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기형도 (1960-1989)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 집에 갇혔네

(『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 지성. 1991)

어두운 극장에서 쓸쓸히 떠나간 기형도의 비극적 삶이 그의 시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기형도의 시는 과도하게 평가된 측면이 있다. 오래 전 그에 대한 평론을 준비하면서 그에 대한 열광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가에 대해 따져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어쩌면 그에 대한 나의 시적 질투였는지도 모를 일. 가끔 만나는 그의 시는 내게 깊은 울림을 준다. 

이 시는 비극적 세계관과는 다른 절망의 극한을 보여준다. 어둠을 밝히던 촛불의 이념도 맹목적인 것이었고 우리의 열망도 나의 것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열망이었을 뿐. 정체를 알 수 없는 겨울 안개와 같은 공포는 우리를 에워싸고, 그 공포를 알릴 나의 주장은 써지지도 않고 눈물만 흐른다. 그리하여 이제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채 세상과의 문을 잠근다. 나는 이 집 속에 있지만 이 집은 빈 집이다. 소리칠 수도 없고, 어느 누구도 나를 호명해주지 않으므로, 나는 없는 나이다.

격동의 1980년대에 어떻게 이러한 시적 정서가 가능했는지는 문학 연구자들의 몫으로 남기자. 문제는 이 시가 지금, 바로 여기의 시로 읽힌다는 것이다. 지금이 이 시의 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절망이 절망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 이 시에서 내가 문을 잠그고 내 사랑이 빈 집에 갇혔다고 말하는 것은 나를 누군가가 바깥에서 호명해 주기를 희망한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희망마저 없는 것이 아닐까?

내가 갇혀 있는 빈 집. 내가 아직 살고 있는데 이 세상은, 이 집은 왜 빈 집인가?

(매일신문. 노태맹 시인 2015.0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