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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二十三回 衛懿公好鶴亡國 齊桓公興兵伐楚

話說衛惠公之子懿公,自周惠王九年嗣立,在位九年。般樂怠傲,不恤國政,最好的是羽族中一物,其名曰鶴。按浮邱伯《相鶴經》云:
    
鶴,陽鳥也,而遊於陰。因金氣,乘火精以自養。金數九,火數七,故鶴七年一小變,十六年一大變,百六十年變止,千六百年形定。體尚潔,故其色白。聲聞天,故其頭赤。食於水,故其喙長。棲於陸,故其足高。翔於雲,故毛豐而肉疏。大喉以吐,脩頸以納新,故壽不可量。行必依洲渚,止不集林木。蓋羽族之宗長,仙家之騏驥也。鶴之上相:隆鼻短口則少眠,高腳疏節則多力,露眼赤睛則視遠,鳳翼雀毛則喜飛,龜背鱉腹則能產,輕前重後則善舞,洪髀纖趾則能行。

那鶴色潔形清,能鳴善舞,所以懿公好之。俗諺云:「上人不好,下人不要。」因懿公偏好那鶴,凡獻鶴者皆有重賞。弋人百方羅致,都來進獻。自苑囿宮廷,處處養鶴,何止數百。有齊高帝詠鶴詩為證:
    
八風舞遙翮,九野弄清音;
一摧雲間志,為君苑中禽。
 
懿公所畜之鶴,皆有品位俸祿:上者食大夫俸,次者食士俸。懿公若出遊,其鶴亦分班從幸,命以大軒,載於車前,號曰「鶴將軍」。養鶴之人,亦有常俸。厚歛於民,以充鶴糧。民有飢凍,全不撫恤。
  
大夫石祁子,乃石碏之後,石駘仲之子,為人忠直有名,與寧莊子名速,同秉國政,皆賢臣也。二人進諫屢次,俱不聽。公子燬乃惠公庶兄,公子碩烝於宣姜而生者,即文公也。燬知衛必亡,託故如齊。齊桓公妻以宗女,竟留齊國。衛人向來心憐故太子急子之冤,自惠公復位之後,百姓日夜咒詛:「若天道有知,必不終於祿位也!」因急子與壽,俱未有子,公子碩早死,黔牟已絕,惟燬有賢德,人心陰歸附之。及懿公失政,公子燬出奔,衛人無不含怨。
  
卻說北狄自周太王之時,獯鬻已強盛,逼太王遷都於岐。及武王一統,周公南懲荊舒,北膺戎狄,中國久安。迨平王東遷之後,南蠻北狄,交肆其橫。單說北狄主名曰瞍瞞,控弦數萬,常有迭蕩中原之意。及聞齊伐山戎,瞍瞞怒曰:「齊兵遠伐,必有輕我之心,當先發制之。」乃驅胡騎二萬伐邢,殘破其國。聞齊謀救邢,遂移兵向衛。時衛懿公正欲載鶴出遊,諜報:「狄人入寇。」懿公大驚,即時歛兵授甲,為戰守計。百姓皆逃避村野,不肯即戎。懿公使司徒拘執之。須臾,擒百餘人來,問其逃避之故。眾人曰:「君用一物,足以禦狄,安用我等?」懿公問:「何物?」眾人曰:「鶴。」懿公曰:「鶴何能禦狄耶?」眾人曰:「鶴既不能戰,是無用之物,君敝有用以養無用,百姓所以不服也!」懿公曰:「寡人知罪矣!願散鶴以從民可乎?」石祁子曰:「君亟行之,猶恐其晚也。」懿公果使人縱鶴,鶴素受豢養,盤旋故處,終不肯去。石寧二大夫,親往街市,述衛侯悔過之意,百姓始稍稍復集。狄兵已殺至滎澤,頃刻三報。石祁子奏曰:「狄兵驍勇,不可輕敵,臣請求救於齊。」懿公曰:「齊昔日奉命來伐,雖然退兵,我國並未修聘謝,安肯相救?不如一戰,以決存亡!」寧速曰:「臣請率師禦狄,君居守。」懿公曰:「孤不親行,恐人不用心。」乃與石祁子玉玦,使代理國政,曰:「卿決斷如此玦矣!」與寧速矢,使專力守禦。又曰:「國中之事,全委二卿。寡人不勝狄,不能歸也!」石寧二大夫皆垂淚。懿公吩咐已畢,乃大集車徒。使大夫渠孔為將,于伯副之,黃夷為先鋒,孔嬰齊為後隊。一路軍人口出怨言,懿公夜往察之。軍中歌曰:
    
鶴食祿,民力耕;鶴乘軒,民操兵。狄鋒厲兮不可攖,欲戰兮九死而一生!鶴今何在兮?而我瞿瞿為此行!

