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의대수(一衣帶水/一衣带水) ◑ yī yī dài shuǐ


▶ 一 한 일. 衣 옷 의. 帶 띠 대. 水 물 수.


▶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이나 바닷물이라는 뜻. 곧 ① 간격이 매우 좁음. ② 강이나 해협을 격한 대안(對岸)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 허리띠 길이만큼 좁은 강. 가까이 강을 끼고 서로 왕래가 편리하다. 水道像一条衣带那样狭窄。比喻只隔一水;极其邻近。 a river like a belt in width.


▶ 서진(西晉:265∼317) 말엽, 천하는 혼란에 빠져 이른바 남북조(南北朝) 시대가 되었다.

북방에서는 오호 십육국(五胡十六國)이라 일컫는 흉노(匈奴), 갈(厘), 선비 (鮮卑), 강(羌), 저 등 5개 이민족이 세운 열 세 나라와 세 한족국(漢族國)이 흥망을 되풀이했고, 남방 에서는 송(宋), 제(齊), 양(梁), 진(陳:557∼589) 등 네 나라가 교체되었다.

북방의 북조 최후의 왕조인 북주(北周:577∼580)를 물려받아 수(隋:581∼618) 나라를 세운 문제(文帝:581∼604)는 마침내 남조 최후의 왕조인 진나라를 치기 로 하고 이렇게 선언했다.

"진왕(陳王)은 무도하게 백성들을 도탄에 빠뜨렸도다. 이제 짐(朕)은 백성의 어버이로서 어찌 '한 줄기 띠와 같이 좁은 강물[一衣帶水]' 따위를 겁내어 그들을 죽게 내버려 둘 수 있으랴."

양자강은 예로부터 천연의 요해(要害)로서 삼국 시대의 오(吳)나라 이 후 남안(南岸)의 건강(建康:南京)에 역대 남조의 도읍이 있었다.

문제의 명에 따라 52만의 수나라 대군은 단숨에 양자강을 건너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통일했다.

▶ 一 한 일. 衣 옷 의. 帶 띠 대. 水 물 수.

▶ [유사어] 일우명지(一牛鳴地), 일우후지(一牛吼地), 지호지간(指呼之 間).

▶ [출전] 南史 陳後主紀  


▶ 일의대수(一衣带水)



두 나라 두 지역사이에 있는 강물이나 바다가 옷의 띠같이 좁아보인다는 말로, 두 나라사이에 지리적 장애를 받지 않음을 비겨이른다. 후에는 강이나 바다가 사람들이 교류하고 왕래하는 것을 제한하지 못함을 비겨일렀다. 


"띠같이 좁은 강(바다)을 사이에 두다", "강물이나 해협을 사이에 두다", "일의대수"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남북조(南北朝)말년, 양조는 장강을 경계로 하여 남조는 진(陈),북조는 주(周)로 역사에서 습관적으로 북주(北周)라 불렀다. 북주말년, 다시는 북주를 위해 목숨을 내걸고 싶지 않았던 대장군 양견(杨坚)이 수왕조(隋王朝)를 세웠는데 양견이 바로 수문제(隋文帝)이다. 


수문제는 왕위에 오르고나서 곧바로 중국을 통일할 준비를 했다. 당시 진조의 황제는 진숙실(陈叔室)이었는데 역사에서는 진후주(陈后主)라 불렀다. 


진후주는 음악가와 시인의 재능을 동시에 갖춘 다재다능한 사람인 반면에 나라를 다스리고 안정시키는 능력이 부족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나라를 멸망의 길로 이끌었다. 진후주는 한 나라의 왕으로서, 국사를 돌보는 대신 매일 궁에서 노래하고 춤추며 시짓기로 허송세월을 보냈다. 대신들도 부귀영화를 계속 누리기 위해 진후주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고 온갖 달콤한 말로 아부를 했다. 궁궐안에서는 하루종일 노래소리가 울러퍼지고, 궁궐밖에서는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만 갔다. 남조의 군사장비가 허술하고 관리들이 부패한데다 한 나라의 왕까지 백성들을 전혀 관심하지 않는 것을 보고 수문제는 바로 이때라는 생각이 들어 천하를 통일할 결심을 내렸다. 


그때 한 대신(大臣)이 나서서 수문제를 말렸다. 


"진후주가 비록 어리석고 조정을 돌보지 않는 왕이긴 하지만 지은 죄는 없다고 봅니다. 때문에 우리한테는 군대를 동원시킬 명분이 없지 않겠습니까?" 


이에 수문제는 "진후주는 주색에 눈이 멀어 백성들을 전혀 관계치 않는다. 천하의 군주로서 어찌 강을 사이에 두고 강남의 백성들을 구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기원 589년, 수문제는 대장 한금호(韩擒虎), 고영(高颍)을 파견해 군대를 이끌고 진조를 멸망시켰으며, 이로써 전국을 통일했다. 


"一衣带水"는 이 이야기에서 유래된 성구이다. 

 

[출전] 

 

한헌제(汉献帝)가 황후의 형제인 동승(董承)에게 허리띠(衣带)를 하사한 이야기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 出处:《南史 陈后主纪》故事:隋文帝杨坚取代北周称帝,建立了隋朝。隋文帝有志于统一中国,在北方实行了一系列富国强兵的政策,国力大增。而当时长江南岸的陈朝后主陈叔宝却十分荒淫,不理朝政。他虽知道隋文帝有意征伐,却依恃长江天险,并不把这事放在心上。  一次,隋文帝向仆射高颖询问灭陈的计策,高颖回答说:“江南的庄稼比江北成熟得早,我们在他们的收获季节,扬言出兵,他们一定就会放弃农时,屯兵防守;他们作好了准备,我们便不再出兵。这样来几次,他们便不会相信。等他们不作准备,我们突然真的出兵渡江,便可打得他们措手不及。另外,江南的粮食不像我们北方屯积在地窖中,而屯积在茅、竹修建的仓库中,我们可暗地差人前去放火烧毁它,如果连烧几年,陈朝的财力就大大削弱了,灭掉它也就容易得多了。”  隋文帝采取了高颖的计策,经过七年的准备,在公元588年冬下令伐陈。出发前,他对高额说:“我是天下者百姓的父母,难道能够因为一条像衣服带子一佯狭窄的长江的阻隔,而不去拯救那里的老百姓吗?”隋文帝志在必得,派晋王杨广为元帅,率领五十万大军渡江南下,向陈朝的都城建康发动猛烈的进攻,并很快就攻下建康,俘获了陈后主,灭掉了陈朝。


[출전] 《南史 陈纪下 后主》:“隋文帝谓仆射高颖曰:‘我为百姓父母,岂可限一衣带水不拯之乎?’”


[예문] 香港地方,同中国大陆相离,仅仅隔一衣带水。 (鲁迅 《而已集 略谈香港》)


[동의어] 지척지간(咫尺之间), 일수지격(一水之隔), 근재지척(近在咫尺), 근재미첩(近在眉睫)


[반의어] 천각일방(天各一方), 천애해각(天涯海角), 만수천산(万水千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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