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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명일전/부명일전(不名一錢/不名一钱) ◑ bù míng yī qián

▶ 不 아니 부/불 名 이름 명 一 한 일 钱 돈 전

▶ 무일푼이다 名:占有。一个钱也没有。形容极其贫穷。without a rap <not a cent to one's name> "名"은 "소유하다"는 뜻이다. "일전한푼없다"는 뜻으로 사용되는 성구
 
▶ 사천(四川) 남안(南安)사람인 등통(邓通)은 한평생 사람의 도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명성이 매우 나빴다. 태사공(太史公)은 그를 "사기-녕행전(史记佞幸传)"에 기록했으며, 이때부터 그는 영원히 남들의 손가락질이나 받는 사람으로 되어버렸다. 

한번은 한문제(汉文帝)가 이상한 꿈을 꿨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올라갈 수가 없었다. 그때 머리에 황색 두건을 두른 한 남자가 한문제의 등을 가볍게 밀어주어서야 한문제는 하늘을 오를수 있었다. 돌아보니 그사람의 옷은 앞뒤가 바뀌어져 있었고 옷에는 허리띠까지 매어져 있었다. 꿈에서 깨어난 한문제는 하늘에 오를수 있도록 도와준 그 사람의 옷차림새를 잘 기억해두고 늘 관찰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등통을 보게 된 문제는 그의 옷차림이 꿈속에서 본 사람과 꼭같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고 심지어는 생김새까지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내심 기뻐했다. 당장에서 등통을 궁에 불러들여 10만원에 달하는 상금을 줬다. 

사공이었던 등통은 노를 젓는 이외에는 별다른 재간이 없었던지라 뜻밖의 횡재에 그때부터 조심스럽게 황제의 환심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한문제 재위시기, 관리들은 5일에 하루씩 휴가를 받았다. 그때 대부(大夫)직으로 승급했던 등통은 늘 자신에게 주어진 휴가를 포기하고 궁에 남아 황제를 모시며 한문제의 환심을 샀다. 

그후, 한문제는 등에 자란 부스럼때문에 고통을 받게 되었는데 등통은 한문제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입으로 고름을 짜내는 성의까지 서슴없이 보였다. 

매번 고름을 짜내고나면 문제의 아픔은 많이 줄어들었다. 

한번은 문제가 등통에게 "세상에서 누가 짐을 가장 사랑한다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그러자 등통은 "그거야 당연히 소인이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태자 류계(刘启)가 문제의 병을 살피러 궁에 들어왔는데 마침 등통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때 한문제는 아픔을 느끼며 태자에게 고름을 빨아달라고 말했다. 태자는 감히 거절하지는 못하고 억지로 고름을 빨아내기는 했으나 얼굴에 싫은 기색이 그대로 비쳤기에 황제는 속으로 매우 언짢았다. 

등통이 늘 황제를 위해 입으로 고름을 빨아낸다는 말을 들은 류계는 등통을 사무치게 증오하며 불만을 품었다. 

황제의 불만을 사게 된 것을 모두 등통의 탓으로 돌렸다. 

한번은 한문제가 관상을 보는 사람을 불러 등통의 관상을 보게 했다. 그사람은 황제에게 등통은 나중에 굶어죽게 될 것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황제는 헛소리를 친다며 노기등등하여 "짐은 누가 과연 등통을 가난에 시달리게 하는지 두고볼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동산(铜山)하나를 등통에게 내어주며 돈을 벌수 있는 특권을 주었다. 등통은 재빨리 많은 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어느 시기에 있어서나 별다른 재간이 없는 사람, 또는 특별한 공을 세운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많은 부를 창조하게 된다면 주위의 질투를 사기 마련이며, 언젠가는 그것을 잃게 되는 법인데 등통이 바로 대표적인 실례였다. 

문제가 죽은뒤 류계가 문제의 뒤를 계승하여 경제(景帝)가 되었다. 등통은 단번에 면직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정의 대신들은 등통이 공금을 탐오했다고 경제에게 보고를 올렸고, 경제는 등통이 불법으로 벌어들인 모든 재산을 몰수했다. 

모든 재산을 몰수당하고도 등통은 조정에 거액의 빚을 졌기 때문에 금으로 된 장식품들마저 다 바쳐야만 했다. 등통은 잠간새에 빈털털이가 되어 친척집에서 끼니를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부유하던 사람이 갑자기 부를 잃게 되면 심리적으로도 평형을 잃게 되는 법이다. 결국 등통은 춥고 배고픈 고통에 죽어버렸다고 한다. 

"不名一钱"는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 

汉文帝当政的时候,有个名叫邓通的善于划船,被选到宫里当御船的水手。一天夜里,文帝做了一个梦,梦中他想升天,却怎么也上不去。就在这时候,有个头戴黄帽的人在背后推他,终于使他上了天。他回过头来看推他的人,发现那人的衣带在背后打了个结。
  
第二天,文帝来到建在宫西苍池中的渐台,见到有个御船水手头戴黄帽,衣带在背后打了个结,正是他梦中遇见的人。召来一询问,那人名叫邓通。文帝想,他既然能把自己推上天,必定是个奇才,便非常宠爱他。邓通也老实谨慎,不随便和外人交往。文帝多次赏赐他的钱财,总数上亿之多,还授予他上大夫的官职。其实,邓通并没有什么才能。他自己处事谨慎,也不能推荐贤士,只是谄媚文帝而已。有一次,文帝命一个善于算命的人去给邓通相面,那人相面反对文帝说:“邓通这个人将来要贫饿而死。”
  
汉文帝忧虑地说:“能让邓通富起来的只有我,我怎么会叫他受穷呢?”
  
于是,文帝下令把蜀郡严道的一座铜山赐给邓通,允许他自已铸钱。从此邓通发了大财,他铸造的铜钱布满天下,人人都知道有“邓氏钱”。有一天,文帝背上生了个疮,脓血流个不停。邓通觉得孝顺皇帝的机会到了,便天天进宫去,用嘴巴替文帝吮吸脓血。不过,文帝心中还是不高兴。一天他问邓通:“天下谁最爱我?”
  
邓通恭顺地回答:“应该说没有谁比太子更爱陛下的了。”
  
一次太子刘启来看望文帝病情,文帝要他吮脓血。太子见疮口脓血模糊,腥臭难闻,禁不住一阵恶心,但又不敢违抗,只得硬着头皮吮吸,可是脸色很难看。后来他听说,邓通常为文帝吮吸脓血,感到惭愧,也因此而忌恨邓通。
  
文帝死后,刘启即位,史称汉景帝。景帝免去邓通的官职,让他回家闲居。不久,有人告发邓通偷盗境外的铸钱。景帝派人调查,结果确有此事,便把邓通家的钱财全部没收,邓通顿时变成了穷光蛋,还欠下好几亿钱的债。还是景帝的姐姐长公主记住文帝不让他饿死的遗言,赐给他一些钱财。但是,官吏马上把这些钱财用来抵债,连一根簪子都不让他留下。长公主知道后,就让手下人借给他些衣食和钱。这样,邓通不能占有一个钱,只能寄食在别人家里直到死去。

[출전] 사기(史记)에서 西汉 司马迁《史记 佞幸列传》:“长公主赐邓通,吏辄随没入之,一簪不得著身。于是长公主乃令假衣食。竟不得名一钱,寄死人家。”

[동의어] 낭공여세(囊空如洗), 가도사벽(家徒四壁)

[반의어] 요전만관(腰缠万贯 아주 부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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