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 47  작성일 : 2003-06-19      


◐분서갱유 焚書坑儒◑


▶ 중국 진시황이 민간의 서적을 불사르고 유생을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 진시황(秦始皇)이 모든 서적을 불태우고 많은 학자를 구덩이에 묻어 죽인 일.

▶ 기원전 221년, 제(齊)나라를 끝으로 6국을 평정하고 전국시대를 마감한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 때의 일이다.

시황제(始皇帝)는 천하를 통일하자 주(周)왕조 때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사상 처음으로 중앙 집권(中央執權)의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채택했다.

군현제를 실시한 지 8년이 되는 그 해(BC 213) 어느날,

시황제가 베푼 함양궁(咸陽宮)의 잔치에서 박사(博士)인 순우월 (淳于越)이 '현행 군현제도 하에서는 황실의 무궁한 안녕을 기하기가 어렵다'며 봉건제도 로 개체(改體)할 것을 진언했다.

시황제가 신하들에게 순우월의 의견에 대해 가부(可否)를 묻자, 군현제의 입안자(立案者)인 승상 이사(李斯)는 이렇게 대답했다.

"봉건시대에는 제후들 간에 침략전이 끊이지 않아 천하가 어지러웠으나 이제는 통일되어 안정을 찾았사오며, 법령도 모두 한 곳에서 발령(發令)되고 있나이다.

하오나 옛 책을 배운 사람들 중에는 그것만을 옳게 여겨 새로운 법령이나 정책에 대해서는 비난하는 선비 들이 있사옵니다. 하오니 차제에 그러한 선비들을 엄단하심과 아울러 백성들에게 꼭 필요 한 의약(醫藥) 복서(卜筮) 종수(種樹)에 관한 책과 진(秦)나라 역사책 외에는 모두 수거하여 불태워 없애 버리소서."

시황제가 이사(李斯)의 의견을 받아들임으로써 관청에 제출된 희귀한 책들이 속속 불태워 졌는데, 이 일을 가리켜 '분서(焚書)'라고 한다. 당시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이므로, 책은 모두 글자를 적은 댓조각을 엮어서 만든 죽간(竹簡) 이었다. 그래서 한번 잃으면 복원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이듬해(BC 212) 아방궁(阿房宮)이 완성되자 시황제는 불로장수의 신선술법 (神仙術法)을 닦는 방사(方士)들을 불러들여 후대했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노생(盧生)과 후생(侯生)을 신임했으나 두 방사(方士)는 많은 재물을 사취(詐取)한 뒤, 시황제의 부덕(不德)을 비난하며 종적을 감춰 버렸다.

시황제는 진노했다. 그런데 그 진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시중(市中) 의 염탐꾼을 감독하는 관리로부터 '폐하를 비방하는 선비들을 잡아 가두어 놓 았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시황제의 노여움은 극에 달했다. 엄중히 심문한 결과 연루자는 460명이나 되었다. 시황제는 자기를 비방한 460명의 유생(幼生)들을 모두 산 채로 각각 구덩이에 파묻어 죽였는데, 이 일을 가리켜 '갱유(坑儒)'라고 한다.

▶ 焚 불사를 분. 書 글 서. 坑 구덩이, 묻을 갱. 儒 선비 유.

▶ [출전] 史記 秦始皇紀 / 十八史略 秦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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