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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09/23(월) 
[박찬호] 무안타 무실점 행진 

**최근 6경기 구원등판 완벽한 노히트  

LA 다저스 박찬호 (23)가 무실점, 무안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박찬호 는 23일(한국시간) 샌디에이고 에서 벌어진 파드레스와의 4연전 마지막 경기에 노모 히데오를 구원 등판해 1이닝을 무안타 무실점으로 선방했다.  

이로서 박찬호 는 지난 1일 필라델피아와 원정경기부터 6게임에서 8 이닝 동안 무실점을 기록했으며, 지난 5일 뉴욕 메츠전부터는 6 이닝 동안 단 한개의 안타도 내주지 않는 노히트 행진도 계속하고 있다.  

4회초 몬데시의 홈런으로 1-0 박빙의 리드를 지키던 노모는 5회말 핸더슨과 그윈의 연속 2루타로 동점을 허용한 후 핀리에게 2점 홈런을 얻어맞고 1대3으로 역전당했다.  

빌 러셀 감독은 즉각 박찬호 의 몸을 풀게한 후 6회말 노모를 빼고 박찬호 를 마운드에 올렸다.  

박찬호 는 지난 시즌 홈런을 허용했던 2루수 조디 리드를 1루수 파울플라이로 유도했고, 투수 팀 워렐도 2루수 땅볼로 처리했다.  

1번 타자 백전 노장 리키 핸더슨을 4구로 내보낸 박찬호 는 내셔널리그 최고의 교타자 토니 그윈을 3구만에 유격수 땅볼로 처리, 무실점 무안타로 이닝을 마무리했다.  

이날 직구 최고 시속 152㎞를 기록한 박찬호 는 16개의 공을 뿌려 8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했고, 직구의 코너워크가 상당히 좋았다.  

박찬호 는 7회초 타순이 돌아와 대타 데이브 핸슨으로 교체됐다.  

다저스 는 8회초 피아자의 홈런으로 1점차까지 추격했으나 결국 2대3으로 패해 파드레스에 반게임차의 리드를 지켰다.  
 

 
연합뉴스 09/23 
박찬호 1이닝 무안타,무실점 호투 

美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박찬호(23.LA다저스)가 1이닝을 완벽하게 마쳤다. 

 박찬호는 23일(한국시간) 열린 샌디에고 파드레스와의 홈경기에서 선발 노모 히데오(28)가 5회 난조를 보이며 3실점해 1-3으로 뒤진 6회 마운드를 넘겨받아 사사구 1개만 내주고 무안타,무실점으로 1이닝을 막았다. 

 박찬호는 첫 타자 조디 리드에게 강속구를 던져 1루측 파울플라이로 아웃  처리한 뒤 다음타자 티 워렐을 2루수앞 평범한 땅볼로 유도했다. 

 이어 2사 뒤 1번타자 리 헨더슨을 볼넷으로 내보냈으나 다음타자 그윈을 유격수 앞 땅볼로 처리해 이닝을 마쳤다. 

 박찬호는 6회 다저스의 공격에서 1사후에 타순이 돌아왔으나 대타 다렌으로  교체됐다. 

 한편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선두를 달리고 있는 다저스는 8회  마이크  피아자의 홈런으로 1점을 따라붙는데 그쳐 2-3으로 아깝게 패했다. 
 
 다저스는 2위 파드레스와의 게임차가 반게임으로 다시 줄어들었다.

 
스포츠조선 09/23(월) 
인터뷰/ 코리아특급 박찬호 "노모는 노모, 나는 나" 09/25(수) 

## "모든평가는 글러브 벗을때… 「ML의 이방인」이라는 느낌도들어" ##.  

메이저리그 LA 다저스 와 샌디에이고 페드레스의 경기가 있기 전날인 지 난 9월17일, 콜로라도주 덴버 의 쿠어스 구장에서 벌어진 경기에서 일본 출신 다저스 주전 투수 노모 히데오는 콜로라도 로키스를 상대로 노히트 노런이라는 「신화」를 기록했다.  

