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욕부중(忍辱負重) ◑

▶ 忍(참을 인) 辱(욕되게 할 욕) 負(질 부) 重(무거울 중)
  
▶ 치욕(恥辱)을 참아가며 중대한 책임(責任)을 짐이라는 뜻.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때 받는 치욕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
  
▶ 서기 221년, 촉나라의 유비는 조자룡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동원하여 오나라 정벌에 나섰다. 유비는 이 정벌에서 오나라에 빼앗겼던 전략 요충지인 형주(荊州; 지금의 호북성 강릉)을 빼앗고 돌아왔는데, 이는 관우를 죽인 것에 대한 복수였다.

오나라의 손권은 사람을 유비에게 보내 화친(和親)을 청하였지만, 유비는 이를 거절하였다. 이에 손권은 겨우 38세 된 육손을 대도독(大都督)에 임명하고, 5만 대군을 통솔하여 적을 상대하게 하였다.

이듬해 초, 유비의 군대는 수륙(水陸) 양면에서 공격을 하여, 직접 이릉(夷陵; 지금의 호북성 선창 동남쪽)에 이르러 장강(長江) 남쪽의 6백여 리 되는 산 위에 수십 개의 병영(兵營)을 설치하였다.

육손은, 촉나라 군대의 사기가 높고, 또 좋은 지형을 차지하고 진지(陣地)를 굳게 지키고 있으므로, 교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오나라의 한 부대가 이도(夷道; 지금의 호북성 선창 서북쪽)에서 촉나라 군대에게 포위되어, 육손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있는 터였다.

육손은 구원병을 보내고 싶지 않아서 부하들에게 말했다.
"이도는 지역이 견고하고 식량이 충분하므로, 나의 계략이 이루어진다면 그곳의 포위는 자연스럽게 풀릴 것이다."

육손의 휘하에 있던 한 장군은, 육손이 촉나라 군대를 공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도에 구원병을 보내지 않으려는 것을 보고, 그가 비겁하여 싸우기를 두려워하는 것으로 여기고 몹시 분개하였다. 휘하의 장수들 가운데에는 노장(老將)도 있었고, 손권의 친척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육손의 지휘에 따르지 하지 않았다.

이에 육손은 이 일을 상의하러 장수들을 소집하여 놓고, 손에 검을 쥔 채 이렇게 말했다.
"유비는 천하에 알려진 사람으로서 조조마저도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지금 그가 군대를 데리고 공격하여 왔으니, 그는 우리들의 강적이다. 원컨대, 모든 장수들은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한 마음 한뜻으로 적군들을 물리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기 바라오. 내 비록 서생(書生)이지만, 주상께서는 나를 대도독에 임명하여 군대를 통솔할 수 있게 해주셨으니, 나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할 것이오. 나라가 제군들로 하여금 나에게 복종하라는 조서를 내린 것은, 나에게서 취할 만한 부분이 있어서 능히 굴욕을 참고 중요한 임무를 맡을 수 있으리라는 것 때문이오[以僕有尺寸可稱, 能忍辱負重故也]. 군령(軍令)은 태산과 같으니, 이를 어기는 자는 군법에 따라 처리할 것이니, 여러분들은 위반하지 않도록 하시오."

육손의 말에 많은 장수들은 곧 진정되어, 다시는 그의 명령을 듣지 않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육손은 전투를 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하였는데, 이는 장장 7-8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촉나라 군대가 지쳤을 때, 육손은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놓아, 결국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다. 유비는 백제성(白帝城)으로 도망쳐와, 얼마 후에 죽고 말았다.
   