懿公聞歌,悶悶不已。大夫渠孔用法太嚴,人心益離。行近滎澤,見敵軍千餘,左右分馳,全無行次。渠孔曰:「人言狄勇,虛名耳!」即命鼓行而進。狄人詐敗,引入伏中,一時呼哨而起,如天崩地塌,將衛兵截做三處,你我不能相顧。衛兵原無心交戰,見敵勢兇猛,盡棄車仗而逃。懿公被狄兵圍之數重。渠孔曰:「事急矣!請偃大旆,君微服下車,尚可脫也。」懿公嘆曰:「二三子苟能相救,以旆為識。不然,去旆無益也。孤寧一死,以謝百姓耳!」須臾,衛兵前後隊俱敗,黃夷戰死,孔嬰齊自刎而亡。狄軍圍益厚。于伯中箭墜車,懿公與渠孔先後被害,被狄人砍為肉泥,全軍俱沒。髯翁有詩云:
    
曾聞古訓戒禽荒,一鶴誰知便喪邦。
滎澤當時遍燐火,可能騎鶴返仙鄉?
 
狄人囚衛太史華龍滑禮孔,欲殺之。華禮二人知胡俗信鬼,給之曰:「我太史也,實掌國之祭祀,我先往為汝白神。不然,鬼神不汝佑,國不可得也。」瞍瞞信其言,遂縱之登車。寧速方戎服巡城,望見單車馳到,認是二太史,大驚,問:「主公何在?」曰:「已全軍覆沒矣!狄師強盛,不可坐待滅亡,宜且避其鋒。」寧速欲開門納之,禮孔曰:「與君俱出,不與君俱入,人臣之義謂何?吾將事吾君於地下!」遂拔劍自刎。華龍滑曰:「不可失史氏之籍。」乃入城。寧速與石祁子商議,引著衛侯宮眷及公子申,乘夜乘小車出城東走。華龍滑抱典籍從之。國人聞二大夫已行,各各攜男抱女,隨後逃命,哭聲震天。狄兵乘勝長驅,直入衛城。百姓奔走落後者,盡被殺戮。又分兵追逐。石祁子保宮眷先行,寧速斷後,且戰且走。從行之民,半罹狄刃。將及黃河,喜得宋桓公遣兵來迎,備下船隻,星夜渡河。狄兵方纔退去,將衛國府庫,及民間存留金粟之類,劫掠一空,墮其城郭,滿載而歸。不在話下。
  
卻說衛大夫弘演,先奉使聘陳,比及反役,衛已破滅。聞衛侯死於滎澤,往覓其屍。一路看見骸骨暴露,血肉狼藉,不勝傷感。行至一處,見大旆倒於荒澤之旁,弘演曰:「旆在此,屍當不遠矣。」未數步,聞呻吟之聲,前往察之,見一小內侍折臂而臥。弘演問曰:「汝認得主公死處否?」內侍指一堆血肉曰:「此即主公之屍也。吾親見主公被殺。為臂傷疼痛,不能行走,故臥守於此,欲俟國人來而示之。」弘演視其屍體,俱已零落不全,惟一肝完好。弘演對之再拜,大哭,乃復命於肝前,如生時之禮。事畢,弘演曰:「主公無人收葬,吾將以身為棺耳!」囑從人曰:「我死後,埋我於林下。俟有新君,方可告之。」遂拔佩刀自剖其腹,手取懿公之肝,納於腹中,須臾而絕。從者如言埋掩,因以車載小內侍渡河,察聽新君消息。
  
