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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이퇴(知難而退/知难而退) ◑ zhī nán ér tuì

▶ 知 알 지, 難 어려울 난, 而 말 이을 이, 退 물러날 퇴

▶ 형세가 불리한 것을 알면 마땅히 물러서야 함. 곤란한 것을 알고 물러서다. 자기의 역량을 알고 물러서다. 知道困难就退却下来。 shrink back from difficulties

知难而退与“畏葸不前”有别:知难而退侧重于形容退却 :“畏葸不前”侧重于形容害怕。

▶ 춘추좌전(春秋左傳) 선공(宣公) 12년조에는 "사정이 좋음을 보고 진격하고,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물러난다는 것은 용병의 바른 원칙이다(見可而進, 知難而退, 軍之善政也)"라는 대목이 있다.

춘추시대, 정(鄭)나라는 패권(覇權)을 다투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 사이에 위치하였는데, 정나라는 먼저 진나라에 의지하였다. 그러자 초나라는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였다.

정나라는 자국(自國)의 안전을 위하여 진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하지만 먼데 있는 물로는 불을 끌 수 없듯 진나라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으므로, 정나라는 초나라에 항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진나라의 군대를 통솔하던 환자(桓子)는 정나라를 구원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여겼으며, 당시 초나라의 국력이 막강하였기 때문에 진나라로서도 승산이 없었다. 이에 그는 철군하려 하였으나, 지휘에 따르지 않던 부하들은 초나라 군사와 교전을 하여 크게 패하고 말았다.

[출전] 춘추좌전(春秋左傳)


▶ 춘추시기 두 강대국이었던 진(晉)나라와 초(楚)나라는 서로 패권을 쟁탈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였다. 약소국이었던 정(鄭)나라는 두 강대국의 패권 다툼에서 상황에 따라 유리한 쪽에 의존하군 했다. 기원전 597년 정나라가 진나라에 의지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긴 초나라가 이를 구실로 군대를 이끌고 정나라로 공격했다. 초나라의 공격에 꼬박 열 이레 동안 도성 안에 갇힌 채 꼼짝할 수 없게 된 정나라 왕은 결국 굴복하고 초나라와 화약을 체결하였다. 


이에 진나라는 순임부(荀林父), 사회(士會), 선의(先毅), 조삭(趙朔) 등 장군이 인솔하는 대군을 파견하여 정나라를 구원하려 했다. 진나라 대군이 황하에 이르렀을 때 정나라가 이미 초나라와 화친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장군들은 이에 대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순임부는 철군을 주장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나라를 구하는 일은 이미 늦었으니 진군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느냐. 그만 물러가자." 


이에 사회 장군이 동조하며 말했다. 


"군사를 움직일 때는 적이 허점을 보일 때를 틈타 움직인다고 했다. 초나라는 덕행, 형벌 정치, 국사, 예의범절 모든 것이 바로잡혀 있는 나라이다. 또 초나라 군대는 질서와 기강이 바로 잡힌 훌륭한 대오임이 틀림없다. 병사들은 공격할 목표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규율 또한 엄격하다. 초나라 군주는 인재를 등용하면서 유능한 사람을 골라 쓰고 덕망이 높은 인물을 빼놓은 적이 없었다.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내리고 유공자를 빠뜨린 적도 없었다. 귀인은 예를 갖추어 공손히 대했고 서민은 사용하는 의복과 장식에 따라 신분을 엄격히 구분지었기에 서로 간에 예를 거스르는 일이 없다. 이토록 상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으니 어찌 그들과 대적할 수 있단 말이냐? 이쯤에서 물러나 군사를 정돈하고 힘을 키운 다음 다시 맞서는 것이 좋을 듯싶다." 


그러자 선의가 반박하고 나섰다. 


"불가하다. 여기에서 물러나는 것은 진나라의 치욕이다. 우리 진나라가 패자가 된 것은 군사가 용감하고 군신들이 온 힘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정나라를 잃으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였다고 말할 수 없고 적이 있는데도 싸우지 않으면 용감하다고 말할 수 없다. 싸우기를 두려워한다면 패권을 잃는 것이므로 죽느니만 못하다." 


그러자 사회가 말했다. "전쟁에서도 나를 알고 남을 알아야지 승리를 거두는 법이다. 공격한다고 해서 영웅이고 철군한다고 해서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초나라는 정나라가 두 마음을 가진 데 노하여 토벌했지만 정나라 군주가 몸을 낮추자 이를 용서하였다. 이는 덕과 형을 모두 바르게 실행한 것 아닌가. 전쟁이 이어져도 백성으로부터 원망과 비난을 듣지 않고 있다. 이는 초나라 군주의 정치가 바르게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물러선다고 해서 두려워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승리가 보이면 전진하고 공격하기 어려우면 후퇴할 줄 아는 것이 전략상 좋은 계책이다. 우리는 잠시 군사를 정비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선의는 여전히 물러서려고 하지 않았다. "3군의 통수가 되어 물러서는 것은 대장부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나는 결코 할 수 없다." 선의는 자기의 병사들을 이끌고 황하를 건너 초나라로 향했다. 순임부도 할수없이 그 뒤를 따랐다. 


결국 전쟁에서 진나라 대군은 초나라에 참패당하고 말았다. 이 이야기는『좌전(左傳)』<선공(宣公)12년>에 기록되어 있으며 "견가이진, 지난이퇴, 군지선정야(見可而進,知難而退,軍之善政也)"라고 서술하고 있다. 즉 "전쟁을 시작할 때는 기회를 엿보고 적절한 시기에 공격해야 하며 상대방의 계책을 알지 못하는 불리한 상황에서는 물러서는 것이 용법의 정도이다."라는 뜻으로 고사성어 지난이퇴(知難而退)는 바로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고난 앞에서 물러서는 소극적인 태도를 일컫는 말로도 사용된다. 

 

▶ 春秋时期,晋国和楚国为争夺霸权相互进行战争,郑国处于他们之间,他依附晋国,楚国就派兵征服它。晋国听说楚国出兵就派荀林父、士会、先榖等率军讨伐楚国,听到他们已经结盟,士会同意荀林父知难而退的做法,先榖不同意造成兵败

[출전] 先秦 左丘明《左传 僖公二十八年》:“军志曰:‘允当则归。’又曰:‘知难而退。’”

[동의어] 청천유명(听天由命), 외사부전(畏葸不前), 망이각보(望而却步)

[반의어] 지난이진(知难而进), 력쟁상유(力争上游), 재접재려(再接再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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