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빈지여귀(賓至如歸/宾至如归) ◑ bīn zhì rú guī

▶ 賓(손 빈) 至(이를 지) 如(같을 여) 歸(돌아갈 귀)

▶ 손님을 극진히 모시고 빈틈없이 대접하여 흡족하게 하다. 제 집에 돌아온 것 같이 마음 편한 대접(待接)을 받음을 비유한 말. 宾:来宾;客人;至:到;归:回家。客人来到这里;就如同回到自己家一样。形容旅店、饭店等招待周到;起居饮食舒适;来客感到满意。 Guests feel at home

宾至如归和“문정약시 门庭若市”;都有“객인상문 客人上门”的意思。不同在于:宾至如归形容待客热情;周到;客人感到温暖;“门庭若市”表示“门前和院子里热闹得像市场;形容上门的客人很多。

▶ 춘추 시대, 진(晉)나라는 문공(文公)의 선정(善政)으로 강대국인 초(楚)나라를 누르고 제후들의 맹주가 되었으며, 해마다 많은 제후국들이 찾아와 공물(貢物)을 바쳤으므로, 진나라는 특별히 외국 사신들이 머물 많은 여관을 지었다.
  
한번은, 정(鄭)나라의 군주인 간공(簡公)이 자산(子産)을 데리고 진나라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진 문공은 이미 세상을 떠나고, 뒤를 이어 평공(平公)이 왕위에 있었는데, 때마침 노(魯)나라 양공(襄公)도 세상을 떠났다. 진 평공은 노나라의 국상(國喪)을 핑계로 자산 등을 접견하지 않았다. 자산은 수행원들을 시켜 진나라 여관의 담장을 부수고, 수레를 들어가게 하였다.
  
진나라 대부 사문백(士文伯)은 이 사실을 알고 깜짝 놀라 여관으로 달려와 정중하게 자산을 책망하며 말했다.

"저희 나라에서는 도적들을 막고, 외국에서 오신 제후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하여 이렇게 두터운 담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귀빈께서 이렇게 부수어 버렸으니 일행의 안전을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저희 진나라는 맹주국으로서 여러 제후국에서 많은 빈객들의 방문을 받고 있습니다."
  
자산이 대답하였다.

"저희 정나라는 작은 나라로서 큰 나라들 사이에 끼여 있어 수시로 공물을 요구받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진나라에 도착하여 귀국의 군주를 뵙지도 못하고, 또 언제 뵙게 될 지도 모르므로 가져온 것을 드릴 수도 없습니다. 저희들은 공물을 귀국의 부고(府庫)에 함부로 들여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노천에 방치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뜻밖에 비라도 맞게 되거나, 말라버리게 된다면 결국 저희 나라의 죄는 중하게 됩니다.
  
귀국의 문공께서 맹주가 되셨을 때에는 이렇게 빈객들을 맞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는 찾아온 제후들은 위한 영빈관은 높고 크게 지었으며, 마구간이나 공물을 저장하는 창고는 잘 손질하였으며, 담당 관리들도 맡은 일을 잘 처리하였습니다. 또한 문공께서는 제후들과 근심이나 즐거움을 나누시며, 부족한 것이 있으면 친히 도와주셨습니다.
  
그리하여 빈객(賓客)들은 진나라에 오는 것을 다른 곳에 가 있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온 것과 같이 여겨,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賓至如歸, 無寧災患). 지금 귀국의 영빈관은 하인들의 집에 비교됩니다. 지금 귀국의 군주께서 노나라의 국상(國喪)에 예를 지키고 계시듯이 노나라의 국상은 저희 나라의 근심이기도 합니다. 만일 가지고 온 물건들을 드리고, 허물어진 담을 수리하고 돌아가라 하신다면, 귀국 군주님의 은혜가 될 터인데, 어찌 꺼리겠습니까?

사문백이 조정에 들어가 이 사실을 전하니 평공은 자산에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하였다. 그 후 진 평공은 정 간공을 특별한 예를 갖추어 만났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양공(襄公) 31年條


▶ 진(晉)나라는 문공(文公)의 바른 정치로 강대국인 초(楚)나라를 누르고 제후들의 맹주(盟主)가 되었다. 진나라는 주변 제후국들로부터 공물(貢物)을 받았는데 찾아오는 사신들이 머무를 수 있는 여관을 특별히 지었다. 


진문공이 세상을 떠나고 그 뒤를 이어 평공(平公)이 즉위하였다. 한번은 정(鄭)나라의 군주인 간공(簡公)이 대부 자산(子産)을 데리고 진나라를 방문하였는데 진평공이 만나주지 않았다. 진나라의 오만한 태도에 몹시 분개한 자산은 명령을 내려 투숙한 곳의 담장을 모두 허물게 하고 타고 온 수레와 예물들을 그대로 정원에 방치하도록 했다. 

  

정나라가 무례하다고 여긴 진나라 평공은 대부 사문백(士文伯)을 보내 자산에게 그 책임을 물었다. 


