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3부 (6)

새벽에 아무도 몰래 하숙집을 빠져 나왔다. 일찍 자니까 일찍 일어나진다는 자연의 이치를 깨달았다.
새벽 어둠이 물러 가고 있다. 일요일 이른 아침의 분위기는 여유로움 이랄까? 뚜렷하지 사람들의 영상에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것이 보인다.

"어허!"
에헤라 좋다. 물이 깨끗하다. 목욕탕 내의 사람들이 아직 많지 않다. 발가 벗은 채 삶의 표정이 잘 나타나지 않는 대중탕 내의 사회는 아주 평등하다.
물안개 쌓인 이 곳에는 말이 많이 없어졌다. 평등하지만 아주 개인적이다. 때를 다 밀고 등 밀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없다.
이 곳도 평등하지 않았다. 저 배 나온 허연 아저씨는 때밀이가 등을 밀어주었다. 그리고 안마까지 해 주었다.사우나실에서 땀 빼면서 깔려 있던 수건에 등 붙여 밀고, 으... 냉탕에서 개 헤엄 한 번 치고 나왔다. 시원하다.

목욕탕을 나왔다. 밝은 아침 공기, 어허! 개운하다. 내 삶도 이렇게 개운해졌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도 사람들의 걸음 걸이는 빠르다. 선명하게 드러난 사람들의 영상에는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여전히 바쁘다는 것이 보인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 하숙집이다. 꿈이 있고 미소가 스미는 곳이다. 밥 짓는 냄새가 여기서 맡을 정도다. 하숙집으로 들어갔다. 아침을 하숙집 그녀 혼자서 만들고 있다. 아줌마가 많이 편찮으신가? 아니면 그녀가 혼자 하겠다고 우긴 것일까? 하여간 익는 밥 냄새가 곱다.
"어휴, 아침 일찍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백수가..."
또 그녀가 시비를 건다. 냄비에 국 끓인 찬들을 넣고 있던 그녀가 빼꼼이 내가 들어 옴을 보더니 말을 걸었다.

"그 아침에 좋은 말로 인사 좀 해 주면 어디 덧나요? 헛갈리게 말이야."
그녀가 씩 웃었다.
"그래. 어디 갔다 왔어요? 머리가 젖었네."
"수영하고 왔지요."
"그래요? 저기 새로 생긴 수영장 갔다 왔어요?"
"뭐 거기서만 수영할 수 있나?"
"나도 수영이나 배울까? 언제 한 번 같이 갈래요?"
허허. 같이 갈래요? 요즘 들어 그녀가 같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내가 만만한가? 아니면 좋은 건가?
정말 그녀 데리고 수영이나 하러 갈까? 그렇지만 오늘 내가 갔다온 곳은 여자가 못 가는 곳인데...
"밥이나 해요. 나 목욕하고 왔어요. 남탕 갈 자신 있으면 같이 가고."
그녀가 날 빤히 쳐다 보며 말을 못하고 있다. 이겼다 하하.

학생일때가 좋다. 오늘 아침 식탁에서 학생들의 모습에는 새벽에 본 영상이 들어 있었다. 졸린 눈을 뜨지 못하고 하품을 하며 식탁으로 나온 녀석도 있었으나 삶에 찌든 모습은 아니다. 그래 이 하숙집에 찌든 모습은 없다. 나도 답답함은 있으나 아직 삶에 찌들지 않았다.

음악을 틀어 놓고 긍정적으로 앞 날을 생각 해 보았다. 그래 해 보자. 짧은 글 하나를 지어 볼 생각이다. 아자! 아이 캔 두 잇.

"쾅! 쾅!"
앗, 방해자다. 우쒸, 글 좀 써 보려고 다짐을 했는데 방해자가 나타났다.
"뭐해요?"
"글 씁니다."
"바빠요?"
"글 씁니다."
"약속 같은 거 없죠?"
"글 씁니다."
"나랑 같이 어디 좀 갈 수 있어요?"
"글 씁니다."
"맛있는 거 사 줄게요."
"어디 가는데요?"
아, 글 써야 하는데. 요즘 식욕이 당겨서 탈이다.
"시장 가는데."
"어제 장 봐 왔잖요."
"반찬 사러 가는 거 아니에요. 뭐 살게 좀 많아요."
"그래서 내 짐꾼 되어 달라구요."
"으응."

한 번쯤 그냥 빈말이라도 나하고 같이 걷는 게 좋아서, 아니면 그냥 같이 가고 싶다,라는 대답 해 주면 어디 덧 날까?
"뭐 사줄건데요?"
"뭐 먹고 싶은데요?"
"스테이크요."
"현철아!"
"걔는 왜 불러요?"
"차라리 걔 데리고 가려구요."
"그럼. 슈퍼 슈프림 피자요."
"현철아!"
씨바. 진짜 그 녀석하고 가라고 그래 버릴까 보다.
"알았어, 순대요."
"좋아요. 내 특별히 찹쌀 순대 사 줄게요."

집에서 입는 추리닝 말고 밖에서 입어도 좀 덜 쪽 팔리는 패션 추리닝으로 갈아 입고 밖으로 나왔다.
"엄마 다녀 올게요."
"내가 말한대로 잘 보고 사와야 돼. 아무래도 불안하네. 같이 가자니까."
"염려 마세요. 짐꾼도 있는데요 뭘."
그녀가 엄마에게 인사하는 걸 들었다. 짐꾼? 백수보다는 낫네.
"신군이 같이 가려나 보네."
하숙집 아줌마가 방에서 나오셨다. 잘 몰랐는데 손을 좀 떠신다.
"네."
"그럼 잘 다녀 오게나."

