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부구조(竊符求趙) ◑ 

▶ 竊(훔칠 절) 符(병부 부) 求(구할 구) 趙(나라 조) 
  
▶ 훔친 병부로 조나라를 구했다는 뜻으로, 보다 큰 목적을 위해서는 사소한 의리 같은 것은 버려도 돤다는 말로 쓰인다. 
  
▶ 전국시대 사군(四君)의 한 사람이었던 위공자(魏公子) 신릉군(信陵君) 무기(無忌)는 위 소왕의 막내 아들로 안희왕의 이복(異腹) 동생이었다. 신릉군은 덕과 지헤를 겸비하였으며, 또 인자하고 겸손하며 예의가 발랐다. 이런 까닭으로 선비들이 사방 수천리에서 앞을 다투어 모여들어 식객(食客)이 3천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신릉군은 이중에도 동문(東門)을 지키는 후영이란 문지기를 스승처럼 위했고, 백정 주해(朱亥)를 귀인처럼 받들었다. 

안희왕 20년, 조군(趙軍)을 장평에서 물리친 진의 소왕은 게속 진격하여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했다. 조나라의 혜문왕과 평원군(平原君)은 여러 차례 위(魏)의 안희왕과 신릉군에게 편지를 보내 구원을 요청했다. 안희왕이 장군 진비로 하여금 10만의 군사를 이끌고 조나라를 돕게 하자, 진의 소왕이 사자를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제후들 중에 누구든 조나라를 돕는 나라가 있으면, 조나라를 격파한 후 반드시 군사를 돌려 그 나라를 공격하겠다." 

이 말을 들은 안희왕은 진비의 진격을 멈추게 하였다. 할 수 없이 신릉군은 후영의 조언을 받아 왕이 총애하는 여희(如姬)를 통해 병부(兵符)를 훔치고, 이 훔친 병부로 진비의 군대를 가로채려 했다. 그러나 훔친 병부를 진비가 인정하지 않자 주해가 이를 격살했다. 이렇게 하여 군대를 손에 넣은 신릉군은 즉시 영을 내려, 

"부자와 형제가 함께 군중에 있으면 아버지와 형은 즉시 귀국하라. 독자로서 형이 없는 자 또한 귀국하여 부모를 봉양하라." 고 하였다. 

이리하여 선택된 8만의 군사로 진격하여 조나라를 구하였다. 이 "절부구조'는 정도(正道)가 아니라 패도(覇道) 즉 패자(覇者)의 도(道)이다. 곧 인의(仁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무력(武力)과 권모(權謀)를 통한 패업의 추구(追求)이다. 전국시대에나 가능했던 이야기이다. 
  
[출전] 사기(史記)-위공자열전(魏公子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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