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무늬 - 감태준

눈에 어른대는 가랑잎을 쓸어 낸다, 아니, 내가 다시 태어난다, 강을 만들고, 강 한가운데, 두 개의 물결인 아내와 딸 사이, 나는 잠시 두 물결에 알맞는 무늬로 팔 벌리고 같이 흐른다, 저녁 한때 한두 번 또는 두세 번, 아내와 딸은 서로 색깔을 섞어 주며 깔깔대고, 깔깔거림의 끝에서, 나는 언뜻 밤바람 쓸리는 꿈 만나고 혼자 떠돌아, 아내와 딸은 나를 보고 단순하다 단순하다고 도리어 더 단순하게 나를 두고 두 물결끼리 짝짓고 기어 간다, 창 밖에는 한물 간 달이 반쪽 흘러 간다, 어쩔까 지워 버릴까, 가까스로 고개 쳐들고 둘러보면 윗목에 밀려 있는 책 꽁초 사과껍질, 거기 색바랜 내가 구겨져 있다, 갑자기 꿈틀거리는 벽면(壁面)의 나무들, 그 아래 썰물지는 아내와 딸의 잔물결, 어느덧 강 온통 거덜난 바닥에 가랑잎이 일어선다, 아니, 내가 새로 물결을 끌어 오고, 물결 위에 혼자 외로운 섬처럼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