卻說石祁子先扶公子申登舟。寧速收拾遺民,隨後趕上。至於漕邑,點查男女,纔存得七百有二十人。狄人殺戮之多,豈不悲哉!二大夫相議:「國不可一日無君,其奈遺民太少!」乃於共滕二邑,十抽其三,共得四千有餘人,連遺民湊成五千之數,即於漕邑創立廬舍,扶立公子申為君,是為戴公。宋桓公御說許桓公新臣,各遣人致唁。戴公先已有疾,立數日遂薨。寧速如齊,迎公子燬嗣位。齊桓公曰:「公子歸自敝邑,將守宗廟,若器用不具,皆寡人之過也。」乃遺以良馬一乘,祭服五稱,牛、羊、豕、雞、狗各三百隻。又以魚軒贈其夫人,兼美錦三十端。命公子無虧帥車三百乘送之。並致門材,使立門戶。公子燬至漕邑,弘演之從人,同折臂小內侍俱到,備述納肝之事。公子燬先遣使具棺,往滎澤收殮。一面為懿公戴公發喪。追封弘演,錄用其子,以旌其忠。諸侯重齊桓公之義,多有弔賻。時周惠王十八年冬十二月也。
  
其明年,春正月,衛侯燬改元,是為文公。纔有車三十乘,寄居民間,甚是荒涼。文公布衣帛冠,蔬食菜羹,早起夜息,撫安百姓,人稱其賢。公子無虧辭歸齊國,留甲士三千人,協戍漕邑,以防狄患。無虧回見桓公,言衛燬草創之狀,並述弘演納肝之事。桓公嘆曰:「無道之君,亦有忠臣如此者乎?其國正未艾也。」管仲進曰:「今留戍勞民,不如擇地築城,一勞永逸。」桓公以為然,正欲糾合諸侯同役。忽邢國遣人告急,言:「狄兵又到本國,勢不能支,伏望救援!」恆公問管仲曰:「邢可救乎?」管仲對曰:「諸侯所以事齊,謂齊能拯其災患也。不能救衛,又不救邢,霸業隕矣!」桓公曰:「然則邢衛之急孰先?」管仲對曰:「俟邢患既平,因而城衛,此百世之功也。」桓公曰:「善。」即傳檄宋、魯、曹、邾各國,合兵救邢,俱於聶北取齊。宋曹二國兵先到。管仲又曰:「狄寇方張,邢力未竭,敵方張之寇,其勞倍,助未竭之力,其功少,不如待之。邢不支狄,必潰,狄勝邢,必疲。驅疲狄而援潰邢,所謂力省而功多者也。」桓公用其謀,託言待魯邾兵到,乃屯兵於聶北,遣諜打探邢狄攻守消息。史臣有詩譏管仲不早救邢衛,乃霸者養亂為功之謀也。詩云:
    
救患如同解倒懸,提兵那可復遷延?
從來霸事遜正事,功利偏居道義先。

話說三國駐兵聶北,約及兩月。狄兵攻邢,晝夜不息。邢人力竭,潰圍而出。諜報方到,邢國男女,填湧而來,俱投奔齊營求救。內一人哭倒在地,乃邢侯叔顏也。桓公扶起,慰之曰:「寡人相援不早,以致如此,罪在寡人。當請宋公曹伯共議,驅逐狄人。」即日拔寨都起。狄主瞍瞞擄掠滿欲,無心戀戰,聞三國大兵將至,放起一把火,望北飛馳而去。比及各國兵到,只見一派火光,狄人已遁。桓公傳令將火撲滅,問叔顏:「故城尚可居否?」叔顏曰:「百姓逃難者,大半在夷儀地方,願遷夷儀,以從民欲。」桓公乃命三國各具版築,築夷儀城,使叔顏居之。更為建立朝廟,添設廬舍,牛馬粟帛之類,皆從齊國運至,充牣其中。邢國君臣,如歸故國,懽祝之聲徹耳。事畢,宋曹欲辭齊歸國。桓公曰:「衛國未定,城邢而不城衛,衛其謂我何?」諸侯曰:「惟霸君命。」桓公傳令,移兵向衛,凡畚鍤之屬,盡攜帶隨身。衛文公燬遠遠相接。桓公見其大布為衣,大帛為冠,不改喪服,惻然久之。乃曰:「寡人藉諸君之力,欲為君定都,未審何地為吉?」文公燬曰:「孤已卜得吉地,在於楚邱,但版築之費,非亡國所能辦耳!」桓公曰:「此事寡人力任之。」即日傳令三國之兵,俱往楚邱興工。復運門材,重立朝廟,謂之「封衛」。衛文公感齊再造之恩,為《木瓜》之詩以詠之。詩云:
    
