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처세술] 기산의 전투  

예기치 못하는 때의 보급선을 확보하여 두라  

건흥 9년(231년), 공명은 또다시 대군을 기산으로 진군시켰다.  

한중에서 기산까지는 거리가 제법 멀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의 원정에서 촉군이 가장 고생했던 것은 군량의 보급과 운반이었다. 이번의 원정에 즈음하여 공명은 역시 울트라 C를 고안해서 이 난문을 해결하였다.  

공명은 '목우(木牛)'와 '유마(流馬)'라고 하는 특수한 물자 운반차를 고안하였다. 목우는 외바퀴 수레, 우마는 네바퀴 수레를 말한다. 중국의 농촌에서는 사람이 밀고 다니는 외바퀴 수레와 우마가 끄는 네바퀴의 짐수레가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을 발명한 사람이 제갈공명이라고 전해져 오고 있다.  

기산에는 위나라의 외곽을 둘러싼 성이 있었는데, 공명은 그곳을 포위한 후, 굳이 점령하지는 않고 주변 일대를 소탕하여 발판을 굳히면서, 장안에서 오는 위나라 군대를 요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 무렵 위나라의 도읍에서는 대사마(국방장관)인 조진이 병으로 쓰러졌다. 명제는 곧 사마중달을 불렀다.  

"서쪽의 국경이 또다시 적의 침공을 받아 위태롭게 되었다. 그대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네."  

이리하여 사마중달은 조진을 대신하여 대사마가 되고 장합, 비요, 곽회 등의 장수들을 거느리고 출정하였다.  

사마중달이 출정했다는 소문을 듣고 공명은 호적수를 만났다는 듯이, 즉시 부대를 두 갈래로 나누었다. 일부는 그대로 기산성을 포위하고, 자신은 주력 부대를 인솔하여 상규로 진출하여 거기에서 사마중달군을 요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이윽고 곽회, 비요 등이 이끄는 위나라 군대의 선봉대가 도착하여 양군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공명은 위군의 선봉 부대를 간단히 물리쳤다. 이어서 사마중달의 본부대가 달려와 대기 중인 촉군과 육탄전을 벌였다.  

촉나라 군병들은 전력을 축적해 두고 있었으나, 위나라 군병들은 먼길을 달려왔으므로 기운이 없었다. 이대로 전투를 계속하다가는 전멸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사마중달은 전군에 철퇴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근처의 노성이라는 요새에 가서 틀어 박혔다. 공명은 노성 가까이에 까지 적을 쫓아가서 도전장을 보냈으나, 사마중달은 입을 다문 조개처럼 굳게 틀어박혀서 절대로 성 밖으로 나오려 들지 않았다.

성 안에 있는 적의 정세를 알 수 없으므로 무리하게 성을 공격하지도 못하고, 공명은 군대를 하나로 정리하여 기산으로 돌아가 그곳을 본진으로 삼았다. 이 상규의 전투에서 위나라 군대는 참패를 당했다. 수천 명의 전사자를 내고, 많은 무기를 빼았겼다. 그런데, 노성에 틀어박혀만 있는 사마중달에 대해서 부하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여러 장수들은 총대장인 사마중달을 이렇게 추궁했다,  

"우리 군대는 장안에서 원정을 온 것이지만, 적군은 더 먼곳에서 왔습니다. 병사들의 피로도나 보급선의 거리로서는 적군 쪽의 조건이 더 나쁠 것입니다. 이대로 적을 피하고만 있으면 사기에도 영향이 있고, 적의 의기를 북돋울 뿐입니다. 어서 기마대로 기산을 기습하도록 해주십시오."  

"아니다. 공명이 의도하는 바를 아직도 잘 알 수가 없다. 좀더 얼마동안은 움직이지 않는 편이 좋겠다."  

