년 나치스 정권
장악과 함께 폐지되었다. 나치스 독일의 패망 후 독일연방공화국(서독)은 1949년
5월 9일에 바이마르공화국의 3색기를 부활시켰다. 동독도 검정·빨강·노랑의
3색기를 국기로 사용하다가 1959년 망치·컴퍼스·보리이삭이 그려진 문장(紋章)을
추가해 서독 국기와 구별하였으나 1990년 이후 서독의 국기를 통일독일의 국기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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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헨대성당 ( Aachen Cathedral : 문화,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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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축구조는 동서양의 영향의 완벽한 균형을 잘 보여주고 있음
(Castles of Augustusburg and Falkenlust at Bruhl : 문화, 1984 )
( St. Mary's Cathedral & St. Michael's Church at Hildesheim : 문화, 1985 )
( Roman Monuments, Cathedral and Liebfrauen-Churcu in Trier : 문화, 1986 )
- 당시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로마문명의 훌륭한 증거를 보여줌 ( Frontiers of the Roman Empire : 문화, 1987, 2005(extension), (ii)(iii)(iv),*)
- 당시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로마문명의 훌륭한 증거를 보여줌
- 15-16세기의 기념물, 교회, 소금저장소등이 원형대로 남아있음 ( Palaces and Parks of Potsdam and Berlin : 문화, 1990/1992/ 확장 1999 )
- 산 사우치 궁전은 프레드릭2세가 1745-1757년에 만든 궁전으로 프랑스 계몽 사상가인 볼테르가 초빙되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함
- 12세기경 도시번영기의 건축은 북부독일과 헝가리에 큰 영향을 끼침 - 18세기말에는 헤겔, 호프만 등 저명 철학자들이 살았던 남부독일 계몽 주의의 중심무대였음
- 이 시기 조각과 그림들이 양호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음 ( Mines of Rammelsberg and Historic Town of Goslar : 문화, 1992 )
- 10-12세기간에는 독일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였고 15-19세기 사이에 만들 어진 1,500개의 半목재형 가옥이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음
- 요새화된 벽으로 둘러싸인 본관건물은 12-14세기에 건립됨 - 수도원교회는 전통적인 로마네스크-고딕양식으로서 북부 및 중부 유럽의 고딕 건축전파에 큰 영향을 끼침 - 마울브론의 용수관리시스템은 배수구 망, 관개터널, 저장소등 시설이 잘 정비되어 뛰어난 시스템으로 평가됨 ( Collegiate Church, Castle and Old Town of Quedlinburg : 문화, 1994 )
- 잘 보존된 목골조의 건축물은 중세유럽도시의 예외적인 사례로서 St. Servatius 협동교회는 로마네스크 건축의 걸작품임
17. 메셀 피트의 화석 유적 ( Messel Pit Fossil Site : 문화, 1995 )
- 특히 이 시기에 속하는 동물의 뼈대로부터 위(胃) 내장물에 이르기까지 포유류 화석이 잘 보존되어 있음
- 2차 세계대전으로 손상된 것을 전후 복원함 (The Bauhaus & its sites in Weimar and Dessau : 문화, 1996 )
( Luther Memorials in Eisleben and Wittenberg : 문화, 1996 )
- 이 지역 주변에 펼쳐진 많은 공원들과 높은 수준의 건축물들은 이러한 번영을 잘 보여줌
- 계몽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는 예술박물관의 가장 뛰어난 예로서 도시건축의 상징적 유물
- 지난 150 년간 필수적이었던 산업의 발단과 쇠퇴를 물질적으로 증거해줌 (Historic Centres of Stralsund and Wismar : 문화, 2002, (ii),(iv))
(Upper Middle Rhine Valley : 2002, 문화, (ii),(iv),(v))
(Dresden Elbe Valley : 2004, 문화, (ii)(iii)(iv)(v))
- Saxony의 Electors에 의해 18세기와 19세기에 걸쳐 발달하여 형성된 경관 - 강을 따라 양쪽에 부유한 상인들에 의해 테라스위에 건설된 빌라와 정원에 의해 형성 - 독특한 문화경관 형성 (The Town Hall and Roland on the Marketplace of Bremen : 2004, 문화, (iii)(iv)(vi))
- 구(舊)시청 건물은 15세기 고딕풍으로 브레멘이 한자동맹에 가입한 뒤 세워졌다가 17세기 초 일명 붸저 르네상스풍으로 개조되었다. 20세기 초에 신(新)청사가 이 구청사 옆에 세워졌고 2차 세계대전 동안 폭격에도 두 건물 모두 건재했다. 로랜드 상은 높이 5.5m로 1404년에 만들었다.
- Prince Pukler에 의해 그의 토지주변에 펼쳐진 경관공원으로 Muskau 마을로 연결되며 주변 농업경관과 어울린 공원 - 마을과 공원이 서로 어울려지게 디자인한 것으로 공공도시지역을 위한 현대적 녹색 공간 디자인에 기초를 제공 - 폴란드와 독일의 경계에 위치한 도시와 농촌에 경관디자인의 새로운 방법으로 19세기 중엽 이루어진 공원이며 하나의 주제로서 ‘조경’의 발달에 영향을 미침 - 폴란드와 독일간에 국경을 넘어 문화적 협조를 위한 촉매제 역할을 함 (Old town of Regensburg with Stadtamhof : 2006, 문화, (ii)(iii)(iv))
- 이곳에 있는 건물과 마을은 이 지역이 9세기, 무역 중심지로서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입증한다. 2천년의 세월에 걸쳐 시대마다 세워진 건물이 즐비하며, 신성로마제국의 중심지에서 프로테스탄트 교의 중심지로 전환된 자취가 남아있다.
- 2009년6월27일 스페인 세비야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에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World 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됨.
- 생산, 보관, 발송의 모든 단계에 기여하고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음. - 유리 판넬을 사용한 방대한 벽면과 기능주의적 미적 특질은 훗날의 바우하우스 양식을 예시할 뿐 아니라 유럽과 북미 건축의 발달에 상징적인 역할을 함.
-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던 일부 부분을 통해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까지의 알프스 지역사회와 환경의 상호작용을 비춰 볼 수 있음. - 전체 부지들 중 56군데는 스위스에 위치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