投我以木瓜兮,報之以瓊琚。
投我以木桃兮,報之以瓊瑤。
投我以木李兮,報之以瓊玖。

當時稱桓公存三亡國:謂立僖公以存魯,城夷儀以存邢,城楚邱以存衛,有此三大功勞,此所以為五霸之首也。潛淵先生讀史詩云:
    
周室東遷綱紀摧,桓公糾合振傾頹。
興滅繼絕存三國,大義堂堂五霸魁。

時楚成王熊惲,任用令尹子文圖治,修明國政,有志爭霸。聞齊侯救邢存衛,頌聲傳至荊襄,楚成王心甚不樂,謂子文曰:「齊侯布德沽名,人心歸向。寡人伏處漢東,德不足以懷人,威不足以懾眾,當今之時,有齊無楚,寡人恥之!」子文對曰:「齊侯經營伯業,於今幾三十年矣。彼以尊王為名,諸侯樂附,未可敵也。鄭居南北之間,為中原屏蔽,王若欲圖中原,非得鄭不可。」成王曰:「誰能為寡人任伐鄭之事者?」大夫鬥章願往,成王與車二百乘,長驅至鄭。
  
卻說鄭自純門受師以後,日夜隄防楚兵。探知楚國興師,鄭伯大懼,即遣大夫聃伯,率師把守純門,使人星夜告急於齊。齊侯傳檄,大合諸侯於檉,將謀救鄭。鬥章知鄭有準備,又聞齊救將至,恐其失利,至界而返。楚成王大怒,解佩劍賜鬥廉,使即軍中斬鬥章之首。鬥廉乃鬥章之兄也。既至軍中,且隱下楚王之命,密與鬥章商議:「欲免國法,必須立功,方可自贖。」鬥章跪而請教。鬥廉曰:「鄭知退兵,謂汝必不驟來,若疾走襲之,可得志也。」鬥章分軍為二隊,自率前隊先行,鬥廉率後隊接應。卻說鬥章銜枚臥鼓,悄地侵入鄭界,恰遇聃伯在界上點閱車馬。聃伯聞有寇兵,正不知何國,慌忙點兵,在界上迎住廝殺。不期鬥廉後隊已到,反抄出鄭師之後,腹背夾攻。聃伯力不能支,被鬥章只一鐵簡打倒,雙手拿來。鬥廉乘勝掩殺,鄭兵折其大半。鬥章將聃伯上了囚車,便欲長驅入鄭。鬥廉曰:「此番掩襲成功,且圖免死,敢僥幸從事耶?」乃即日班師。鬥章歸見楚成王,叩首請罪,奏曰:「臣回軍是誘敵之計,非怯戰也。」成王曰:「既有擒將之功,權許準罪。但鄭國未服,如何撤兵?」鬥廉曰:「恐兵少不能成功,懼褻國威。」成王怒曰:「汝以兵少為辭,明是怯敵。今添兵車二百乘,汝可再往,若不得鄭成,休見寡人之面!」鬥廉奏曰:「臣願兄弟同往。若鄭不投降,當縛鄭伯以獻。」成王壯其言,許之。乃拜鬥廉為大將,鬥章副之,共率車四百乘,重望鄭國殺來。史臣有詩云:
    
