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 61  작성일 : 2003-06-17 

◐ 득롱망촉 得隴望蜀 ◑

▶ 농을 얻고 나니 촉을 갖고 싶다는 뜻.
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음을 이르는 말.
② 한 가지 소원을 이룬 다음 또다시 다른 소원을 이루고자 함을 비유.
③ 만족할 줄 모름의 비유.

▶ ①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가 처음으로 낙양에 입성하여 이를 도읍으로 삼았을 무렵(A.D 26)의 일이다.

당시 전한의 도읍 장안을 점거한 적미지적(赤眉之賊)의 유분자(劉盆子)를 비롯하여 농서 (?西:감숙성)에 외효(氓?), 촉(蜀:사천성)에 공손술(公孫述), 수양(睡陽:하남성)에 유영(劉 永), 노강(盧江:안휘성)에 이헌(李憲), 임치(臨淄:산동성)에 장보(張步) 등이 할거(割據)하고 있었는데 그 중 유분자(劉盆子), 유영(劉永), 이헌(李憲), 공손술(公孫述) 등은 저마다 황제를 일컫는 세력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러나 그후 외효와 공손술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무제에게 토벌되었다. 외효는 광무제와 수호(修好)하고 서주 상장군(西州上將軍)이란 칭호까지 받았으나 광무제의 세력이 커지자 촉 땅의 공손술과 손잡고 대항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성(成)나라를 세우고 황제를 참칭(僭稱)하는 공손술은 외효의 사신을 냉대하여 그냥 돌려보냈다.

이에 실망한 외효는 생각을 바꾸어 광무제와 수호를 강화하려 했으나 광무제가 신하될 것을 강요하므로 외효의 양다리 외교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건무(建武) 9년(A.D 33), 광무제와 대립 상태에 있던 외효가 병으로 죽자 이듬해 그의 외아들 외구순(氓寇恂)이 항복했다. 따라서 농서 역시 광무제의 손에 들어왔다.

이때 광무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만족할 줄 모른다더니 이미 '농을 얻고도 다시 촉을 바라는구나 [得?望蜀]'."

그로부터 4년 후인 건무 13년(A.D 37), 광무제는 대군을 이끌고 촉을 쳐 격파하고 천하 평정의 숙원(宿願)을 이루었다.

② 광무제 때로부터 약 200년 후인 후한 헌제(獻帝:189∼226)말, 즉 삼국 시대가 개막되기 직전의 일이다.

헌제 20년(220), 촉을 차지한 유비(劉備)가 강남의 손권(孫權)과 천하 대사를 논하고 있을 때 조조(曹操)는 단숨에 한중(漢中:섬서성 서남쪽 한강 북안의 땅)을 석권하고 농(?) 땅을 수중에 넣었다.

이때 조조의 명장 (名將) 사마의[司馬懿:자(字)는 중달(仲達), 진(晉)나라를 세운 사마염(司馬炎)의 할아버지]가 진언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격하면 유비의 촉도 쉽게 얻으실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란 만족할 줄 모른다고 하지만, 이미 농을 얻었으니 촉까지 바라지 않소."

이리하여 거기서 진격을 멈춘 조조는 헌제 23년(223),

한중으로 진격해 온 유비의 촉군(蜀軍)과 수개월에 걸친 공방전을 벌이다가 결국 '계륵(鷄肋)'이란 말을 남기고 철수하고 말았다.

▶ 得 얻을 득. 隴 땅 이름 롱. 望 바랄 망. 蜀 나라 이름 촉.

▶ [동의어] 평롱망촉(坪?望蜀), 망촉지탄(望蜀之歎)

▶ [유사어] 계학지욕(谿壑之慾), 차청차규(借廳借閨), 거어지탄(車魚之歎), 기마욕솔노(騎 馬欲率奴)


▶ 조조가 한중을 얻고 허창으로 되돌아가려 할 때, 사마의가 조조에게 권하길, '이 기회를 틈타 유비가 있는 촉을 얻으십시오'라 하였으나, 조조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옛말에 농지방을 얻고 촉을 바란다더니, 욕심이 과하군'이라 답변하였다. 

[출전] 後漢書 光武紀 / 삼국지(三國志) 魏志


▶ 서한 말년 왕망이 왕위를 찬탈할 무렵, 극양에서 현관으로 있는 잠팽이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얼마 안되어 류현과 그의 아우 류수가 연합하여 여러갈래의 농민봉기부대를 이용하여 곤양일대에서 왕망군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한왕조의 통치를 회복했습니다. 


이로 하여 류현은 한갱시제로 불리우게 되었는데 한군이 극양을 진공할 때 잠팽은 부대를 인솔하여 류현에게 항복했다가 후에 류수의 수하에 들어갔습니다. 


류수는 하남을 평정한데 뒤이어 하북을 점령하고 산동으로 추격하여 농민봉기군을 탄압한 다음 스스로 한광무제라고 하였으니 약 2백여년간 지속된 동한왕조는 이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한광무제 류수는 동부지구를 평정한 뒤 군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군했습니다. 이때 잠팽은 대장군이 되어 류수를 따라 우선 천수를 깨뜨리고 뒤이어 편장군 오한과 함께 서성에서 외효를 포위했는데 이 외효라는 자는 왕망시기에 왕망의 수하에 있다가 후에 류현에게 붙었다가 다시 류수에게 항복했으나 이때는 류수를 배반하고 공손술켠에 가붙은터였습니다. 


그리고 공손술은 왕망 때부터 촉지 즉 지금의 사천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성도에 도읍을 정하고 촉왕이라 자칭한 사람으로서 수십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류수가 서진한 목적은 외효와 공손술이 각기 틀어쥐고 있는 롱 즉 지금의 감숙과 촉 즉 지금의 사천 두 지방을 평정하고 전국을 통일하려는데 있었습니다. 


얼마 안되어 류수의 이 목적은 전부 실현되고 외효와 공손술은 모두 소멸되었습니다. 


잠팽과 오한의 군대가 서성에서 외효를 포위했을 때 류수는 일이 었어 먼저 락양으로 돌아갔습니다. 


<후한서 잠팽전>의 기재에 의하면 떠날 때 류수는 잠팽에게 서성을 공략한 다음 즉시 사천을 들이치라는 편지를 남겼는데 거기에서 이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사람은 지쳤어도 만족을 모르매, 이제 롱이 평정될 것인즉 다시 촉을 바라보아라> 


성구 得陇望蜀, 득롱망촉은 바로 류수의 이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서 작은 것에 만족하지 않고 더 큰 것을 노리고 탐낸다는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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