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노난범(衆怒難犯/众怒难犯) ◑ zhòng nù nán fàn

▶ 众 무리 중 怒 성낼 노 难 어려울 난 犯 범할 범

▶ 「뭇사람의 분노(憤怒)는 함부로 건드려서는 아니 됨」을 뜻한다. 무리의 분노는 거스르기 어렵다는 뜻. 군중의 분노를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群众的愤怒不可触犯。 not to stir up public resentment

▶ 춘추시대 위(衛)나라의 왕이 대부들과 함께 연회를 베풀었다. 그때 저사성자(渚師聲子)가 버선을 신은 채 앉아 있었다. 이를 본 위왕이 화를 내었다.

성자가 변명하여 말하기를, "지금 다리에 상처가 났습니다. 왕께서 보시기에 언짢으실 것입니다" 하였다. 그러자 왕은 더 한층 화를 내었다. "네 발을 베어 버리겠다" 성자가 놀라 허둥지둥 물러났다.

위왕은 이처럼 방자하고 걸핏하면 성을 잘 내었다. 그는 성격이 포악하고, 신하를 혹사시키며, 광대들로 하여금 대부에게 창피를 주기도 하는 패륜적 주군이었다. 더 이상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난폭한 행동에 참다 못한 고관들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왕의 시종 견자사(甄子士)가 이를 진압하려 하였다. 그러자 왕의 심복 권미(拳彌)가, "그대는 용사니까 전쟁을 하고 싶겠지만, 이번만은 어렵다. 우리 임금이 제멋대로 하고 싶은 짓을 많이 하였으니, 많은 사람의 분노를 거스르기가 어렵다[衆怒難犯]. 다른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하였다.

위왕은 할 수 없이 진(晉)나라로 망명하려 하였다. 권미가 이를 책망하면서, "제(齊)나라와 진나라는 우리를 노리고 있습니다. 당치 않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노(魯)나라로 가려 하자, 또 권미가 간하기를, "노나라는 안 됩니다. 월(越)나라가 좋을 듯합니다" 하였다.

왕이 할 수 없이 월나라로 가는데, 가는 도중 권미가 말하였다. "신이 먼저 가서 월나라의 동정을 살피겠습니다. 따라서 위나라 사람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므로, 보물은 먼저 보내는 것이 안전할 듯합니다" 하였다. 왕의 보물이 든 수레를 끌고 월나라로 가던 권미는, 도중에 수레를 돌려 자기 집으로 가버렸다. 그러면서 이것은 왕의 포악함에 대한 보답이라 하였다.

흔히 '대세를 따른다' 또는 '대세에 밀렸다' 하는 따위의 말을 쓴다. 모두 대중의 뜻이 그러하니 따른다는 뜻이다.

[출전]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 혜공(惠公) 10년.

▶ 공자 사(駟)의 아들인 공자 서(西)는 위지의 난동 소식을 듣고 달려나가 부친의 시신을 수습하였다. 공자 서가 집을 돌아와 보니 이미 많은 가신(家臣)들과 재산이 없어진 뒤였지만, 그는 남아있는 집안 사람들을 무장시켰다. 한편 위지에게 피살된 공자 국(國)의 아들인 공자 산(産)도 이 소식을 집안 단속을 하는 한편 싸울 만한 사람들과 열 일곱 대의 전차를 거느리고 북궁에 가있는 위지 무리들을 공격하였다. 

이에 공자 이(耳)의 아들인 공자 교(?)도 병력을 모아 공격에 가담하여, 결국 위지와 자사복 등을 죽였다. 난동에 적극 참여하였던 후진은 진(晉)나라로 도망하고, 위지의 아들, 사신과 그의 아들, 그리고 도여보 등은 송(宋)나라로 도망하였다.

일단 사태가 수습되자, 공자 공(孔)이 조정의 실권을 쥐고 나라 안의 대부들과 맹서를 맺는 맹서문을 작성하였는데, 이것은 지위의 고하(高下)에 따라 정치에 관여하거나 형벌의 경중(輕重)이 달라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당연히 많은 대부들과 관리들이 이를 불복하고 들자, 공자 공은 그들을 죽이려 하였다. 
  
이에 공자 산(産)이 그 맹약서를 불태워 없애 버리라고 하자, 공자 공은 그리 할 수 없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맹서문을 지어 나라를 안정시키려는 것인데, 여러 사람들이 노하였다 해서 이것을 불태운다면, 이는 많은 사람들이 정권을 쥐고 정치를 하는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나라가 다시 어려워지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공자 산이 반박하였다. 

"여러 사람들이 화를 낸 것은 거슬리기 어렵고, 개인만을 위한 욕심도 이루기 어렵습니다(衆怒難犯, 專欲難成). 이러한 두 가지의 어려움을 가지고서는 나라를 안정시킬 수 없으니, 그 맹세문을 태워 많은 사람들은 안정시키는 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잠시 후, 공자 공은 밖으로 나가 맹세문을 태워버렸다. 

[출전] 『春秋左氏傳』 襄公 10年條 

▶ 春秋时期,郑国发生叛乱,大夫尉止杀死大夫子驷,子孔与子产一起平定叛乱,杀死尉止。子孔掌权后,制作盟书,规定官员各守其位,听从他的命令。子产劝阻他,希望他不要犯了众怒,否则国家就不会安宁。子孔当众烧掉盟书

[출전] 先秦 左丘明《左传 襄公十年》:“众怒难犯,专欲难成,合二难以安国,危之道也。”

[동의어] 중노난임(众怒难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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