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劉備) 현덕(玄德) 161~223 탁현(啄縣) 누상촌(樓桑忖)
  
▶ 중산정왕(中山靖王) 유승(劉勝)의 후예이며 한(漢) 경제각하(景帝閣下)의 원손(元孫)이었다. 항상 쌍고검(雙股劍)을 차고 다녔는데 황건적(黃巾賊)을 토벌하기 전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도원결의(桃園結義)를 맺었다.

수경선생(水鏡先生) 사마휘(司馬徽)의 권고와 서서(徐庶)의 추천에 의해 삼고초려로 군사인 제갈량(諸葛亮)을 얻어 적벽대전(赤壁大戰)의 승리에 보탬이 된다.

형주(荊州)를 빼앗은 후에 서촉(西蜀)을 얻고 다시 한중(漢中)을 점령하여 한중왕에 등극하여 촉(蜀)의 기업을 이룩하였다. 조비(曹丕)가 선양을 받자 스스로 한의 황제로 체통을 잇는다고 하였다.

오에 의해 관우가 죽자 직접 대군을 이끌고 오(吳)를 정벌하려하나 육손(陸遜)의 화공(火攻)에 대패하고 병을 얻어 백제성(百濟城) 영안궁에서 승상(丞相) 제갈량에게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부탁한 후 장무 3년에 63세로 죽었다. 시호는 소열(昭烈)이다. 일을 처리함에 있어 인의(仁義)로 처리한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삼고초려(三顧草廬), 비육지탄(卑肉之嘆), 수어지교(水魚之交)등의 고사성어에 관련 있는 인물이다.

▶ 출신지 : 탁군 탁현, 직위 : 안희현위 - 좌장군 - 한중왕 - 황제

촉한의 초대 황제. 자는 현덕(玄德). 전한 경제의 황자 중산정왕의 후손.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신발과 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려운 환경이었으나, 15세 때 노식에게 사사하여 동문 공손찬과 교의를 맺고 호혐들과 교유하는 한편 관우, 장비와 의형제를 맺었다.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도당을 모아 그 토벌에 참가하여 벼슬길에 올랐으며, 그 후 공손찬에게 의탁하여 원소와의 대전에서 공을 세웠다.

196년, 원술로부터의 공격을 물리치고 진동장군 의성정후에 임명되어 조조에게 의탁하고 있었으나, 조조 살해 계획에 참가했다가 이 계획이 사전에 누설되자 하비로 탈주하였다.

원소, 조조의 관도대전에서는 원소와 동맹하고, 이에 패하자 형주목 유표에게로 갔다.

이 무렵, 삼고지례로 제갈량을 맞아들여 그의 계략으로 형주에서 기반을 구축하던 중, 유표가 죽고 그의 아들 유종이 조조에게 항복하자 조조가 대군을 거느리고 형주를 공격해 왔다.

유비는 손권과 동맹하여 적벽대전에서 조조를 대파하고 형주를 확보하였다. 그러나 형주의 영유 문제를 놓고 손권과 대립하여 명장 관우가 죽고 형주는 손권이 영유하게 되었다.

유비는 이 사이 한중을 공격하여 한중왕이 되었으며, 220년 조비가 한헌제의 양위로 위의 황제가 되자, 221년 유비도 제위에 올라 한의 정통을 계승한다는 명분으로 국호를 한이라 하니, 이른바 삼국의 촉한이다.

다음해 형주의 탈환과 관우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였으나 이릉의 싸움에서 대패하여 백제성에서 후하를 제갈량에게 위탁하고 병사하였다.

▶ 한실의 먼 종친으로 자는 현덕(玄德). 탁군 누상촌( 郡樓桑村)에 살았으며 관우 장비와 도원(桃園)에서 결의형제를 맺고 일어나 황건적(黃巾賊)을 친 것을 시초로, 줄곧 난세의 전진중을 헤치며 반평생을 보냈는데, 때로는 환경이 호전된 적도 있었으나, 줄곧 용병대장(傭兵大將)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처음엔 공손찬(公孫瓚)에게 의지했다가 서주 태수(徐州太守) 도겸(陶謙)의 지우(知遇)로 소패(小沛)를 지켰고, 조조와 연합하여 여포(呂布)를 파하고 돌아와, 조정에 서게 되고 황숙(黃叔)이라 불리우던 때가 그의 전반기의 가장 득의의 시대다. 허전(許田)의 사냥에서 조조의 무엄한 태도를 본 이래, 동승(董承)을 통해 의대조(衣帶詔)를 받고 조조 토벌을 의도하고는 평생을 변하지 않는다. 그 뒤 말할 수 없는 고난을 겪다가, 삼고 초려(三顧草廬)하여 제갈양을 얻은 뒤부터가 그에게 있어서 큰 전환기요, 삼국지 전편을 토해서도 전환기라 하겠다.

전편을 통하여 인의(仁義)의 화신처럼 그려져 있고, 어떻게 보면 무능할 정도로 착하게만 나타나 있어, <유현덕 모양 울기만하느냐>는 문자까지 생겼을 정도다. 그러나 그의 뛰어난 식견과 역랑은 곳곳에 드러나 있다. 관우의 원수를 갚으려던 계획에 신변의 누구 하나 찬동하는 이 없는 일이었으나, 이를 강행하다 자신도 수명을 줄였지만, 두 아우를 죽게 한 동오(東吳)와 공존하지 않겠다는 개인적인 심경은 눈물이 날 정도다.

잘하면 제2의 광무황제(光武皇帝)를 꿈꾸었겠지만, 전편에 가끔 나오듯 정해진 운명을 어쩔 수 없었고, 그가 죽은 뒤 제갈양 강유(姜維)가 잘 붙잡았건만 아들대에 결국 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