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분위기로 보면 다저스와는 결별절차만 남은 상태다. 그러나 다저스도 일단은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의 의중을 파악하고 과연 박찬호 측이 얼마를 요구할지를 들어볼 것이다. 

사실 다저스 구단은 박찬호와 계약이 어렵다고 판단했다면 7월 31일 트레이드 마감시한 때 트레이드를 단행했어야 했다. A급 선수를 아무 대책 없이 빼앗기는 우를 범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뜻이다. 당시 플레이오프 진출 경쟁을 벌이고 있던 터라 섣부른 판단이 어려웠던 것은 인정하지만 아무튼 다저스는엄청난 손해를 보게 됐다. 

오클랜드는 3명의 FA 선수(제이슨 지암비,제이슨 이즈링하우젠,조니 데이먼)를 껴안는 도박을 했지만 플레이오프 진출로 보상받았다. 박찬호가 FA로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다저스의 보상은 아마추어 드래프트 권리 하나를 양도받는게 고작이다. 

미국의 스포츠 구단은 철저한 비즈니스로 무장돼 있다. 주판알을 튕겨 구단에 이익이 된다고 판단되면 계약하는 것이고, 아니면 가차없이 포기한다. ‘팀을 위해 봉사했는데’라는 동양적인 정서는 통하지 않는다. 다저스는 ‘미스터 퍼펙트’로 통했던 스티브 가비와도 계약기간 1년에 이견을 보여 지난 82년 FA로 풀어버렸을 정도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다저스는 최근 비즈니스에 입각한 구단의 판단으로 엉망진창이 돼버린 상태다. 그동안 구단의 의도대로 된 게 거의 없다. 판단착오,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다저스에서 별 볼 일 없는 선수도 다른 팀 유니폼을 입으면 달라진다. 다저스 구단이 FA선수를 영입해 성공한 사례는 88년 월드시리즈 주역이고 시즌 MVP였던 커크 깁슨이 유일하다. 
 
내셔널리그 챔피언결정전 MVP상을 수상한 애리조나 2루수 크레이그 카운셀도 다저스가 버린 선수다. 타격도 시원치 않고 수비도 보통이라고 판단해 연봉 45만달러 밖에 안되는 카운셀을 지난 시즌 스프링캠프에서 방출했다. 카운셀은 포스트시즌에서 활약해 그를 버린 다저스 구단에 비수를 꽂았다. 

이밖에 “투수도 아니다”며 몬트리올에 트레이드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 미래의 올스타로 꼽았던 폴 코너코(신시내티로 트레이드했고 현재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96년 월드시리즈 MVP 존 웨틀랜드 등은 다저스에서는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지만 다른 팀에서 전성기를 누리고 있거나 누렸던 선수다. 

다저스가 박찬호를 포기했다가 어떤 식으로 부메랑이 돼 돌아올지 누구도 알수 없다. 시즌 중반 스포츠토크쇼의 한 청취자는 박찬호가 ‘제2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될 수 있다며 다저스 구단은 꼭 붙잡아야 한다고 강조한 적이 있다. 다저스의 딜레마가 여기에 있다. 

박찬호는 아직 전성기에 다다른 투수가 아니다. 여전히 정상을 향해 올라가고 있는 선수다. 다저스를 떠나 몬트리올과 보스턴에서 세 차례 사이영상을 받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처럼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박찬호는 다저스가 배출한 선수다. 다저스 구단에서 영향력 4위인 데릭 홀 홍보담당 수석부사장은 최근 “박찬호는 출발부터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해온 다저스의 프로덕트(Product)”라고 표현했다. 그러나 박찬호에 대한 호감이 계약연장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적정한 가격이라면 다저스는 박찬호와 재계약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다. 

검증받은 선발투수이고 성실성과 훈련에 나서는 태도에서 모두에게 모범을 보였던 박찬호가 아닌가. 다저스로서는 박찬호의 존재가 마이너리그에서 올라오는 선수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만으로도 큰 득이다. 

사실 박찬호는 LA지역 언론의 피해자다. 구단이 FA가 되는 박찬호, 테리 애덤스, 제임스 볼드윈 가운데 2명과 계약한다는 방침을 세웠을 때 여론은 당연히 박찬호를 밀어야 했다. 박찬호는 다저스 토박이고, 애덤스와 볼드윈은 굴러온 돌이다. 걸핏하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샌디 쿠팩스,돈 드라이스데일을 거론하는 언론이 지금은 왜 침묵하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박찬호는 통산 200승도 거둘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이를 달성한다면 투수왕국의 전통을 잇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