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비무환(有備無患/有备无患) ◑ yǒu bèi wú huàn

▶ 有(있을 유) 備(갖출 비) 無(없을 무) 患(근심 환)

▶ 준비가 있으면 근심할 것이 없음. 사전에 미리 준비가 갖추어져 있으면 전혀 걱정이 없다는 뜻. 备:防备;患:患难;灾祸。事先有防备就可能避免灾祸。 be prepared against want

有备无患和“有恃无恐”;都含有“有所倚仗而没顾虑”的意思。但有备无患偏重在“有准备”;是为了避免祸患;“有恃无恐”偏重在“有依靠”便无所畏惧或毫不顾忌。表示“有特殊势力撑腰而放开胆量行事;近乎嚣张”的意思。

▶ '열명(說命)'은 은(殷)나라 고종(高宗)이 부열(傅說)이란 어진 재상을 얻게 되는 경위와 부열의 어진 정사에 대한 의견과 그 의견을 실천하게 하는 내용을 기록한 글인데,

이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은 부열이 고종 임금에게 한 말 가운데 들어 있다. 그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생각이 옳으면 이를 행동으로 옮기되 그 옮기는 것을 시기에 맞게 하십시오. 그 능(能)한 것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功)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다 그 갖 춘 것이 있는 법이니 갖춘 것이 있어야만 근심이 없게 될 것입니다."

處善人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有備無患.

또, 春秋左氏傳 에는 다음과 같이 전한다.

진나라 도승이 정나라에서 보낸 값진 보물과 가희(佳姬)들을 화친(和親)의 선물로 보내 오자 이것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그러자 위강은 완강히 거부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는 항상 위태로움을 생각하여야 하고 위태로움을 생각하게 되면 항상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과 재난이 없을 것 입니다."

居安思危 思危 則有備 有備則無患.

[출전] '書經' 說命  

▶ 춘추시대 어느 해 鄭(정)나라가 宋(송)나라를 침략하자 송나라는 위급함을 晋(진)나라에 알리고 도움을 청했다. 진의 국왕인 悼公(도공)은 즉각 魯(노) 齊(제) 曹(조) 등 10여개국에 이 사실을 통고하고 연합군을 편성했다. 진의 위강이 통솔한 연합군은 정의 도성을 에워싸고 송에서 철수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정나라는 재빨리 송 진 제 등 열두나라와 불가침조약을 맺었다. 북쪽 나라들의 이런 결속에 위협을 느낀 남쪽의 楚(초)나라가 정나라를 침공했다. 열세를 깨달은 정나라는 초나라와도 盟約(맹약)을 체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연합국측이 불만을 품고 정나라를 쳤다. 또다시 정나라가 화친을 요구하자 진나라는 마지 못해 이에 응함으로써 싸움은 끝났다.

도공은 감사의 표시로 정나라에서 보내온 보물과 미녀들을 위강에게 보냈다. 싸움에 지쳐있을 그를 달래주려고 마음을 썼던 것이다. 하지만 대쪽같은 위강이 그런 선물을 받을 턱이 없었다. 선물을 되돌려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다.

"평안히 지낼 때에도 위태로운 때를 생각해야 하고 위태로운 때를 생각한다면 언제나 준비가 있어야 하며 충분한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유비무환)"

이 말을 전해 들은 도공은 새삼 위강의 남다른 식견에 머리를 끄덕이며 미녀들을 모두 정나라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 기원전 562년 여러 제후국들이 함께 정나라를 치기로 했다. 


이해 4월 19일 제나라의 태자 광과 송나라의 향술이 먼저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 도읍의 동문밖에 진을 쳤다. 


이날 저녁에는 진나라의 구영이 인솔하는 군대가 정나라 도읍의 서쪽 교외에 도착했고 동쪽에 있는 허나라의 옛 영토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소국인 허나라는 정나라, 초나라의 침공으로 여러번 도읍을 옮겼고 원래의 국토는 정나라가 강점한 상태였다. 