▶ 촉(蜀)나라의 장수 관우(關羽)가 형주(荊州) 의병을 이끌고 조조의 위(魏)나라를 북벌하였으나 뜻밖에도 동오(東吳) 대장군 여몽(呂蒙)의 계책으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었다. 여몽이 형주의 방비가 허술한 틈을 타 형주땅을 습격했던 것이다. 관우는 형주함락 소식에 황급히 회군했지만 막다른 길목에 이르렀음을 느끼고 도망쳤다. 얼마 못가 사병들은 그를 버리고 오나라에 투항했고 주변에는 십여 명의 군사밖에 남지 않았다. 관우는 결국 복병(伏兵)에 의해 생포되고 참수당하고 말았다. 이 소식이 촉나라 도읍 성도에 전해지자 유비는 대로하며 60만 대군을 이끌고 동오 정벌에 나섰다. 


한편 형주를 점령하는데 큰 공을 세운 동오의 여몽이 중병으로 죽게 되었다. 동오의 군주 손권(孫權)은 애통한 나머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주유와 노숙이 죽고 여몽마저 떠났으니 이제 나의 고충은 누구와 나눌고…" 

이때 모사 감택(闞澤)이 손권을 위로하며 말했다. 

"폐하, 우리에겐 육손(陸遜)이 있지 않습니까? 형주땅을 얻게 된데는 육손 장군의 공도 매우 큽니다. 현재 오나라의 상황을 보더라도 통수로서 육손보다 더 나은 적임자는 없다고 보입니다." 

그리하여 손권은 모사 감택의 천거를 받아들여 젊은 장수 육손을 대도독으로 삼고 유비의 침공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손권의 임명은 동오의 주진, 한당, 주연, 서성, 정봉 등 노장수들의 반발을 샀다. 육손이 나이로 보나 자격으로 보나 삼군을 통솔할만한 인물이 못된다는 생각에서였다. 통수가 된 육손은 군세가 왕성한 유비대군을 견제해 정면 교전은 뒤로하고 성만을 굳건히 지켰다. 노장수들은 육손이 촉나라군을 공격하지 않자 싸움을 두려워하는 겁쟁이라고 비난하며 정면 교전할 것을 수차례 제안했다. 그러나 육손은 추호도 흔들리지 않았다. 

급기야 장수 주진(周秦)이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으며 육손을 모욕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육손이 장수들을 불러 모으더니 허리에 찬 보검을 만지며 엄숙하게 말했다. 

"유비는 용병술에 능해 천하의 조조마저도 그를 두려워한다. 그런 유비가 직접 60만대군을 거느리고 우리와 맞서려 하는데 절대 망동해서는 안될 것이다. 내가 비록 삼군을 통솔함에 부족함이 있을지라도 여러 장군들께서는 대의를 생각해 본관에게 힘이 되어 주기 바란다." 

육손은 주위를 한번 훑어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이는 결코 나 자신의 공명과 이익만을 위해서가 아니다. 바로 이 나라의 대의를 위한 것. 군주께서 내게 중임을 맡기신 것은 바로 인욕부중(忍辱負重), 대의를 위해 굴욕을 견딜수 있는 나의 능력을 보셨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부디 군령을 엄수하길 바란다. 만약 군령을 어기고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내 반드시 그 자의 목을 치겠다. 알겠는가?" 

추상(秋霜)같은 육손의 명령에 장군들은 속으로는 내키지 않았지만 수개월 동안 육손을 따라 수비를 해야만 했다. 

그후 육손의 계략으로 동오는 유비대군을 전승하였고 그제야 장수들은 육손을 존경하고 그에게 복종하였다. 손권도 육손을 더욱 신임하여 그를 보국장군(輔國將軍)으로 봉하고 형주를 통솔하는 태수를 겸임하도록 했다. 

인욕부종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하였으며 "원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한때 받는 굴욕도 참을 줄 알아야 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출전] 삼국지(三國志) 권58 오서(吳書) 육손전(陸遜傳).
  
▶ [유사어] 와신상담(臥薪嘗膽)




한국 Korea Tour in Subkorea.com Road, Islands, Mountains, Tour Place, Beach, Festival, University, Golf Course, Stadium, History Place, Natural Monument, Paintings, Pottery, K-jokes, 중국 Chin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J-Cartoons, 일본 Japan Tour in Subkorea.com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E-jokes, 인도 Indi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UNESCO Heritage, Tour Place,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Pain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