노모는 일본 NHK 방송이 생중계하는 가운데 열린 이날 경기에서 무안타 무실점이라는 수훈으로 콜로라도 로키스를 9대0으로 압승, 내셔널리그 예 선에서 치열한 접전을 벌이던 페드레스를 제치고 서부 지역 조 선두로 나 서는데 결정적으로 공헌했다. 다저스 는 더구나 이에 바로 앞서 노련한 중 견수로팀 대들보격인 버렛 버틀러가 팔 골절 사고를 당해 전력에 막대한 타격을입은 채 초상집 분위기였다. 그러나 막상 이날 노모 앞에 선 로키 스선수들은 「추풍낙엽」이었다. 신들린 듯한 노모의 완벽한 투구에 5만 관 중도 넋을 잃었다. 이날 밤 TV와 다음날 아침 신문에서는 온통 노모 얘기 뿐이었다. 절정기로 치닫는 듯 노모는 「영웅」이 되고 있었다.  

같은 날 경기장에서 노모의 선전을 지켜 본 「코리아 특급」 박찬호 . 그 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노모가 누리는 영광을 박찬호 선수 도 과연 차지할 수 있는 것일까? 그로부터 하루가 지난 9월18일 저녁, 원 정경기중에 있는 박찬호 선수를 샌디에이고 에서 만났다.  

「시즌 중」이라는 이유로 콜로라도 에서도 인터뷰를 완곡히 거절한 그는 주간조선의 세번째 요청을 받고서야 인터뷰에 응했다. 그는 이날 로키스 와 이틀째 경기를 마친 후 구단 전용 비행기 편으로 1천 마일 이상 떨어 진 멕시코 국경 근처 항구 도시 샌디에이고 로 날아와 있었다. 당초 목적 지를 콜로라도 에서 샌디에이고 로 수정, 그가 투숙한 호텔에서 만났다. 마 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박찬호 는 『식사나 같이 하자』며 10분 후에 로 비에 모습을 드러냈다. 큰 키에 구릿빛으로 그을린 건장한 모습이었다.  

호텔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샌디에이고시에 있는 한 한국식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처음 시킨 갈비 2인분에 알 찌개를 곁들인 뒤 갈비 1인분이 더 추가됐다. 술을 못하는 박찬호 는 대신 얼음 탄물을 여러 잔 비웠다. 인터뷰 도중 더러 그를 알아본 동포들이 반가워 하며 사인 요청을 해와 대화가 가끔씩 중단되기도 했다(그는 일일이 사인 을 해 주었다). 얘기는 자연스럽게 그 전날 콜로라도 에서 로키스와 벌인 경기 쪽으로 넘어갔다.  

『어제 같은 경우(노모의 노히트 노런) 그 선수가 역사를 하나 이룩한 셈이지요. 같이 생활하면서 노모에게 배울 점은 많다고 봐요. 그 선수는 하나하나 성취해 가면서 스스로 자신감을 키워 나가는 장점을 가진 것 같 아요.』.  

노모와 비교해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동 안 생각에 잠겨있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나타난 것으로 봐 서는 그가 우수한 선수임에 틀림 없습니다. 내가 그 선수보다 잘할 수 있 느냐는 질문에는 당장 자신있게 말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나는 아직 도 배우고 있는 처지이고….』 그는 모든 것을 굳이 노모와 비교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앞으로 노모 선수의 야구 인생이 끝나고 제 야구 인생도 끝났을 때 한 것을 모두 가지고 비교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때 가서 내가 그 선수 보다 더 좋은 선수 생활을 했으면 결과적으로 내가 잘한 것이고, 그 선수 가 나보다 더 잘한 것이면 결론적으로 그가 잘한 것이 될 게 아닙니까?』 하기야 그는 이제 겨우 스물세 살이다. 노모는 스물여덟 살로 그보다 다 섯살이 많다. 박찬호 는 이와 함께 자신을 노모하고만 비교하는 것은 『우 리국민들의 반일 정서에서 나오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 뒤 『축하해 줄 것은 축하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에서 그는 요즘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처음 와서는 정말 놀랐어요. 내가 우물안 개구리였구나, 그동안 몰랐던 야구를 여기 와서 배우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메이저리그 는 그에게는 전 혀 새로운 세계였다. 『시간과 경험을 중요시한다는 점을 피부로 느꼈어 요. (선수가) 완전히 갖추어지고 만들어졌을 때 쓸 수 있는 구조, 그렇지 못했을 때 쓰다 보면 고장이 나니까 완전히 만들어졌을 때 써야지만 고장 이 안 난다는 것이지요.』.  