荊襄自帝勢炎炎,蠶食多邦志未厭。
溱洧何辜三受伐?解懸只把霸君瞻。
 
且說鄭伯聞聃伯被囚,復遣人如齊請救。管仲進曰:「君數年以來,救燕存魯,城邢封衛,恩德加於百姓,大義布於諸侯,若欲用諸侯之兵,此其時矣。君若救鄭,不如伐楚,伐楚必須大合諸侯。」桓公曰:「大合諸侯,楚必為備,可必勝乎?」管仲曰:「蔡人得罪於君,君欲討之久矣。楚蔡接壤,誠以討蔡為名,因而及楚,《兵法》所謂『出其不意』者也。」(先時,蔡穆公以其妹嫁桓公為第三夫人,一日,桓公與蔡姬共登小舟,遊於池上,採蓮為樂。蔡姬戲以水灑公,公止之。姬知公畏水,故蕩其舟,水濺公衣。公大怒曰:「婢子不能事君!」乃遣豎貂送蔡姬歸國。蔡穆公亦怒曰:「已嫁而歸,是絕之也。」竟將其妹更嫁於楚國,為楚成王夫人。桓公深恨蔡侯,故管仲言及之。)桓公曰:「江黃二國,不堪楚暴,遣使納款,寡人欲與會盟,伐楚之日,約為內應,何如?」管仲曰:「江黃遠齊而近楚,一向服楚,所以僅存。今背而從齊,楚人必怒,怒必加討。當此時,我欲救,則阻道路之遙;不救,則乖同盟之義。況中國諸侯,五合六聚,儘可成功,何必借助蕞爾?不如以好言辭之。」桓公曰:「遠國慕義而來,辭之將失人心。」管仲曰:「君但識吾言於壁,異日勿忘江黃之急也。」桓公遂與江黃二君盟會,密訂伐楚之約,以明年春正月為期。二君言:「舒人助楚為虐,天下稱為『荊舒』,不可不討。」桓公曰:「寡人當先取舒國,以剪楚翼。」乃密寫一書,付於徐子。徐與舒近,徐嬴嫁為齊桓公第二夫人,有婚姻之好,一向歸附於齊,故桓公以舒事囑之。徐果引兵襲取舒國。桓公即命徐子屯兵舒城,以備緩急。江黃二君,各守本界,以候調遣。魯僖公遣季友至齊謝罪,稱:「有邾莒之隙,不得共邢衛之役。今聞會盟江黃,特來申好,嗣有征伐,願執鞭前驅。」桓公大喜,亦以伐楚之事,密與訂約。
  
時楚兵再至鄭國,鄭文公請成,以紓民禍。大夫孔叔曰:「不可,齊方有事於楚,以我故也。人有德於我,棄之不祥,宜堅壁以待之。」於是再遣使如齊告急。桓公授之以計,使揚言齊救即至,以緩楚。至期,或君或臣,率一軍出虎牢,於上蔡取齊,等候協力攻楚。於是遍約宋、魯、陳、衛、曹、許之君,俱要如期起兵,名為討蔡,實為伐楚。
  
明年,為周惠王之十三年,春正月元旦,齊桓公朝賀已畢,便議討蔡一事。命管仲為大將,率領隰朋、賓須無、鮑叔牙、公子開方、豎人貂等,出車三百乘,甲士萬人,分隊進發。太史奏:「七日出軍上吉。」豎貂請先率一軍,潛行掠蔡,就會集各國車馬。桓公許之。蔡人恃楚,全不設備直待齊兵到時,方纔歛兵設守。豎貂在城下耀武揚威,喝令攻城,至夜方退。蔡穆公認得是豎貂,先年在齊宮曾伏侍蔡姬,受其恩惠,蔡姬退回,又是他送去的,曉得是宵小之輩。乃於夜深,使人密送金帛一車,求其緩兵。豎貂受了,遂私將齊侯糾合七路諸侯,先侵蔡,後伐楚,一段軍機,備細洩漏於蔡:「不日各國軍到,將蔡城蹂為平地,不如及早逃遁為上。」使者回報,蔡侯大驚。當夜率領宮眷,開門出奔楚國。百姓無主,即時潰散,豎貂自以為功,飛報齊侯去訖。
  
卻說蔡侯至楚,見了成王,備述豎貂之語。成王方省齊謀,傳令簡閱兵車,准備戰守,一面撤回鬥章伐鄭之兵。數日後,齊侯兵至上蔡。豎貂謁見已畢。七路諸侯陸續俱到,一個個躬率車徒,前來助戰,軍威甚壯。那七路:宋桓公御說,魯僖公申,陳宣公杵臼,衛文公燬,鄭文公捷,曹昭公班,許穆公新臣。連主伯齊桓公小白,共是八位。內許穆公抱病,力疾率師先到蔡地。桓公嘉其勞,使序於曹伯之上。是夜,許穆公薨。齊侯留蔡三日,為之發喪。命許國以侯禮葬之。七國之師,望南而進,直達楚界。只見界上,早有一人衣冠整肅,停車道左,磬折而言曰:「來者可是齊侯?可傳言楚國使臣奉候久矣。」那人姓屈名完,乃楚之公族,官拜大夫。今奉楚王之命為行人,使於齊師。桓公曰:「楚人何以預知吾軍之至也?」管仲曰:「此必有人漏洩消息。既彼遣使,必有所陳。臣當以大義責之,使彼自愧屈,可不戰而降矣。」管仲亦乘車而出,與屈完車上拱手。屈完開言曰:「寡君聞上國車徒,辱於敝邑,使下臣完致命。

