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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구지학(一丘之貉) ◑ yī qiū zhī hé

▶ 一 한 일 丘 언덕 구 之 갈 지 貉 너구리/오소리 학

▶ "같은 산 속에 살고 있는 담비/오소리"라는 뜻으로, "같은 곳에 함께 있는 무리"를 비유한 말로서, 지금은 일반적으로 나쁜 사람들의 무리를 뜻함. 같은 산속에 있는 담비라는 말로서 같은 짝패임을 비겨이른다. 그놈이 그놈이다, 꼭같은 놈들이다. 한짝이다는 뜻으로 쓰인다.  丘:土山。貉:一种像狐狸的野兽。一个土山里的貉。比喻彼此同类;没有什么差别。birds of a feather (be cut from/out of the same cloth; nothing to choose between them; jackals from the same lair)

一路货色和“一丘之貉”;都比喻同是坏人。但一路货色应用范围广;不仅用于人;还可指人的思想、言论、作品和物;用作口语;“一丘之貉”语义重;仅用于人;用作书面语。

▶ 양운(楊운)은 자(字)가 자유(子幼)로서, 한(漢)나라 소제(昭帝) 때 승상을 지냈던 양창(楊敞)의 둘째 아들이며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의 외손자이다. 그는 매우 총명한데다 역사를 즐겨 공부하였기 때문에, 한나라 선제(宣帝) 때에는 좌조(左曹), 중랑장(中郞將) 등의 관직을 지냈다.

그는 재물을 탐하지 않고 정의를 중시하여 청렴결백하긴 하였지만, 사람들에 대한 기대수준이 너무 높아서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용납하지 않았다. 특히 그들 가운데 양운과 가장 원한이 깊었던 태복(太僕) 대장락(戴長樂)은 양운이 황제를 비방했다는 상소문을 직접 황제에게 올렸다.

"양운은 흉노의 왕이 피살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무능한 왕은 충신들의 말을 듣지 않고 나라를 다스리는 책략을 쓸 줄도 모르니, 마땅히 죽어야 한다. 과거 진나라도 이러해서 충신을 죽이고 소인들만을 등용하여 결국 망했던 것이다. 당시 진나라가 충신과 재능 있는 대신들을 믿었더라면, 아마도 오늘도 진나라의 천하가 되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모두 한 산 속의 오소리로구나(古與今, 如一丘之학) .... "

결국, 대장락과 양운은 모두 관직을 박탈당하였다. 양운은 고향으로 돌아와서, 친구인 안정태수(安定太守) 손회종(孫會宗)에게 편지를 보내 몇 년간의 답답함을 호소했다. 이 사실이 한나라 선제에게 발각되어, 양운은 허리가 절단되는 사형을 당하였다.

▶ 고대사회에서 군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필연코 일반인들이 갖지 못한 미덕을 지니고 있다. 


양운(杨恽)은 소제(昭帝)때 승상으로 지낸 양창(杨敞)의 아들이며 사마천(司马迁)의 외손자이기도 했다.  


소제때 막강한 권력으로 천하를 통치했던 것은 곽(霍)씨가문 일가였고, 고관대신들은 서로 아첨하기에 바빴다. 그때 조랑(曹郎)직을 맡고 있던 양운은 더 높은 관직을 원하지 않을지언정 곽씨가문에 아첨하기를 거부했던 바른 사나이었다. 곽씨가문의 죄를 적발할 때 공로가 컸던 점을 인정받아 양운은 평통후(平通侯)로 책봉, 광록경(光禄卿)으로 직위가 올라갔다. 


양운은 매사에 신중하며 원칙적으로 일을 처리했고 종래로 뢰물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성격이 남달라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끼쳤다. 양운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에서 늘 자기자랑을 했으며, 사람들은 이로 인해 불쾌해하면서도 체면때문에 대놓고 말하지는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은 겉으로는 공경하는체 하면서도 실제로는 꺼리어 멀리했다. 양운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 뿐더러 늘 다른 사람을 자신과 비기면서 가혹하게 요구했다. 그에게 있어 가장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다른 사람의 사적인 비밀을 폭로하기 즐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운에게 개인적인 비밀을 폭로당했던 사람들은 뼈에 사무치게 그를 증오하게 됐다. 


양운과 태복사경인 대장락(戴长乐)은 원래부터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한번은 고소를 당한 대장락이 분명 양운의 짓일 것이라 의심하고 옥중에서 양운을 비방하는 글을 황제에게 올렸다. 


"양운은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고 고관들을 무시하며 사석에서 황제를 못난 군주라고 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고대의 군주는 대신들이 제기한 좋은 방법들로 나라를 다스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총애하는 소인들을 기용하여 결국 멸망에 이른 것처럼 이런 현상은 지금도 존재하고 있거늘, 고대의 황제나 지금의 황제나 한 언덕에 모여사는 너구리와 다를바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말들은 신하된 자로서 할 말이 아니옵니다" 


이것을 본 선제는 화가 나 양운을 사형에 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동안 양운의 공을 생각해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면직시켰다. 


[출전] 한서 권66 열전(列傳)제36 양창전(楊敞傳)


▶ 汉朝时有一个名人叫杨惮,他的父亲是汉昭帝时的丞相杨敞,母亲是人史学家司马迁的女儿。他自幼便受到良好的教养,未成年时就成了当朝的名人。汉宣帝时大将霍光谋反,杨惮最先向宣帝报告。事后被封平通侯,当时在朝庭中做郎官的人,贿赂之风极炽,有钱的人可用钱行贿,经常在外玩乐;无钱行贿的人,甚至一年中也没有一天休息。杨惮作中山郎后,便把这些弊病全部革除,满朝官员都称赞他的廉洁。但他因少年得志,又有功劳,便产生了骄傲自满,结果与太仆长荣(长荣是宣帝旧友,最得信任)发生意见。有一次,杨惮听见匈奴降汉的人说匈奴的领袖单于被人杀了,杨惮便说:“遇到一个这样不好的君王,他的大臣给他拟好治国的策略而不用,使自己自白送了命,就像我国秦朝时的君王一样,专门信任小人,杀害忠贞的大臣,结果国亡了。如果当年秦朝不如此,可能到现在国家还存在。从古到今的君王都是信任小人的,真像同一山丘出产的貉一样,毫无差别呀!”就这样,杨惮被免职了。自古君王勇于改过,不信馋言者能有几人,杨惮仅被勉职,已是不幸申之大幸了。唉!“前汉书”:“杨惮传”的原文是“古与今,如一丘之貂。”丘,土阜也,四边高,中央低的土堆;貉,音鹤,俗称树貉,状似狐小,毛黄褐色,深厚而温滑,可做皮袍。后来的人将这两句话引申成“一丘之貂”一句成语,来此喻同类没有差别,像在同一个山丘里生长的貂一样,形体都是相同的。这成语在应用时,都是用来形容反面的事物,即使是形容否定的事物;含有不屑一谈和讥诮的口吻。例如说有一群人专门造谣生事,无事生非,故意与人为难,他们中间没有一个是好人,就可说:这批东西都是“一丘之貉”,那有一个是好人呢!

▶ [출전] 东汉 班固《汉书 杨恽传》:“古与今,如一丘之貉。”

[동의어] 일로화색(一路货色), 경위부분(泾渭不分)

[반의어] 경위분명(泾渭分明), 흑백분명(黑白分明), 시비분명(是非分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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