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면초가(四靣楚謌/四面楚歌) ◑  sì miàn chǔ gē


▶ 四 넉 사 面 얼굴 면 楚 가시나무 초 歌 노래 가


▶ 사면에서 들려 오는 초나라 노래란 뜻.


① 사방 빈틈없이 적에게 포위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태.
② 주위에 반대자 또는 적이 많아 고립되어 있는 처지.
③ 사방으로부터 비난받음의 비유.

 

四面都是楚人的歌声。后用来比喻四面受敌;处于孤立无援的处境。 be utterly isolated


▶ 진(秦)나라를 무너뜨린 초패왕(楚?王) 항우(項羽)와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홍구[鴻溝:하남성(河南省)의 가로하(賈魯河)]를 경계로 천하를 양분, 강화하고 5년간에 걸친 패권(覇權) 다툼을 멈췄다(B.C. 203).

힘과 기(氣)에만 의존하다가 범증(范增) 같은 유일한 모신(謀臣)까지 잃고 밀리기 시작한 항우의 휴전 제의를 유방이 받아들인 것이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 : 서주(徐州)]을 향해 철군(撤軍) 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 : 섬서성(陝西省)]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陣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 : 안휘성(安徽省)]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陣營)은 군사수도 격감한 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四面楚歌]'가 들려오는 것 이 아닌가.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작전이 주효 (主效)했던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서 외치듯 말했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酒宴)을 베풀고는 사랑하는 우미인(虞美人)이 '사면초가(四面楚歌)'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자, 비분강개(悲憤慷慨) 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힘은 산을 뽑고 의기는 세상을 덮건만
때는 불리하고 추(?)도 나아가지 않누나.
추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면 좋은가.
우(虞)야 우야 그대를 어찌할 거나.

力拔山兮氣蓋世 (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추不逝 (시불리혜추불서)
추不逝兮可奈何 (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 (우혜우혜내약하)

우희도 이별의 슬픔에 목메어 화답했다. 역발산을 자처하는 천하장사 항우의 뺨에는 어느덧 몇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좌우에 배석한 장수들이 오열(嗚咽) 하는 가운데 우희는 마침내 항우의 보검을 뽑아 젖가슴에 꽂고 자결하고 말았다.

그날 밤, 불과 800여 기(騎)를 이끌고 중포위망을 탈출한 항우는 이튿날, 혼자 적군 속으로 뛰어들어 수백 명을 벤 뒤 강만 건너편 당초 군사를 일으켰던 땅, 강동(江東)으로 갈 수 있는 오강(烏江:안휘성 내)까지 달려갔다.

그러나 항우는 800여 강동 자제(子弟)들을 다 잃고 혼자 돌아가는 것이 부끄러워 스스로 목을 쳐 자결하고 말았다(B.C. 202). 그때 그의 나이는 31세였다.  
 
[준말] 초가(楚歌).

[출전] '史記' 項羽本紀

▶ '사면초가'란 사면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세인이 다 아는 공성계(攻城計)의 하나이다. 전거는 초·한이 서로 다투던 해하 싸움에서 나왔다.

'사기(史記) 항우 본기'에 의하면 항왕의 군대는 해하에 둔치고 있었는데, 병사는 적고 양식이 다한 데다 한군과 제후들의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군은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항왕은 크게 놀라 "한나라가 벌써 초나라를 다 점령했는가? 무슨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하였다.

한신은 '사면초가'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싸움을 싫어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계략을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심이 흩어져 뿔뿔이 도망치고 항왕이 아끼는 심복 정예 부대인 8천 자제도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돗하여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이나 항우를 따르던 장군들도 슬그머니 떠났고 항우의 숙부 항백도 가만히 달아나고 말았다.

항우는 사면초가 속에서 우희와 이별하고 오강(烏江)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초나라도 따라서 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신이 채용한 심리전이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연의'에는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형양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계책을 써서 관우(關羽) 군중의 장수와 병사의 가속들로 하여금 산 위에서 높이 외치게 하여 군심을 동요시킨 사실을 서술하였다.

"형주 사병들의 형제가 서로 부르고 부자가 서로 찾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군심이 변하여 모두 그 소리에 따라 달려갔다. 관우가 호통쳐도 불러 세우지 못하니 부하는 겨우 300여 명이 남았다."

위풍이 천하에 떨친 관우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배반하고 친인들이 떠나는 외롭고 구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다.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项羽和刘邦原来约定以鸿沟(在今河南荣县境贾鲁河)东西边作为界限,互不侵犯。后来刘邦听从张良和陈平的规劝,觉得应该趁项羽衰弱的时候消灭他,就又和韩信、彭越、刘贾会合兵力追击正在向东开往彭城(即今江苏徐州)的项羽部队。终于布置了几层兵力,把项羽紧紧围在垓下(在今安徽灵璧县东南)。这时,项羽手下的兵士已经很少,粮食又没有了。夜里听见四面围住他的军队都唱起楚地的民歌,不禁非常吃惊地说:“刘邦已经得到了禁地了吗?为什么他的部队里面楚人这么多呢?”说看,心里已丧失了斗志,便从床上爬起来,在营帐里面喝酒;并和他最宠爱的妃子虞姬一同唱歌。唱完,直掉眼泪,在旁的人也非常难过,都觉得抬不起头来。一会,项羽骑上马,带了仅剩的八百名骑兵,从南突围逃走。边逃边打,到乌江畔自刎而死。因为这个故事里面有项羽听见四周唱起楚歌,感觉吃惊,接看又失败自杀的情节,所以以后的人就用“四面楚歌”这句话,形容人们遭受各方面攻击或逼迫的人事环境,而致陷于孤立窘迫的境地。凡是陷于此种境地者,其命运往往是很悲惨的,例如某人因经常与坏人为伍,不事生产,游手好闲;但后来却破那些坏人逼迫的无以为生,求助于别人时,别人也应他平日行为太坏,绝不同情更不理睬,这人所处的境地便是“四面楚歌”。又如学校里讨论学术问题,其学生不学无术(成语,意即没有学术)、信口雌黄、颠倒是非,同学们群起而攻之,这学生便完全处于孤立地位,这也可叫做“四面楚歌”。在我们的人生历程上,在我们的日常生活中,好好的做人,脚踏实地的做事,若是行差踏错,就未免要遭受“四面楚歌”的厄运了。


[출전] 《史记 项羽本纪》:“项王军壁垓下,兵少食尽,汉军及诸侯兵围之数重。夜闻汉军四面皆楚歌,项王乃大惊,曰:‘汉皆已得楚乎?是何楚人之多也。’”〖示例〗在这~里,凭你怎样伶牙俐齿,也只得服从了。 ★朱自清《航船中的文明》

 


[동의어] 사면초가성(四面楚歌聲), 복배수적(腹背受敌), 산궁수진(山穷水尽), 초가사면(楚歌四面) 


[반의어] 안연무양(安然无恙 평안무사 하다), 기개득승(旗开得胜 시작하자마자 좋은 성적을 얻다)


[참조] 건곤일척(乾坤一擲), 권토중래(捲土重來), 걸해골(乞骸骨). 


-----> 四面楚歌 (sì miàn chǔ g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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