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조(曹操) 맹덕(孟德) 155~220 패국(沛國) 초군(焦郡) 사람
  
▶ 원래 성은 하후(夏侯)씨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무척 영민했으며 아만(阿瞞)과 길리(吉利)라고 불리었다. 난세의 간웅(奸雄)이라고 불러지기도 하지만 문무(文武) 모두에 비상하였다. 조조의 아명(兒名)이 아만(阿瞞)이었기 때문에 얕잡아서, 또는 애칭으로 그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황건토벌에 큰 공을 세웠으며 동탁의 사후에 혼란에 빠진 대륙을 종횡하며 한(漢) 승상(丞相)이 되어 제후들을 호령하였다.

무력으로 원소(袁紹), 여포(呂布), 유표(劉表), 마등(馬騰), 마초(馬超), 원술(袁術), 장로(張魯) 등 군웅들을 평정했다.

후일 구석(九錫)을 받고 진위왕(晋魏王)에 책봉되었고 위왕(魏王)이 되었다.

원호법 등의 당시에 생각할 수 없는 훌륭한 일을 많이 했으며 병사와 장수를 다루고 상벌을 주는 것 등은 당대 최고라고 전하여진다.

적벽에서 패하여 중원통일의 꿈을 접었으나 그의 아래에는 항상 능력있는 모사들과 장수들이 가득해 그를 존경하며 따랐다.

조비(曹丕)가 한(漢)에서 선양을 받은 후 무황제(武皇帝)로 추존되었고 위(魏)의 태조(太祖)가 되었다.

모든 면에서 뛰어나 위나라가 삼국 중 가장 큰 세력을 가지도록 기틀을 세웠다.

의천검(依天劍)이나 청홍검(靑紅劍)등의 명검을 가졌고 맹덕신서(孟德新書)를 저술하였다. 조황비전(爪黃飛電)이란 명마를 소유하였다.

죽을때 창덕부강무성(彰德府講武城)에 가묘 72곳을 만들어 무덤을 파헤치지 못하게 하였다.

▶ 출신지 : 패국 초현, 직위 : 낭 - 대장군 - 승상 - 위왕

삼국시대 위왕조를 세운 인물. 자는 맹덕(孟德). 묘호는 태조. 시호는 무황제. 패국의 초 사람.

환관의 양자의 아들인데, 황건난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어 마침내 헌제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을 휘두르게 되었다.

화북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 건안 13년 손권, 유비의 연합군과 적벽에서 싸워 대패, 이후로 그 세력이 강남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같은 해 승상, 동 18년 위공, 동 21년 위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낙양에서 죽었다.

조조는 또한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그 아들 조비, 조식과 함께 시부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의 흥륭을 가져오게 하였다.

후세에 조조는 간신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의 재평가를 둘러싼 논쟁이 일기도 하였다.

▶ 패국(沛國) 초군( 郡) 사람으로 자는 맹덕(孟德). 본시 하후씨(夏候氏)였으나, 아비 조숭(曹嵩)이 환관(宦官)인 중상시(中常侍) 조등(曹騰)에게 양자 들어간 때문에 조씨로 일컬었다. 기도위(騎都尉)로 황건적(黃巾賊) 토벌에 참여한 것을 시초로 등장하기 시작하여 동탁(董卓)을 죽이려다 실패하고 돌아가 의병을 일으켜 산동 지방에 기반을 닦았다. 헌제(憲帝)가 궁지에 빠졌을 때는 시간을 지체 않고 그를 맞아 들여 호령 천하하는 명분을 삼았다. 기회를 보는데 빠르고 문무를 겸전하여, 육십 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줄곧 출장 입상(出將入相)하여 천하를 주름잡았다. 수하에 많은 인재를 거느려 능소능대(能小能大)하게 그들을 구사(驅使)하였으며, 적과 싸워 위험한 경지에 빠진 적이 무수히 있었으나 그때마다 천행으로 모면하였고, 또한 야심을 꺾지 않았다. 승상(丞相)으로 위공(魏公)으로, 위왕(魏王)까지 되었던 때문에,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심리로 작용되었겠지만, 삼국지 연의란 본시 관우가 민간에서 신으로 숭배된 뒤, 그의 의기(義氣)를 중심으로 엮어졌기 때문에, 줄곧 미움의 대상으로 그려져 있으나, 전반부에서 단연 주인공의 위치를 차지해 있다. 아들 조비(曹丕)는 대를 잇자, 이내 황제 위를 일컫고 그에게 무제(武帝)라 시호를 올렸다. 삼국이라고 하나 실력에서 월등히 우세하였다 보겠고, 촉한(蜀漢)이 한의 법통을 이은 것을 표방하나 정사(正史)인 진수(陳壽)의 삼국지에서는 그의 세력의 후계자인 위(魏)를 정통으로 처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