한편 위나라의 임림부는 정나라의 북부 국경을 공격해왔다. 정나라는 바람앞의 촛불신세가 되었다. 


6월이 되니 제후국 연합군은 향지에 모였다가 다시 서쪽으로부터 정나라의 도읍을 압박했고 군사들은 쇄지라는 곳에 진을 쳤다. 


연합군은 정나라를 포위했고 도읍지의 남문밖에서 자기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자랑했다. 그외에도 다른 한갈래의 군대가 정나라 서부 국경을 넘어 도읍지로 향하고 있었다. 


이에 정나라 왕공대신들은 대경실색했고 결국 화의를 청하게 되었다. 


7월에 이르러 여러 나라들은 동맹을 맺게 되었는데 진나라의 범선자가 이 회맹에 참가하게 되었다. 


9월이 되니 드디어 제후국들이 다시 정나라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정나라는 사신을 초나라에 파견해 진나라에 항복할 뜻을 전했다. 이에 앞서 정나라는 사실상 초나라에 많이 의존하던 형편이었다. 


결국 정나라는 왕자를 파견해 화의를 청했고 진나라의 조무와 정나라의 군주가 동맹을 맺게 되었다. 이에 진나라는 정나라에서 포로한 군사들을 사면해 주었고 순찰군사들을 철수했으며 정나라 경내에서의 약탈행위를 중지하였다. 


진나라 왕은 또 협공에 참가한 여러 나라들에 진나라에 대한 적대행위를 중단할것을 요구하는 통문을 보냈다. 


정나라는 복종과 감격의 표시로 진나라 왕에게 악사 세명과 가무에 능한 미녀 16명 그리고 연주에 쓰이는 귀한 악기들을 보내왔다. 그외에도 마차 100대, 병장기, 갑주 등을 보내왔다. 


진나라왕은 기쁜 마음으로 이런 선물을 받았다. 


진나라왕은 이 몇년간 진나라에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고 승전고를 거듭 올린 원인은 대신인 위조가 좋은 계략을 내놓았기 때문이라 생각하고 위조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말을 따라 융적의 여러 부락과 화목하게 지내게 되었고 그래서 중원의 여러 나라들중 진나라는 8년간에 9번이나 회맹을 주도했네. 이는 잘 어우러지는 음악과 같아 전혀 삐긋거리는 부분이 없는것과 같소. 지금 정나라가 짐에게 악대를 보내왔으니 우리 함께 그 미묘한 연주를 들어보세" 


진왕은 악대의 절반을 갈라 위조에게 주었다. 


이에 위조는 극구 사양하며 말했다. 


"융적과 평화롭게 지냄은 나라의 복이옵니다. 8년동안에 9번 제후국의 회맹을 주도하고 제후들이 변심하지 않음은 페하의 위엄이 있었기 때문이고 또 많은 대신들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이지 저에게 무슨 공이 있다고 이러십니까?" 


이어 위조가 말했다. 


"옛 성현들은 안전할 때 항상 위험을 대비하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유비무환이라고 먼저 후환을 생각하고 방비를 해야 합니다. 신은 페하께 이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진나라왕이 크게 깨달음을 얻어 말했다. 


"당신의 가르침을 어찌 내가 소홀히 대하겠소. 당신이 없었더라면 융적과의 관계를 원활히 처리할수가 없었을 것이고 황하를 넘어 우리의 영토를 늘릴수가 없었을 것이요. 공이 있는 자에게 상을 내리는 것은 국가의 법전에 규정된 일이거늘 어찌 사양한단 말이요. 내 성의를 받아주시오." 


이때로부터 위조는 금과 돌 등으로 된 귀한 악기의 연주를 듣는 특혜를 누렸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좌전.양공 11년"에 기록되었다. 유비무환의 뜻은 사전에 준비하면 후환을 막을수 있다는 것이다. 


