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양지귀(洛陽紙貴/洛阳纸贵) ◑ luò yáng zhǐ guì

 

▶ 洛 물 이름 락. 陽 볕 양. 紙 종이 지. 貴 귀할 귀. 

 

▶ '낙양의 지가를 올리다'하는 뜻. 곧 저서가 호평을 받아 베스트 셀러가 됨을 이르는 말. 因为抢着抄写左思的《三都赋》;以致洛阳的纸价高起来了。形容写文章、著作广泛流传;风行一时。 overwhelming popularity of a new work causing shortage of printing paper.


▶ 진(晉:265∼316)나라 시대, 제(齊)나라의 도읍 임치(臨淄) 출신의 시인에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추남에다 말까지 더듬었지만 일단 붓을 잡으면 장려 한 시를 썼다.

그는 임치에서 집필 1년 만에 "제도부(齊都賦)"를 탈고하고 도읍 낙양[洛陽: 하남성(河南省) 내]으로 이사한 뒤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도읍 성도(成都), 오(吳)나라의 도읍 건업(建業:南京), 위(魏)나라의 도읍 '업'의 풍물을 읊은 "삼도부(三 都賦)"를 10년 만에 완성했다. 그러나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장화(張華) 라는 유명한 시인이 "삼도부"를 읽어 보고 격찬했다.

"이것은 반(班)장(張)의 유(流)이다."

후한(後漢) 때 "양도부(兩都賦)"를 지은 반고[班固:"한서(漢書) "저술", "이경부(二京賦)"를 쓴 장형(張衡)과 같은 대시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자 "삼도부" 는 당장 낙양의 화제작이 되었고, 고관대작은 물론 귀족 환관 문인 부호들이 그것을 다투어 베껴 썼다. 그 바람에 '낙양의 종이값이 올랐다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고 한다.

▶ [출전] 晉書 文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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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洛陽)은 중국 하남성(河南省)에 있는 도시이다. 중화문명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은 황하로 흘러드는 낙수(洛水) 유역의 북쪽에 위치해 낙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기원전 770년 주(周)나라가 이민족의 압력을 피해 낙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 후한(後漢), 서진(西晉) 후위(魏) 수(隋) 등 13개 왕조가 낙양을 도읍으로 삼았다. 

 

서진시기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있었다. 얼굴이 못생긴데다 언변도 없어 남과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서 쓸쓸하게 지냈다. 그러나 부친의 격려로 학문에 정진하였고 "제도부(齊都賦)"라는 서사시를 1년 만에 완성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제도부(齊都賦)"는 그의 고향인 제나라 도읍 임치(臨淄)의 풍물을 노래한 시이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좌사는 "삼도부(三都賦)"를 짓기로 했다. "삼도"란 삼국시기의 3개의 도읍인 위나라의 업(鄴), 오나라의 건업(建業), 촉나라의 익주(益州)를 일컫는다. 집안이 가난하며 남들의 놀림을 받아왔던 그가 세 도읍의 활기찬 모습을 노래로 지어 세상의 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해주고자 생각했던 것이다. 


때마침 누이동생이 후궁으로 봉해져 입궐하게 되었다. 가족들도 따라 도읍 낙양으로 거처를 옮겼다. 좌사는 낙양에서 살면서 "삼도부" 구상을 짰다. 방에는 물론 뜰에까지 종이와 붓을 두고 훌륭한 글귀가 떠오르기만 하면 바로 적곤 하였다. 또 10년 동안 곳곳을 돌면서 자료들을 수집했고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자진해서 왕궁의 서책을 관리하는 비서랑(秘書郞) 직책을 얻었다. 


글을 잘 짓기로 이름난 오나라 사람 육기(陸機)가 마침 낙양에 왔다가 번화한 모습을 보았다. 그 역시 낙양을 노래한 시문 한편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좌사가 삼부도를 쓴다는 것을 전해 듣고 소리내 웃으며 말했다. "비천하고 어리석은 좌사가 분수를 모르고 삼부도를 쓴다니 종이를 허비하는 일이도다. 술독을 봉하는 종이로 쓰면 어떠할까?" 


그러나 후에는 좌사의 삼도부를 읽고 감탄을 금치 못하며 비웃었던 자신을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당시 조정에는 장화(張華)라는 유명한 문인이 있었는데 좌사의 "삼도부(三都賦)"를 반고의 "양도부(兩都賦)"와 쌍벽을 이루는 걸작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반고(32~92)의 "양도부(兩都賦)"는 동도 주인(東都主人)과 서도객(西都客) 간의 문답 형식으로 양도(兩都)의 장관을 묘사한 시이다. 

 

"삼도부"는 좌사가 10년이라는 세월을 들여 집필한 일생일대의 대작이다. 당시의 권문(權門) 귀족이나 선비들이 다투어 이를 베끼느라고 한때 낙양(洛陽)의 종이 값이 오를 정도였다고 한다.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의 낙양지귀는 문장이나 저서가 호평을 받아 잘 팔림을 이르는 말이다. 쉽게 말하면 "저서가 많이 팔려 베스트셀러가 되다"의 의미이다. 또한 저자를 칭찬할 때 종이 값을 올리게 한다는 뜻으로 "낙양지귀" 사자성어를 쓰기도 한다. 


[원말]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출전] 진서(晉書) 文傳  

[원말] 낙양지가귀(洛陽紙價貴). 
 
[출전] 진서(晉書) 文傳  

▶ 晋代文学家左思,小时候是个非常顽皮、不爱读书的孩子。父亲经常为这事发脾气,可是小左思仍然淘气得很,不肯好好学习。有一天,左思的父亲与朋友们聊天,朋友们羡慕他有个聪明可爱的儿子。左思的父亲叹口气说:“快别提他了,小儿左思的学习,还不如我小时候,看来没有多大的出息了。”说着,脸上流露出失望的神色。这一切都被小左思看到听到了,他非常难过,觉得自己不好好念书确实很没出息。于是,暗暗下定决心,一定要刻苦学习。日复一日,年复一年,左思渐渐长大了,由于他坚持不懈地发奋读书,终于成为一位学识渊博的人,文章也写得非常好。他用一年的时间写成了《齐都赋》,显示出他在文学方面的才华,为他成为杰出的文学家奠定了基础。这以后他又计划以三国时魏、蜀、吴首都的风土、人情、物产为内容,撰写《三都赋》。为了在内容、结构、语言诸方面都达到一定水平,他潜心研究,精心撰写,废寝忘食,用了整整十年,文学巨著《三都赋》终于写成了。《三都赋》受到谅也评,人们把它和汉代文学杰作《两都赋》相比。由于当时还没有发明印刷术,喜爱《三都赋》的人只能争相抄阅,因为抄写的人太多,京城洛阳的纸张供不应求,一时间全城纸价大幅度上升。故事出自《晋书 文苑 左思传》。成语“洛阳纸贵”,称颂杰出的作品风行一进。

[출전] 晋书 左思传: “于是豪贵之家竞相传写,洛阳为之纸贵。”

[예문] 人说“洛阳纸贵”,谁知今日闹到“长安扇贵”。此时画的手也酸了,眼也花了。 (清 李汝珍 《镜花缘》第七十七回)
 
[동의어] 유구개비(有口皆碑), 교구칭예(交口称誉), 유목공상(有目共赏), 낙양지가고(洛陽紙價高), 낙양지가(洛陽紙價). 

[반의어] 일문부명(一文不名), 무인문진(无人问津)

-----> 洛阳纸贵 (luò yáng zhi gu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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