"사마장군은 어째서 그렇게까지 공명을 두려워하십니까. 마치 호랑이를 무서워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래서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추궁을 당하고서야 아무리 신중한 사마중달이라도 분기 충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해 5월, 사마중달은 이윽고 출격할 것을 결심하였다. 때마침 기산의 남쪽에 하평이 이끄는 촉나라의 선봉 부대가 포진하고 있었다. 사마중달은 장합에게 촉의 선봉부대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본부대를 인솔하여 공명의 본진을 공격하였다.  

"별일이군, 정면으로 부딪쳐 오다니."  

공명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강유, 위연 등을 이끌고 성 밖으로 출격하였다. 정공법을 쓰는 정면 대결로서는 위군은 촉군의 맞수가 아니었다. 이번에도 역시 참패를 면치 못하여 많은 손해를 내고 후방으로 철퇴하였다.


너무 쫓으면 스스로의 몸을 다친다.  

어느 날, 촉군의 소수 부대가 위나라의 본진을 기습하였다. 허점을 찔렀으나 사마중달은 당황하지 않고 적의 기습부대를 격퇴시켰다. 그때, 부장군인 장합에게 약간의 병력을 주며 패주하는 적군을 추격하라고 명령하였다. 장합은 망설였다.  

"병법에는 '도망가는 적을 쫓아가서는 안 된다'라고 되어 있는데요..."  

"아니, 괜찮다. 최근 우리 군대는 계속 지고 있으니까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도 저 적군은 섬멸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  

장합군이 패주하는 촉군의 기습부대를 추격하여 목문곡까지 왔을 때 촉군이 반격을 가해 와, 거기에서 격렬한 육박전이 벌어졌다. 구원병을 이끌고 나온 촉군의 장군 강유가 쏜 화살은 목표에 어긋나지 않게 장합의 오른쪽 가슴에 꽂히어, 이 상처가 원인이 되어 위나라의 용장 장합은 전사하고 말았다.  

병법서 <손자>의 구변편(九變篇)에 야전에서 금해야 할 아홉 조목의 사항이 열거되어 있다. 그 여섯 번째의 항목으로서 '귀사물알'이라는 것이 있다. 상처를 입고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혀 있는 적을 무리하게 잡으면, 도리어 달려들어 자신이 다치게 된다는 뜻이다. 연전 연패로 인해 정상적인 신중성을 잃고 있던 사마중달은 이 금기사항을 어기어 장합을 잃게 되고 만 것이었다.  

'도망가는 적을 너무 몰아넣지 말라.'라는 것이나, '적을 포위할 때는 반드시 퇴로를 남기라.'고 하는 전법은, 중국 무장들의 상식인데 어쩐지 일본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모양이다. 역사상의 유명한 전투를 보면, 일본의 무장들은 추격할 때에는 패적을 한 명도 남기지 않고 몰아 넣었으며, 포위를 할 때에는 생쥐 한 마리도 놓치지 않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전술적으로 어느 쪽이 옳다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삼국지의 조조, 손권, 유비를 통해 알아본다. 여기에 잇는 자료는 "삼국지를 읽으면 사람이 보인다 (松本一男 지음, 이주영 옮김, 이목출판, 1995년 12월 10일 초판발행, 6,000원)" 에 나오는 자료로서 독자 여러분들은 이 책을 한권 구입하여 자기의 가까운 곳에 놓아 두고 자주 읽어 봄으로써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처세술을 익히기 바랍니다.>


소설 三國演義
第001 - 019回 桃園結義, 除董卓, 三讓徐州, 斬呂布
第020 - 038回 煮酒論英雄, 千里走單騎, 滅袁紹, 三顧茅廬
第039 - 059回 長板坡, 赤壁之戰, 三氣周瑜, 戰馬超
第060 - 080回 入西川, 逍遙津, 取漢中, 失荊州, 魏蜀稱帝
第081 - 105回 彝陵之戰, 七擒孟獲, 六出祁山,
第106 - 120回 九伐中原, 破西蜀, 三分歸一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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