寡君命使臣辭曰:『齊楚各君其國。齊居於北海,楚近於南海,雖風馬牛不相及也。不知君何以涉於吾地?』敢請其故?」管仲對曰:「昔周成王封吾先君太公於齊,使召康公賜之命,辭曰:『五侯九伯,汝世掌征伐,以夾輔周室。其地東至海,西至河,南至穆陵,北至無棣,凡有不共王職,汝勿赦宥。』自周室東遷,諸侯放恣,寡君奉命主盟,修復先業。爾楚國於南荊,當歲貢包茅,以助王祭。自爾缺貢,無以縮酒,寡人是徵。且昭王南征而不返,亦爾故也。爾其何辭?」屈完對曰:「周失其綱,朝貢廢缺,天下皆然,豈惟南荊?雖然,包茅不入,寡君知罪矣。敢不共給,以承君命!若夫昭王不返,惟膠舟之故,君其問諸水濱,寡君不敢任咎。完將復於寡君。」言畢,麾車而退。管仲告桓公曰:「楚人倔強,未可以口舌屈也,宜進逼之。」乃傳令八軍同發,直至陘山。離漢水不遠,管仲下令:「就此屯札,不可前行!」諸侯皆曰:「兵已深入,何不濟漢,決一死戰,而逗留於此?」管仲曰:「楚既遣使,必然有備,兵鋒一交,不可復解。今吾頓兵此地,遙張其勢,楚懼吾之眾,將復遣使,吾因取成焉。以討楚出,以服楚歸,不亦可乎?」諸侯猶未深信,議論紛紛不一。
  
卻說楚成王已拜鬥子文為大將,蒐甲厲兵,屯於漢南,只等諸侯濟漢,便來邀擊。諜報:「八國之兵,屯駐陘地。」子文進曰:「管仲知兵,不萬全不發。今以八國之眾,逗留不進,是必有謀。當遣使再往,探其強弱,察其意向,或戰或和,決計未晚。」成王曰:「此番何人可使?」子文曰:「屈完既與夷吾識面,宜再遣之。」屈完奏曰:「缺貢包茅,臣前承其咎矣。君若請盟,臣當勉行,以解兩國之紛。若欲請戰,別遣能者。」成王曰:「戰盟任卿自裁,寡人不汝制也。」屈完乃再至齊軍。

畢竟齊楚如何,且看下回分解。

第二十三回 -줄거리
衞懿公好鶴亡國 (위의공호학망국)
齊桓公興兵伐楚 (제환공흥병벌초)

-BC668년 주혜왕9년 위혜공의 삭의 뒤를 이어 위나라 의공이 군주에 오르다.  -위의공은 재위 9년 동안 자기가 좋아하는 짓만 골라하고 천성이 게으르고 오만하여 나라의 일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그리고 학만을 좋아하고 학으로 인해 지출이 많다

-위선공(衛宣公)의 가계도 ①~⑦ 제위순서
위선공① + 이강(夷姜)
1-1. 급자(急子) : 혜공 삭에게 공자수와 함께 살해 되었다.
1-2. 검모(黔牟)③ : 혜공 삭을 쫓아내고 위후의 자리에 앉았으나 다시 제양공의 후원을 받은 혜공에게 쫓겨났다.
1-3. 소백(昭伯) 공자석(公子碩) + 선강(宣姜)
 1-3-1. 제(齊) : 어려서 죽었다.
 1-3-2. 대공(戴公) 신(申)⑥ : 의공(懿公) 의 뒤를 이 어 재위에 오른지 며칠 만에 죽었다.
 1-3-3. 문공(文公) 훼(燬)⑦
 1-3-장녀. 송환공(宋桓公)의 부인
 1-3-차녀. 허목공(許穆公)의 부인

 위선공 + 선강
2-1. 공자수(公子壽) : 동모제인 혜공 삭에게 급자와 함께 살 해되었다.
2-2. 혜공 삭(朔)②④ : 두 형을 살해하고 선공의 뒤를 이어 위후의 자리에 올랐으나 급자와 공자 수를 모시던 공자들의 란으로 쫓겨나 제나라에 망명했다가 제양공의 도움으로 공자들에 의해 추대된 검모를 쫓아내고 위후의 자리에 복위했다.
 2-2-1. 위의공(衛懿公)⑤ 적(赤) 학을 지나치게 좋아 북적(北狄) 의 침입으로 전사하고 위나라는 제 환공의 도움으로 나라를 옮겼다.

