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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st Ing Cup, semi-final 2
● Cho Hunhyun 九단
○ Rin Kaiho 九단
덤 : 8.0
제한시간 :
대국장소 : 서울
대국일자 : 1988-11-22
결과 : 283수 끝, 흑 7집승
▶ 제2, 3의 이창호 탄생을 기원하며... SubKorea 닷컴바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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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N[1st Ing Cup, semi-final 2]
DT[1988-11-22]
PB[Cho Hunhyun]BR[九단]
PW[Rin Kaiho]WR[九단]
KM[8]RE[B+7]
C[RIGHT ● Cho Hunhyun 九단 ○ Rin Kaiho 九단 283수 끝, 흑 7집승
▶ 제2, 3의 이창호 탄생을 기원하며... SubKorea 닷컴바둑]
1988년 11월 20일, 치열한 토너먼트를 통해 검증을 끝낸 세계 4강의 스타들이 서울에 모였다.
응씨배 준결승전.
조훈현 VS 린 하이펑, 녜 웨이핑 VS 후지사와.
어느 누구 하나 부족함이 없는 대승부사들이었다.
다만 그 중 63세의 노구 후지사와의 존재가 조금은 이채로웠다. 그 자리에 고바야시나 조치훈이 올라와 있었다면 응씨배 세계프로바둑선수권대회 4강전의 구성이 보다 완벽하게 짜여졌으리라.
그러나 후지사와의 저력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희망사항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60년대 당시 일본의 최강 사카다와 10년간 자웅을 겨뤘고, 이후 일본 최대 타이틀인 기성전을 6연패한 후지사와는 도박과 알콜중독, 위암 선고를 받는 등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마음만 드잡으면 큰 승부에서 괴력을 발휘하는 인물, 그래서‘괴물 슈코’로 통했다.
오랜 투병생활로 피골이 상접한 후지사와는 서울에서 조훈현을 만나자 어린애처럼 즐거워했다. 언젠가 조훈현을 만나기 위해 술병 하나만을 달랑 쥐고 현해탄을 건너온 적이 있었던 그였다. 그 때는 사랑하는 제자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해 아무런 목적없이 날아온 거였지만 이 번에는 상금 40만 불이 걸린 바둑대회의 적수로 찾아온 거였다.
아아, 드디어 이런 날이 우리에게 도래하다니.
후지사와는 마냥 유쾌하기만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환갑이 지난 나이로 세계 정상권에 오른 자신의 영광도 즐겁지만 그보다도 그가 가장 아끼는 기재 조훈현이 기대에 걸맞게 성장해준 것이 너무 기특하고 반가웠던 것이다.
“쿤켄(훈현의 일본 이름), 보나마나 너하고 내가 결승에서 만날 텐데….그 땐 봐주고 싶어도 어쩔 수 없다. 서로 최선을 다하자.”
장난기어린 말로 후지사와는 조훈현에게 엄포를 놓았다. 그는 어느 자리에서나 세계최강의 기사는 조훈현이라고 강조하고 다녔다. 그러면서 교묘하게(?) 자신의 성가(聲價)를 함께 끼워 띄었다.
“하하, 왕년에 조훈현이 나한테 석 점까지 두고 바둑을 배웠었지.”
그런 말을 들으면 조훈현도 즉각 응사한다.
“에이, 선생님도 저한테 두 점까지 까신 적 있었으면서….”
한 판 승부에 따라 한 점씩 칫수고치기 시합을 했던 유학 시절의 에피소드였다.
그 시절 소년 조훈현에게 내기바둑을 권유해 세고에 스승으로부터 혼쭐이 나게 만들었던 장본인 후지사와, 그는 언제나 그런 식의 장난꾸러기였다.
바둑 한 판을 가르쳐주어도 그냥 두는 법이 없었다. 하다못해 어깨 주물러주기 등의 조건이 따랐다.