하하. 그녀가 내 옆에서 걷는다. 허리까지는 분명 아가씬데 무릎 밑에까지 흘러 내린 주름 치마는 아줌마 복장 같다. 뭘 보나 이 사람아.
"왜 웃어요?"
"치마 하나 사 드려요?"
"동엽씨가 왜 내 치마를 사줘요?"
"맨날 그 치마잖아요."
"이게 편해요. 그리고 나 백수에게 치마 받아 입을 정도까지 옷 없질 않으니까 염려 마세요."
괜히 말했다. 무안하다. 말 없이 걸었다. 나중에 짐이 무거워도 들어 주지 말까 보다.
"삐쳤어요?"
"백수는 안 삐칩니다."
"삐쳤구나?"
"삐쳤으면?"
"장난으로 치마 사 준다고 한 것 아닌가?"
"아무리 장난으로 말했다고 그렇게 답하면 서운하죠."
"그럼 미안해요."
저 상류층 여자가 미안하다고 말했다. 장 볼게 무거운가 보다.

일요일 점심때가 못 된 이른 시간이지만 시장은 활기가 있었다. 재래 시장은 그 만의 맛이 있다. 저거 보면 알기나 할까? 내 보기에는 똑 같거만 그녀가 뒤적거린다.
"그게 뭐에요?"
"냉이도 몰라요?"
"그럼 그 옆에 것은 뭐에요?"
"고사리잖아요."
그녀가 풀 종류를 제법 많이 샀다. 저걸로만 반찬을 만든다면 내 단식 투쟁할 것이다.

어물전으로 갔다. 그래 생선도 사야지.
그녀가 제법 큰 생선을 들고 한참을 들여다 본다. 진짜 뭐 보면 알고 저러나, 의심이 간다.
"그건 뭐에요?"
"도미잖아요. 동엽씨 아는 거 뭐 있어요?"
그녀가 상당히 비싼 도미를 한마리 떡하니 샀다. 그리고 여러 가지 죽은 물고기들을 샀다. 내가 들고 있는 짐이 부담스럽기 시작했다.
건어물전으로 가서 문어 다리도 사고, 돌아 다니면서 깨끗한 과일과 대추도 샀다.

"제사 지내요?"
"으응."
그녀가 고개를 끄덕 거렸다.
"누구 제사요?"
"우리 아빠요."
"언젠데요?"
"모레요."
아 그렇구나. 그건 그렇다 치고 밥 때가 훨씬 지났다. 배는 고프고 들고 있는 것은 점점 무거워 졌다.
"다 샀어요?"
"거의. 대충 오늘 살 것은 다 샀어요."
"잘 됐다. 배고파 죽겠어요."
"저기 김밥하고 순대하고 파는데 있어요."
아, 집하고 반대 방향이다. 그래도 먹고 나면 힘이 좀 생기겠지. 그녀는 부피는 크지만 졸라 가벼운 풀이 들은 봉지만 들고 있다. 그렇게 빨리 걸으면 내가 잘 따라 갈것 같냐?

순대랑 김밥이 꿀 맛 같다. 나 꿀 별로 안좋아 하는데... 맛있다는 소리지. 그녀가 좋은 미소로 나를 쳐다 본다.
"동엽씨?"
"왜요."
"화요일날 일찍 와 줄수 있죠?"
"그런다 그랬잖아요."
"제사 때 남자가 없으니까 영 허전 하더라구요."
"하숙집 애들 많잖아요."
"걔들은 동엽씨랑은 좀 틀려요."
"뭐가요?"
"하여간, 내가 제사 지내는 동안 옆에 좀 서 있어 주세요. 엄마도 동엽씨가 옆에 서 있으면 마음이 편할 것도 같거든요."
"알았어요. 뭐 힘든 일도 아닌데."
"고마워요."

그녀가 나를 보며 조금 안스런 미소를 짓고 있다. 눈빛이 참 맘에 든다. 이 집 김밥 참 맛있다.

아까 미소로 보아 내가 들고 있는 짐 하나 정도는 자기가 들어 줄 줄 알았는데, 여전히 그녀는 풀 봉지만 들고 걷고 있다. 거기다가 빨리 갔으면 하는데 가다 말고 양복점 앞에 떡 서버렸다.
"동엽씨 잠깐 따라 들어 와 봐요."
내 짐이 지금 얼마나 무거운지 알기나 할까? 멋있는 옷들이 참 많다. 나도 양복이 있다. 봄, 가을 양복 한 벌, 겨울 양 복 한 벌. 최소한 단벌 신사는 아니다. 그래도 옷들을 보니까 괜히 하나 쯤 더 있었음 하는 생각이 든다. 근데 여긴 왜 들어 온겨?
그녀가 넥타이 진열대 앞에 서 있다. 넥타이들을 찬찬히 고르고 있다.

"동엽씨 이리 와 봐요."
짤래 짤래 그녀 앞으로 갔다. 그녀가 넥타이 하나를 고르더니 내 목에 갖다 댄다. 양 손에 뭘 들고 있는 나는 두 손을 움직일 수 없다. 멀쭘히 그녀가 하는 짓을 쳐다만 봤다.
"이 색깔이 우리 아빠가 젤 좋아하던 색깔이에요. 동엽씨는 어때요?"
"좋네요."
"그래요?"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그렇게 빨리 가버리면 또 쫓아 가기 힘들지.

손가락이 끊어 질 듯 하다. 그녀는 뭐가 좋은지 얼굴이 참 밝다. 난 죽겠는데...

7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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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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