//// "아직 창창한데, 서두르지 않겠습니다" ////.  

그는 마이너리그행을 예로 든다. 『저도 마이너리그로 갔다 다시 올라왔 으니깐 더 잘 할 수 있는 거지, 그렇지 않았다면 그 전처럼 처음엔 잘하 다가도 다음엔 못하는 식의 고장이 자주 날 것 아닙니까. 그런 것을 배우 노라면 시간이 걸리는데, 괜히 조급하게 서두를 필요가 없구나 하는 것을 느낍니다. 저같은 경우는 아직까지도 부족한 점이 많지만 오히려 운이 좋 아서 일단 빨리 발전할 수 있는 그런 경우죠. 이럴 때 더 생각하고 연구 해야 계속 기복 없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 그대로 그는 확실히 조금씩 여유있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았 다.  

메이저리그 로 복귀한 지 약 1년째로 접어든 박찬호 , 내용 면에서 본다 면 사실 노모 못지않은 역량을 보이고 있다. 그의 투구는 확실히 위력적 이다. 지난 9월16일 다저스 구장에서 세인트 루이스 카디널스 와 벌인 경 기에서 대량 실점 위기에 등판해 추가 실점을 완벽하게 막아내고 연달아 삼진을 잡아기립 박수를 받았다. 시속 156㎞ 「광속구」로 타자 9명을 안타 하나 없이 처리하는 눈부신 내용이었다. 박찬호 는 현재 LA 다저스 에서 중 간 계투 요원이다. 다저스 투수진 가운데 이닝당 탈삼진수가 노모에 이어 제일 많고, 이날까지 중간 계투로서는 쉽지 않은 102와 1/2 이닝 투구에 방어율 3.61, 5승4패의 전적을 내고 있다. 성적으로만 본다면 그는 요즘 확실한 상승세다.  

단, 팀이 그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면 경험과 제구력이다. 빌 러셀 감 독대행 체제가 들어선 후 그의 위치는 아직도 불투명한 상태이긴 하지만 러셀감독은 일단 박찬호 가 다저스 의 차기 선발 요원이라고 공언하기도 했 다. 그는 이제 초조하지 않게 느긋하게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는 앞으로 할 일이 더 많습니다.』 그는 이제껏 이룬 성과를 묻는 질문에 그같이 답했다.  

『처음에는 제 자신이 나이도 어리고 잘 모르고 해서 욕심이 너무 앞서 서두르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스스로 실망도 하고 절망하기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당연한데도 절망을 너무 많이 한 것 같아요.』 그는 『이젠 여유와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 하나, 차근 차근 해 나가겠다』 고 각오를 다졌다. 『삼진을 잡을땐 말로 표현하기 힘든 쾌감을 느껴요.반 대로 한 방 얻어맞을땐 순간적으로 기분이 침체되고 화 나기도 해요.하지 만 곧장 잊어버리려고 합니다. 컨트롤을 못하면 또 맞게 되니까요.』.  

박찬호 가 밝히는 생활상을 들어보자.  