-북적(北狄)의 군주 수만(瞍瞞)은 제환공이 산융을 정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국을 쳐부수고 위나라를 침공하다. 백성들이 학만 좋아하는 위의공을 따르지 않고 도망하다. 의공이 그 연유를 알고 학은 버리고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다. 위군은 매복에 걸려 의공과 따르는 군사들이 전멸하다

-이에 석기자와 공자신은 도성을 버리고 송환공의 도움으로 황하건너 도주하고 북적은 도성을 강탈하여 폐허로 만들어 버리다

- 진(陳)나라에 사절로 갔다가 돌아온 대부 홍연(弘演)은 형택의 싸움에서 위의공이 전사했다는 소리를 듣고 찾아 나서다. 의공의 간하나만을 찾아 자기의 배를 가르고 간을 넣어 의공의 관이 되다.

-석기자는 죽은 위의공의 뒤를 이어 공자신을 위후로 세우니 이가 위대공(衛戴公)이다.  송환공 어설(御說)과 허목공 신신(新臣)이 각기 사람을 보내어 죽은 의공을 조문했다. 이들은 위대공의 매제들이다.

-위대공은 몸이 허약해 즉위한지 며칠만에 죽자 석기자는 제나라에 있는 공자훼(公子毁)를 데려다 위후로 삼고자 하다

-제환공은공자훼(公子毁)를 보내고 위의 도성 지어 주려고 할때 형국에서 적족의 침략으로 부터 구해달라는 소식을 받고 송(宋), 노(魯), 조(曹), 주(邾) 네 나라에 섭북(聶北)에 모여 형국을 구하자고 연락을 한다

-노(魯), 주(邾) 나라 군사를 기다린다는 핑계로 머무는 동안 형국은 적족에 패하여 섭북에 까지 도망오다. 형후(邢侯) 숙안(叔顔)에게 이의(夷義)에 새로운 도성을 쌓아주다

-이제 송(宋), 조(曹) 나라 군사들을 이끌고 위나라 초구(楚丘)에 위나라의 도성을 지어주다.

-초성왕 웅운(熊惲)이 제환공의 성공을 듣고 자기도 중원으로 진출하고자 정나라를 공격하나 초전에서 초나라 투장이 지다. 투렴과 함께 투장은 정나라를 급습하여 승리하다. 정문공은 담백이 포로가 되었다는 보고를 받고 제환공에게 구원군을 재촉하다

-강(江)과 황(黃) 두 나라가 제환공에 회맹을 요청하자 관중의 반대에도 결의를 하고, 초나라와 친한 서(舒) 나라를 먼저 치기 위해 제환공의 처가인 서(徐)나라에 도움을 청하자 서(徐)나라가 서(舒)나라를 급습해 정복하다

-제환공은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진군중 노희공이 전쟁에 참여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조(曹), 허(許) 등의 군사들을 모두 모아 채나라를 먼저 공격하기로 하다

-BC664년 주혜왕13년 제환공은 초나라를 정벌키 위해 수초를 보내어 채나라를 정복하나 수초가 채나라에 연합군이 초를 정벌할거라는 기밀을 누설한다. 채나라에 모인 7국 제후들은 송환공(宋桓公) 어설(御說), 노희공(魯僖公) 신(申), 진선공(陳宣公) 저구(杵臼), 위문공(衛文公) 훼(毁), 정문공(鄭文公) 첩(捷), 조소공(曹昭公) 반(班),허목공(許穆公) 신신(新臣) 이다. 그러나 허목공이 병으로 숨지다

-초나라 굴완이 길목에서 연합군을 기다리다 관중과 서로 대의를 토하고 8국 연합군이 진군하여 한수에서 가까운 형산(陘山)에 진을 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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