▶ 춘추 시대, 각 제후국들은 서로 공격하여 전란(戰亂)이 그치지 않았다. 기원전 641년, 진(晋)나라 도공(悼公)은 11개국의 동맹국의 군대와 연합하여 정(鄭)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당시 약소국으로서 12개 나라의 연합군을 막아낼 수 없음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므로, 맹주(盟主)인 진나라에 화친을 구하여 허락을 받아 냈다. 

정나라는 진나라에 대하여 감사(感謝)를 표시하기 위하여 유명한 악사(樂師) 3명, 폭이 넓은 수레와 싸움에 쓰는 수레가 각각 15대, 그리고 그 수레에 붙은 무장병, 거기다가 전차 100량, 가녀(歌女) 16명과 다수의 악기 등의 예물을 진나라에 보냈다. 진나라 도공은 예물을 보고 대단히 기분이 좋아서, 예물의 반을 공로가 가장 큰 대신(大臣) 위강(魏絳)에게 나눠주면서 말을 했다. 

"그대는 나를 가르치어, 모든 융(戎)과 적(狄)들을 평화스럽게 했고, 그리고 중원(中原)의 제후들을 바로 잡았오. 그리하여, 8년 간에 아홉 차례나 제후들을 회합시켰으며, 화목하기가 마치 음악의 소리처럼 잘 어울리는 것과 같아, 화합(和合)되어지지 않는 적이 없었오. 이에, 나는 그대와 이 악기 악공들로 즐기려 하오." 

그러나 위강은 사양하며 말했다. 

"융과 적들과 화평하게 된 것은 우리 국가의 복이고, 8년 간에 제후들을 아홉 차례나 화합시키어, 제후들이 잘못을 저지름이 없었던 것은 군주의 덕택이며, 다른 몇몇 신하들의 공로였습니다. 신에게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신은 군주께서 현재의 그 즐거움 속에 편안하시고, 그 유종(有終)의 미를 거두시기를 원합니다. .... 서경(書經)에 이르길 '편안히 있을 때 위태로움을 생각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잘 생각하면 대비가 있게 되고, 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居安思危, 思則有備, 有備無患). 신은 이것을 규범으로 삼으시도록 아룁니다." 

[출전] 『春秋左氏傳』 襄公 11年條 


▶ 出处《传 襄公十一年》春秋时,晋悼公当了国君以后,想重振晋国的威名,像他的先祖晋文公一样,称霸诸侯。这时,郑国是一个小国,一会儿和晋结盟,一会儿又归顺楚国。晋悼公很生气,公元562年,他集合了宋、鲁、卫、刘等11国的部队出兵伐郑。邻简公兵败投降,给晋国送去大批礼物,计有兵车一百辆,乐师数名,一批名贵乐器和十六个能歌善舞的女子。晋悼公很高兴,把这些礼物的一半赏赐给魏绛,说:“魏绛,是你劝我跟戎、狄和好,又安定了中原各国;八年来,我们九次召集各国诸侯会盟。现在我们和各国的关系,就象一曲动听的乐曲一样和谐。郑国送来这么多礼物,让我和你同享吧!”魏绛说:“能和狄、戎和好相处,这是我们国家的福气,大王做了中原诸侯的盟主,这是凭您的才能,我出的力是微不足道的。不过,我希望大王在安享快乐的时候,能够多考虑一些国家的未来。《尚书》里说:“在安定的时候,要想到未来可能会发生的危险;您想到了,就会有所准备,有所准备,就不会发生祸患。’我愿意用这些话来提醒大王!”

[출전] 先秦 左丘明《左传 襄公十一年》:“《书》曰:‘居安思危。’思则有备,有备无患。”

[예문] 동주열국지 季斯预戒汶上百姓,修堤盖屋。不三日,果然天降大雨,汶水泛滥,鲁民有备无患。(明 冯梦龙《东周列国志》第七十八回)

[동의어] 미우주무(未雨绸缪), 방환미연(防患未然), 유시무공(有恃无恐)

[반의어] 조수부급(措手不及), 임갈굴정(临渴掘井), 림진마창(临阵磨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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