두 사람만이 공유한 천진난만한 추억을 떠올리며 조훈현은 63세 후지사와 선생의 어깨를 가볍게 주물러주었다.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의 팬들은 그 장면이 썩 유쾌해보이진 않았으리라.
어쨌거나 서울의 4강전에서 조훈현과 후지사와는 심정적으로 우군이라고 해도 좋았었다.
반면 응씨배 주최 측은 이 4강의 구도가 더 없이 좋은 흥행카드로 여겼다고 한다.
대만의 거부 응창기씨는 상해 출신, 40년 동안 바둑 룰을 연구해 온 집념가로서 바둑문화 창달에 일등공신이지만 본질적으로 응씨배 세계대회는 일본바둑에 대한 중국의 도전이라고 봐야 옳았다.
그 시나리오에 당연히 한국은 들러리였고, 동양 삼국을 제외한 외국대표들은 양념이었다.
대회의 타이밍도 아주 절묘했다. 중일슈퍼대항전에서 녜 웨이핑이 11연승을 거두며 일본의 고수들을 연파하지 않았던가?
그 무렵 서양 사람들은 세계바둑의 일인자로 섭위평을 꼽고 있었다. 주최 측은 녜 웨이평과 린 하이펑이 결승에 오르길 내심 바라고 있었다. 그들 중 누가 챔피언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둘 다 중국인이었으므로.
롯데 호텔에서 벌어진 준결승전 3번기.
조훈현은 첫판에 백으로 무난히 불계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중허리 린 하이펑은 기풍이 상극인 기사. 아무래도 발빠르고 치열한 조훈현의 기풍이 그로서는 거북했던 듯 보였다.
녜 웨이핑과 후지사와의 대결은 예상을 깨고 접전이었다. 전체적인 주도권은 후지사와가 쥐고 리드해갔지만 끝내기에 강한 녜 웨이핑이 끈질기게 추격해 극적으로 1점을 남겼다.(우리식 룰로 계산하면 반집 승)
10월 22일의 제2국.
첫 판을 빼앗긴 린 하이펑은 배수진을 치고 강하게 승부를 걸어왔다.
흐르는 물처럼 유연한 그의 포석.
조훈현은 반상 곳곳에 보(洑)를 쌓고 댐을 지어 유수(流水)의 도도한 흐름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조훈현의 바둑은 본질적으로 상대의 리듬과 템포, 그리고 심중의 의도를 간파하고 그것들을 거역하거나 역류시키고 분쇄하는 스타일.
그러다보니 그 바둑에서는 우형의 표본인 빈삼각이 세 번씩이나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 세 번의 빈삼각이 전부 국면을 유리하게 전환시킨 묘수였다.
결과는 조훈현의 5점 승.
계가를 마치자 린 하이펑이 패배를 인정하고 조훈현에게 축하의 목례를 건넸다. 조훈현은 머쓱한 미소로 화답했다.
소년시절 청봉회 발회식 기념으로 선(先)에 덤 4집을 받고 가르침을 받았던 대선배 린 하이펑. 인격과 기력 양면에서 진정한 명인으로 대접받는 거인 린 하이펑과 3번기에서 2연승을 거두었다는 것은 조훈현이 우승후보로 손색없다는 추천장을 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후지사와는 2국에서도 녜 웨이핑에게 또 1점을 졌다.
2연패로 물러났지만 후지사와의 분전은 경이로웠다. 패장이긴 했으나 실로 괴물 슈코의 진면목을 확실하게 보여준 대회전이었다.
조훈현과 녜 웨이핑.
이제 토너먼트 먹이사슬 최상위에 두 사람만 남았다. 30대 후반의 승부사들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노장들을 밀어내고 역사의 전면에 우뚝 섰다.
응씨배 서울 4강전은 세계바둑 신구(新舊)세력의 균형이 한 쪽으로 확실하게 기운 권력재편의 분수령이었다.
- 조훈현 홈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