2월부터 10월까지가 정규 시즌이다. 낮 11시나 12시에 기상. 점심 식사 후에 오후 3시쯤 구장으로 가서 경기 하고 밤 11시나 12시쯤 돼야 숙소나 집으로 들어온다. 밤 1시나 2시 무렵 잠자리에 들 수 있다. 시즌 중에는 거의 매일 계속되는 경기로 개인적인 생활이 거의 없다. 그런 틀 속에 맞 추어 그는 늘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LA 에서 비행기로 6시간 반이 걸리는 캐나다 몬트리올이나 그에 못잖게 시간이 걸리는 뉴욕 등지를 이웃 드나 들듯 종횡무진한다. 따라서 그에게는 이런 생활에 적응하는 것도 문제이 다.  

1월부터 다시 연습이 시작되어 시즌으로 이어진다. 한때 경기가 없는 겨울철에는 학교에 나가기도 했다. LA 북부에 있는 「형수」(매니저 스티브 김의 부인)의 집이 거처이다. 미국 와서 운전을 배워 95년식 몬테로 지프 차를 직접 몰고 다닌다. 영어도 이젠 제법이다. 발음도 듣기엔 괜찮고 일 반적인 생활을 하는데 별로 불편함을 못 느끼는 정도가 됐다. 3년 만에 야구 못지않게 언어에 기울인 노력의 흔적이 묻어나왔다.  

//// 마늘도 「포기」하고 동료들과 친해지려 노력 ////.  

박찬호 는 야구와도 싸우지만 또 다른 것과도 씨름하고 있다. 『전 생각 을 많이 하게 돼요. 왜냐하면 제가 처음이기 때문에, 또 혼자 이곳 메이 저리그에 있기 때문에 사실 굉장히 초라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외로움 도 많이 느낍니다. 누가 옆에 없어서가 아니라 한국인이 혼자 이 속에서 산다고 생각하면 이방인과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내가 이 기 회에 뭔가 길을 크게 닦아놓지 않으면 안되겠다. 이번 기회에 열심히 해 서, 오래 야구를 해야지만 큰 문을 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게 참어려운 기회 아니에요? 문을 크게 열고 싶어요. 제가 여기 오기 전에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성공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았다고도 볼 수 있었어요.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큰 결단을 하고 왔는데, 앞으로 오 는 후진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봐요. 정말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사 전에 나를 통해 지식도 많이 가지고 올 것이구요.』.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박찬호 의 어깨를 누르고 있는 듯한 중압감의 강 도가 어느 정도인지를 엿볼 수 있게 했다. 전혀 다른 문화도 그에게는 작지않은 장애물이다. 「처음 해보는」 메이저리그 야구와 현지의 생소한 문화도 적응이 쉽지 않았다. 충남 공주 출신인 박찬호 는 아직까지도 다분 히 한국적인 요소에 집착하는 「신토불이」 선수.  

『처음엔 마늘 때문에 선수들과 많이 부딪쳤습니다. 마늘만 먹었다 하면 어떻게 알았는지 질겁들을 해요. 한때 「뭐가 어때서 그러나. 자기들한테 서는 치즈 냄새 안나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제는 이곳 문화에 나름 대로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죠. 그까짓 마늘 안 먹으면 그만이니 까요.』.  

그는 다른 선수들하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말하고는 마늘과 고추, 야 채를 주문했다. 그러나 마늘에는 별로 손대지 않았다. 그가 이곳 저곳 경 기 하러 나다니면 먹는 음식도 대개가 양식뿐이다. 그런 가운데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조금씩 변해간다는 것을 확인하기도 한다. 『한국에 전화하 게되면 친구들이 내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말들을 해요. 또 가끔 씩 말도 더듬고 영어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기도 하더라구요. 친구들이 이해해 줘서 고맙지만, 지금이 저에겐(문화적으로) 한창 어렵고 햇갈릴 때인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는 여전히 감독이나 매니저, 그리고 관중들에게 깍듯한 예의 가 트레이드 마크로 잘 알려져 있다. 특히 경기에 나설 때 모자를 벗고 머리 숙여 관중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는 모습은 미국 언론들을 통해서 인상적이라고 소개된 바 있다. 『제가 예의범절을 가르치고 중시하는 나라 에서 자라난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동료 선수들이 감독이나 코치 에게 친구처럼 대하거나 때로는 싸우려 하는 모습도 보지만 저는 그렇게 하질 않습니다. 내가 예의범절이 바른 나라에서 왔다는 것을 알리는 것도 저한테 주어진 한가지 몫이기 때문입니다.』.  