"요즘 들어 진나라에 도둑이 득실거리고 있소. 제후들이 늘 사신을 보내기 때문에 여관마다 튼튼한 대문을 달고 높은 담을 쌓아 오신 사신들의 안전을 지키고 있소. 헌데 당신이 지금 그 담을 부수어버렸으니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오. 당신은 부하들의 호위로 두렵지 않을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의 사신들은 더는 이곳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소.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사문백의 질책에 자산은 침착하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담장을 허물어버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정나라는 두 강대국 사이에 끼어 있는 소국에 불과합니다. 늘 대국에 공물을 바치고 있지요. 그런데 공물을 요구하는 시기가 일정하지 않아 늘 조심스럽습니다. 전국의 재물을 모아서 귀국에 바치려고 급급히 떠나 이곳까지 왔는데 도착하고 보니 군주께서 만나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언제 만나주겠다는 약속도 없으십니다. 가지고 온 예물들은 어찌하란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사문백이 되물었다. 


"갖고 있다가 폐하께 바치면 될 것을... 애꿎은 담장은 왜 허문 것이오?" 


"이는 모두 진귀한 보물들입니다. 헌납하는 의식을 거치지 않고 드린다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며 귀국의 대신들을 모욕하는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부고(府庫)에 함부로 들여놓을 수도 없으며 노천에 마냥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혹시라도 비바람을 맞아 볼품없이 되어버린다면 결국 그 죗값은 우리가 받게 됩니다. 문공께서 군주였을 때에는 이렇게 빈객을 맞지 않으셨습니다. 누각조차 없는 작고 초라한 궁궐이었지만 영빈관만은 높고 크게 지었습니다. 공물을 저장하는 창고와 마구간은 늘 따로 준비되어 있었으며 도로와 도성벽도 잘 손질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빈객들이 도착하면 횃불을 들고 손님을 따뜻하게 맞아주었으며 수레를 둘 곳과 빈객 하인들의 거처까지 빈틈없이 마련해주셨습니다. 또 문공께서는 절대 빈객들의 시간을 지체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제후들과 늘 고락을 같이 했으며 빈객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안위해주었으며 부족한 것을 도우셨습니다. 그리하여 빈객들은 진나라에 오면 자기 집으로 돌아온 것 마냥 아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賓至如歸) " 


자산이 이어서 말했다. "하지만 지금은 전혀 다릅니다. 궁궐은 몇 리나 이어졌지만 제후들이 머무는 방은 노예가 사는 것처럼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대문으로 수레가 들어가지 못하니 물건을 밖에 그대로 방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도둑들이 이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게다가 전염병도 막아내지 못합니다. 우리가 담장을 헐고 귀중품들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무슨 대책이 있겠습니까? 지금이라도 진상품을 바칠 수 있게 해주신다면 담장을 원래보다 더 튼튼하게 복구해 놓겠습니다." 


사문백은 어쩔 수 없이 조정에 들어가 이 사실을 전했다. 평공은 "우리의 덕행이 실로 부족했구나. 노예들이 머물고 있는 곳을 허물고 제후들을 맞이하라"고 명령한 다음 자산에게 사과하였다. 그 후 진 평공은 정간공과 자산을 특별한 예를 갖추어 만났다. 


이 이야기는 《춘추 좌전(春秋 左傳) 양공(襄公) 31년》에 기록되었다. 여기에서 유래된 고사성어 "빈지여귀(賓至如歸)"는 손님이 제 집에 돌아온 것처럼 편안하게 대접받는 것을 이르는 말로 사용된다. 


▶ 子产,即公孙侨,是春秋时郑国的大夫,曾当过多年国相,执掌郑国政权。

  公元前542年,子产奉郑简公之命出访晋国,带去许多礼物。当时,正遇上鲁襄公逝世,晋平公借口为鲁国国丧致哀,没有迎接郑国使者。子产就命令随行的人员,把晋国宾馆的围墙拆掉,然后赶进车马,安放物品。

  晋平公得知这一消息,吃了一惊,派大夫士文伯到宾馆责问子产。士文伯说:“我国是诸侯的盟主,来朝聘的诸侯官员很多为了防止盗贼,保障来宾安全,特意修建了这所宾馆,筑起厚厚的围墙。现在你们把围墙拆了,其他诸侯来宾的安全怎么办呢?我国国君想知道你们拆围墙的意图是什么。”

  子产回答说:“我们郑国是小国,需要向大国进献贡品。这一次我们带了从本国搜罗来的财产前来朝会,偏偏遇上你们的国君没有空,既见不到,也不知道进见日期。我听说过去晋文公做盟主的时候,自已住的宫室是低小的,接待诸侯的宾馆却造得又高又大。宾客到达的时候,样样事情有人照应,能很快献上礼品。他和宾客休戚与共,你不懂的,他给予教导,你有困难,他给予帮助。宾客来到这里就像回到自己家里一样。可是,现在晋国铜鞋山的宫室有好几里地面,而让诸侯宾客住的却是奴隶住的屋子。门口进不去车子,接见又没有确切的日期。我们不能翻墙进去,如果不拆掉围墙,让这些礼物日晒夜露,就是我们的罪过了。如果让我们交了礼物,我们愿意修好围墙再回去。”

  士文伯把情况报告了晋平公,平公感到惭愧,马上接见子产,隆重宴请,绐了丰厚的回赠,并下令重新建造宾馆。

[출전] 先秦 左丘明《左传 襄公三十一年》:“宾至如归,无宁灾患,不畏寇盗,而亦不患燥湿。”

[동의어] 친여가인(亲如家人), 만강열정(满腔热情), 무미부지(无微不至)

[반의어] 랭약빙상(冷若冰霜), 막부관심(漠不关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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