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처세술] 조조의 정치신조  

신상필벌에 세심한 배려를 하고 있는가  

화북을 통일한 후, 건안 7년(202년), 조조는 오래간만에 고향인 패현으로 돌아갔다. 고향의 마을에서는 이전의 방탕아가 이제는 천하를 거머쥐었다고 해서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옛벗을 어찌 잊을소냐!  

조조는 옛 친구들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어디를 가나 낯익은 얼굴은 볼 수가 없어, 어느 가정에서나 전쟁의 희생자를 내고 있음을 알았다. 고향의 젊은이들은 모두 조조의 군대에 가세하였으며, 오랫동안의 전쟁에서, 혹은 죽고, 혹은 부상을 당했던 것이다.  

그 당시의 일이니, 시골의 마을인 패현의 인구도 적었을 것이다. 그런 곳에서 일손의 태반을 잃었으니 대단힌 일이었다.  

일장공성만골고(一將功成萬骨故-한 장군의 공명은 여러 병졸의 희생으로써 이루어진다.)  

드물게 감상적이 된 조조는, 다음과 같은 포고를 내었다.  

"나는 천하의 만민을 위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나의 휘하로 달려온 우리 마을의 장정들은 거의 전사했으며, 이제는 거리를 걸어다녀도 낯익은 사람을 만나볼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참으로 폐부를 찌르는 듯한 슬픔이며, 희생자 가족들의 마음을 헤아리고도 남음이 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휼병 조치를 취하기로 한다.  

- 나의 군대에 참가하여 전사한 자로, 후계자가 없는 가정에서는 그 친척으로 후계자를 세우도록 한다.  
- 전사자의 가정에는 일률적으로 좋은 밭을 부여하며, 경작용의 소를 지급한다.  
- 유족의 자녀를 위한 교육기관을 설치한다.  
- 전상자 및 그 가족의 생활은 모두 관에서 보장한다.  
- 향토에 충렬사당을 건립, 전사자를 이곳에서 모시도록 한다.  

이와 같은 조치는, 전쟁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애석해 하는 나의 태산같은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다. 죽어간 사람들의 영혼이 이것을 알아 준다면 나도 마음 편하게 그 사람들과 황천에서 만날수 있으리라."  

이 포고문은 조조 자신이 쓴 것으로 되어 있는데, 우두머리가 된 사람으로서 부하에 대한 배려를 잘 나타내고 있다. 고향 사람들에 대한 선전의 마음도 다소는 있었을 것이지만, 숙적과의 혈전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단계에서, 이렇게 섬세하고 빈틈이 없는 휼병 조치를 시행한데 대해서는, 과연 대장군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조조는 군률에 엄격했고, 위반하는 부하는 용서없이 처벌했지만, 신상필벌을 제일로 하여 엄격한 대신 보살핌도 잘 했다. 그 후에도,  

"논밭도 없고, 자립할 수 없는 유족이나 전상자에 대해서는 관에서 지급하는 식량이 끊어지지 않도록 각 현령은 특별히 유의하라. 나의 뜻을 어기는 자는 엄벌에 처한다."  

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건안 8년(203년), 조조는 영지 내에 다음과 같은 부흥정책을 제정하였다.  

- 감세정책 ; 조세는 묘(30평)당 곡물 네 되, 한 가구당 명주 두 필, 솜 두 근으로 하고, 그 이상의 세금이나 노역은 금지했다.  

- 교육정책 ; 각 군마다 학교를 만들고, 5백 호마다 시학관을 두었으며, 학문이나 무예에 뛰어난 청소년은 서울로 관비 유학을 보냈다. 이렇게 해서 육성된 젊은이가 훗날, 위나라의 왕조를 지탱하는 인재로 성장하였다.  

- 산업정책 ; 특히 농업생산을 장려했다.  

이처럼 정치가로서의 조조는, 추상열일(秋霜烈日) 속에서도 현실 사회에 맞는 선정을 베풀었다. 군인 출신자의 인물로서는 드물게 행정수완이 있는 톱이었던 것이다.


멸망하는 조직, 살아남는 조직
  
한나라 왕조는 바야흐로 멸망의 지경에 처해 있었다. 창시자인 고조 이래, 그토록 강대함을 자랑했던 대한제국이, 어째서 그렇게 맥없이 붕괴되려 하고 있는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관료의 무능과 부패의 탓이라고 조조는 통감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부하에 대하여, 민중의 공복이어야 함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현령과 군수 등, 지방 장관이 부임할 때에 조조는 다음과 같이 훈시하였다.  

"그대의 봉록은 백성의 고혈이다. 아래로 백성을 학대하기는 쉬우나, 위로 하늘을 속이기는 어렵다. 그대의 봉록은 결국은 민중의 고혈을 짠 세금에서 나오는 것임을 잊지 말라. 그러므로 백성의 이익이 되는 일만을 생각해서 정치를 행하라."  

천하의 군웅이 서로 다투는 속에서, 위나라가 천하를 거머쥘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위정자 조조의 공복 정신이 열매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조조의 훈시는 <서경(西經)>에서 인용한 것으로, 중국에서는 공복 정신의 원형이 되었다. 도대체 공복 정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조가 적절히 훈시한 바와 같이, '관은 백성이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을 착각하여, '백성은 관이 키우는 것'이라고 한 것이 소위, 관존 민비의 사고방식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사상이 왕성하게 피어 나고 있는 요즈음, 그러한 시대착오적인 관료나 정치가는 적어졌지만 그래도 가끔씩 우쭐거리는 머저리들이 나온다.  

자기는 '선량(選良)'이니까 민중을 지도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정치가, 금방 관리 냄새를 피우려 드는 공무원, 권력과 금전에는 약하면서 서민에게는 강한 관료, 무기력, 무책임, 무사안일, 이른바 '삼무주의'의 관리 근성... 등이, 지금도 때때로 매스컴을 풍성하게 하는 일이 있다. 모든 관료나 정치가는 <서경>의 이 격언을 아침 저녁으로 외워서, 반성의 양식으로 삼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어느 나라에서나 관료조직과 행정기구는 커지면 커질수록 낭비와 불합리가 눈에 띄고, 정부의 지도력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폐단도 커진다.  

지금이야말로, 너무나 비대화된 관료조직과 행정기구는, '퍼킨슨의 법칙'을 적용할 필요도 없이, 민주주의와 인권옹호의 양식에 따라 근본적으로 메스를 가해, 개혁되려고 하고 있는 시대이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남북의 어느 쪽이든 관계없이, 전 지구적으로 일고 있는 관료 세력 축소의 물결을 막으려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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