//// "아직 여자친구 못사귀고 거의 혼자 지내" ////.  

돌아가고 싶은 적도 많았다.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고 어려울 땐, 차라 리 지금 한국 가면 가족들과 같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때 가장 힘들었다』고 고백한다. 『행복감을 못 느낄 때, 전혀 편안함을 못 느낄 땐 모든 것을 때려치울까 하는 생각도 불쑥 나곤 합니다.』 하지만 그런 생각 은 경기와 바쁜 일정 속에 이내 묻혀버리고 만다. 그는 매니저 가정에 위 탁(?)된 신세로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고 있다. 가족의 따뜻한 보살핌과 거리가 있으니 외로움이 생겨날 수 밖에 없는 처지이다. 결혼은 생각하지 않느냐는 말에 그는 처음엔 「30대쯤에나」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가족들 품 속으로 돌아가는 동료 선수들을 보면 부러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라 고 털어놨다. 다른 선수들은 대개 집으로 돌아가면 가족도 있고 여자 친 구라도 있어 재충전을 할 수 있겠지만 그는 그렇질 못하다. 여자 친구도 아직 못 사귀었다는 그는 거의 혼자 있는 탓에 별로 스트레스를 풀 만한 무엇도 없다. 한국에서 학교에 다닐 땐 그래도 친구들과 모이기도 하고, 가끔은 미팅도 했지만, 미국 오고 나서부터는 제대로 「재충전」이 안 된다 는 것이다.  

결혼도 고려 대상이냐는 질문에 그는 곰곰 생각하더니 『일단 하나만 해 야죠』라고 했다. 이제 내년에는 어머니가 미국으로 오시기로 했다. 어머 니는 진작부터 아들을 옆에 두고 보살펴주려 했지만 여지껏 그는 「혼자 있겠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많이도 옥신각신했단다.  

『제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고 싶지 않아요. 고생을 해도 혼자 하고 싶고요. 보시면 안타까워하실 텐데…. 그냥 뭐 나 혼자서도 해낼 수 있는 건데….』 그의 이같은 「대담성」은 메이저리그 를 「만만하게」 봐서인지, 아 니면 「 메이저리그 라고 해서 기죽지 않는다」는 내면의 각오를 대변하는 것 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분명한 것은 박찬호 의 부모에 대한 태도는 남다르 다는 것이다. 그가 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은 보통 사람들과는 사뭇 다르 게 많은 부분을 차지한 듯싶었다.  

얼마 전 어머니가 마련해 준 양복을 다저스 「신고식」에서 동료들이 관 습으로 「훼손」하자 버럭 성을 낸 일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됐다. 박찬호 는 인터뷰 내내 있는 그대로를 다 털어놓는 진솔함을 보였다. 동료들과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도 그대로 밝혔다. 스물셋의 「순수함」은 그를 스 스로 크게 수식할 수 없게 하는 요소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순수함이 「비정한」 메이저리그 세계에 과연 얼마나 통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얼마전에 은퇴한 라소다 감독은 「찬호」의 그런 순수함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찬호」를 「내 아들」이라고 부르며 아끼고 중용했다. 박찬호 는 보통 사람들이 그 나이에 대하기 힘든 세상을 몸으로 겪으며 새로운 세상을 열 어가는 외로운 개척자이다. 그의 앞에는 어떤 세계가 열릴 것인가? <샌디에이고=박귀용 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