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사광익(集思廣益/集思广益) ◑ jí sī guǎng yì

▶ 集(모을 집) 思(생각할 사) 廣(넓을 광) 益(더할 익)

▶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면, 보다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음. 뜻을 모아야 큰 이로움이 있다는 뜻, '생각을 모아 이익을 더한다'는 뜻으로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이르는 말. 集:集中;思:思想;广:扩大;益:好处。集中群众的意见和智慧;取得更好的效果。也指集中众人的思想和智慧;广泛吸收好的意见。 benefit by mutual discussion

▶ 제갈량이 동료와 부하들에게 편지를 쓸 때 이렇게 말하였다.

서기 221년, 제갈량은 촉나라 유비의 군사(軍師)와 승상(丞相)의 직책을 맡고, 항상 허심탄회(虛心坦懷:마음 속에 아무런 거리낌 없이 솔직한 태도로 품은 생각을 터놓고 말함)하게 부하들의 의견을 청취하였다. 특히 여러 방면의 다른 의견에 대하여는 더욱 귀를 기울여 들었다.

한번은 제갈량의 일처리가 치밀하지 못하였는데, 동화(董和)라는 관리가 이에 대하여 여러 차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며, 그와 논쟁을 벌였다.

이 일에 대하여, 제갈량은 동화를 질책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 편의 글을 써서 그를 표창함과 동시에,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정견(政見)을 발표하였는데, 바로 이 글이 <여군하교(與群下敎)>라는 문장이었다.
제갈량은 이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승상부(丞相府)에서 많은 관리들을 임용하여 국가의 대사를 돕고 공동으로 참여하게 하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지혜를 모으고 각 방면의 유익한 건의를 널리 청취하기 위함입니다[夫參署者,集衆思廣忠益也].
정확한 의견을 얻음으로써 일을 더욱 잘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죄를 범하게 될까 두려워하거나 논쟁을 피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과 다른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면, 이는 일에 손실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

[출전] 삼국지(三國誌)관련, 제갈량(諸葛亮)-여군하교(與群下敎).
 
[동의어] 집사광의(集思廣義) 
 
[반의어] 독단독행(獨斷獨行), 폐문조차(閉門造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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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은 스물일곱 살 나던 해에 유비를 보필하며 출사했다. 그후 스무 해 동안 중원(中原) 일대를 통일하고 업적을 마련하는 일에 온 열정을 쏟아부었다. 한(漢)나라 왕실을 부흥시키고 중원을 평정하기 위해 제갈량은 여섯 차례나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북벌을 시작하기 전에는 돌발적인 습격을 당할까 우려하여 대군을 이끌고 호수(沪水)를 건너 오지로 들어가 그곳에 사는 이민족들을 위로하며 연맹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민족과의 갈등을 줄이기 위해 남만 지역의 왕인 맹획(猛獲)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모두 풀어준 일화도 유명하다. 이에 감격한 맹획은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맹세했다. 

"우리 남인(南人)은 앞으로 다시는 반란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승상께서 마음을 놓으셔도 됩니다. 저희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불러주십시오." 

  쉰 살이 되던 해에 제갈량은 남부 지역을 평정하고 얼마 뒤 위(魏)나라 진공에 나섰다. 출병을 앞두고 살아서 돌아오지 못할 것을 걱정해 제갈량은 촉(蜀)나라 후주(後主)인 유선(劉禪)에게 진심이 가득 담은 상주문(上奏文)을 올렸다. 표문(表文)에는 위, 촉, 오 삼국의 정세를 상세히 분석하고 촉군의 전략을 제안하였는데 나라에 대한 충성과 백성을 걱정하는 제갈량의 정성이 구구절절 배어있었다. 

  아무리 치밀한 작전이라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어려움이 닥치기 마련, 첫 북벌에서 대장 마속(馬謖)의 어긋난 행동 때문에 가정(街亭) 땅을 잃고 대패하고 돌아왔다. 두 번째 진창(陳倉) 전투에서 식량이 바닥나 제대로 된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패하여 퇴각하였다. 포기할 수 없었던 제갈량은 또 한번 시도했지만 같은 원인으로 진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제갈량은 통찰력이 뛰어나고 계획적이며 지혜롭기로 정평이 나 있었지만 결코 자만하거나 허세를 부리지 않았고 여러 관료의 의견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모든 일은 문무대신들과 의논한 뒤 결정하였으며 그에 따라 문고를 작성하고 반포했다. 그는 대신들의 어려움을 들어주고 해결해주었으며 진실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주군에 이익이 되는 의견은 널리 받아들이고 집사광익(集思廣益), 즉 많은 사람의 지혜를 모으고 정확한 의견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서신을 쓰기도 했다. 
 
  평소에도 문무백관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타인과의 논쟁을 피하고자 의견제시를 꺼린다면 군주의 눈과 귀가 어두워져 유익한 의견을 듣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는 조정에 막심한 손해이다. 우리는 동유재(董幼宰)를 따라 배워야 한다. 그가 정사를 돌보는 7년 동안 미흡한 점이 있으면 사람들이 주의를 돌릴 때까지 끊임없이 지적해왔다. 그 횟수가 무려 십여 차례나 되었다. 우리가 동유재처럼 돌이켜 검토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잘못된 결정을 피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조정과 백성에게 도움이 되어야 좋은 대신이라 생각했던 제갈량은 많은 사람의 지혜에 눈과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요구하고 다잡았다. 그러던 그는 234년 여섯 번째로 출정한 기산 전투에서 54세를 일기로 결국 병사하였다. 

  사자성어 "집사광익(集思廣益)"은 여러 사람의 지혜를 모으면 더 큰 효과와 이익을 얻을 수 있음을 뜻하는 말로 바로 제갈량이 부하들에게 쓴 편지에서 유래되었다. 

▶ 三国时,刘备死后,刘禅继位。丞相诸葛亮处理、决定蜀国的大小政事,成了蜀国政权的实际主持者。他在人们的心目中有很高的威望,但他并不因此居功自傲,常常注意听取部下的意见。杨是当时丞相府里负责文书事务的主簿官。他对诸葛亮亲自过问每一件事的作法提出了建议,他说:“处理国家军政大事,上下之间分工应该不同。”他还举出历史上一些著名的例子,就是成语集思广益的意思。劝诸葛亮不必亲自处理一切文书,少过问一些琐碎的小事,对下属应该有所分工,自己应主抓军政大事。诸葛亮对于杨的劝告和关心很是感激,但他怕有负刘备所托,仍然亲自处理大小事务。后来杨病死,诸葛亮非常难过,哀悼不已。为了鼓励下属踊跃参与政事,诸葛亮特地写了一篇文告,号召文武百官、朝廷内外主动积极地发表政见,反复争议。这篇文告就是《教与军师长史参军掾属》。他在文中写道:“丞相府里让大家都来参与议论国家大事,是为了集中众人的智慧和意见,广泛地听取各方面有益的建议,从而取得更好的效果。”

[출전] 삼국지 三国 蜀 诸葛亮《教与军师长史参军掾属》:“夫参署者,集众思,广忠益也。”

[동의어] 군책군력(群策群力), 광개언로(广开言路)

[반의어] 일의고행(一意孤行), 독단전행(独断专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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