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금구망(人琴俱亡) ◑

▶ 人 사람 인, 琴 거문고 금, 俱 함께 구, 亡 죽을 망.

▶ 가까운 이들의 죽음에 대한 애도(哀悼)의 정(情)]을 비유한 말

▶ 세설신어(世說新語) 상서(傷逝)편에는 죽음에 대한 애상(哀傷)을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동진(東晋)의 유명한 서예가인 왕희지(王羲之)의 다섯째 아들 왕휘지(王徽之:字는 子猷)와 일곱째 아들 왕헌지(王獻之:字는 子敬) 형제가 모두 병에 걸렸는데, 동생인 자경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형 자요는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어찌 자경의 소식은 없는 것입니까? 그 얘가 이미 죽은 게 아닙니까?"라고 물으면서 조금도 슬퍼하거나 울지는 않았다.

형 자요는 즉시 수레를 타고 동생의 빈소로 달려가서는 동생의 관(棺) 위에 올라가 동생이 평소에 좋아하였던 거문고를 꺼내들고 타보았다.

그러나 거문고가 소리를 내지 않자, 자요는 이를 내던지며 "자경아, 자경아, 너와 거문고가 함께 죽었구나(子敬, 子敬, 人琴俱亡)"하면서 한참동안이나 애통하였다. 한 달쯤 지나 형 자요도 그만 세상을 떠났다.

[출전] 세설신어(世說新語)

▶ [유사어] 인금병절(人琴幷絶)


▶ 인금구망(人琴俱亡)

 

유물을 보니 죽은 사람을 추모하게 됨  


"유물을 보니 죽은 사람을 추모하게 됨"을 비겨이른다. "그사람 죽으니 그에 따르는 모든 것이 다 쓸데없구나", "유물을 보니 죽은 사람 생각 절로난다"는 뜻이다. 


진나라(晋代)의 서예가 왕희지(王羲之)는 슬하에 일곱명의 아들을 두었다. 그중에서 다섯은 비교적 유명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왕희지의 장남인 현지(玄之)는 일찍 죽은 탓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못했고 전란에서 죽은 차남 응지(凝之) 역시 역사에 기재된 바가 많지 않다. 비교적 널리 알려진 아들이 바로 휘지(徽之)와 헌지(献之)이다. 


특히 왕헌지는 왕희지를 이은 서예가로 유명했다. 


자유분방한 성격의 왕휘지는 일찍 참군했던 적이 있었다. 한번은 대사 마환온(马桓温)이 왕휘지를 불렀다. 


"지금 네가 맡고 있는 일은 어떤 것이냐?" 


왕휘지는 말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마환온이 물었다. 


"대체 몇마리의 말을 돌보고 있는 것이냐?" 


이에 왕휘지는 모른다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후 왕휘지는 기마병으로 자리를 옮겨 환충(桓冲)장군의 밑에서 일했다. 


어느 한번, 환충 장군과 함께 밖에 나갈 일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억수로 쏟아졌다. 그러자 왕휘지는 바로 말에서 내리더니 환충 장군이 타고 있는 마차안으로 몸을 피하며 밖에 비가 오는데 어찌 혼자만 마차안에 앉아있을 수 있냐고 말했다. 


또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왕휘지가 산비탈에 살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종일 큰눈이 내려 대지는 온통 은백색으로 단장을 했다. 갑자기 친구생각이 난 왕희지는 밤새 걸음을 재촉해 친구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친구집에 도착한 왕희지는 인사조차 하지 않고 도로 돌아갔다. 대체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 사람들한테 왕휘지는 "내가 그냥 가고싶어서 갔을 뿐인데 꼭 친구를 만나고 와야 될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라고 대답했다. 


왕휘지의 동생 왕헌지는 서예에 뛰어난 솜씨를 갖고 있었을 뿐만아니라 그림에도 남다른 재주가 있었다. 한번은 자택에 도적이 들었다. 집안의 물건을 모조리 훔쳐낸 도적이 문을 나서려고 할 때 왕헌지는 매우 담담하게 "이보게, 그 파란색 방석은 우리집 유물이니 그것만은 남겨두고 가게나"라고 말했다. 놀란 도적은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한번은 오군(吴郡)을 지나던 왕헌지가 유난히 아름답게 가꿔놓은 고벽강(顾辟疆)의 화원을 보고 주인의 동의를 거치지 않은채 들어가서 마음껏 놀았다. 고벽강은 왕헌지에게 예의를 모르는 사람이라며 호되게 꾸짖었다. 왕헌지는 꾸지람을 당하면서도 화를 내지 않았을 뿐더러 마음속에 앙심을 품지도 않았다. 


그후 왕헌지는 병으로 앓아눕게 되었다. 


한 도사가 가르쳐주기를 누군가 대신 이 아픔을 감당한다면 병세가 금세 나을 것이라 말했다. 그말을 들은 왕휘지는 자기가 대신하겠다고 나섰다. 


그러자 도사는 "자네 역시 긴 명은 아닌데 대신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헌지는 병으로 죽었다. 왕휘지가 슬픔에 겨워 예전에 왕헌지가 타던 거문고를 타보려 했으나 어떻게 노력해도 음이 맞지 않았다. 


"人琴俱亡"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로 유물을 보니 죽은 사람을 추모하게 됨을 비겨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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