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병귀신속(兵貴神速/兵贵神速) ◑ bīng guì shén sù


▶ 군사 병(兵), 귀할 귀(貴), 귀신 신(神), 빠를 속(速)


▶ 병사를 다룸에 있어서는 신속함이 제일이라는 뜻. 병법에 나와있는 구절로서, 제갈량, 조조등이 말하곤 했다. 군사는 신속성이 첫째다. 군사를 지휘함에는 신속을 위주로 해야 한다. 贵:可贵;神速:特别迅速。用兵以行动特别迅速为贵。 Speed is precious in war.


▶ 동한(東漢) 말년 환관들이 득세하니 조정은 문란하고 천하가 혼란에 빠졌다. 그 무렵 난세를 평정하기 위한 영웅호걸들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명문세가인 원소(袁紹)도 있었다. 원소는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고자 기(冀), 청(靑), 유(幽), 병(幷) 4개 주(오늘의 산동, 하북, 산서 등 지역)을 장악하고 북방의 최고 강자로 자리잡았다. 북부에는 이민족들이 집거해 살았는데 그중 오환족(烏丸族)의 우두머리인 답돈의 세력이 가장 강대했다. 외부 세력의 침범을 막기 위해 원소는 화친을 빌미로 변방의 이민족들을 하나 둘 포섭하면서 몸집을 키워나갔다. 


기원 200년, 원소는 10만 대군을 이끌고 관도에서 조조군과 대치하였으나 조조의 용병술과 지략에 패하였다. 역사 문서에는 당시 희생된 원소군의 시체가 관도 땅을 뒤덮고 피가 강을 이루었으며 자욱한 연기가 오래토록 가시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참담한 패배를 안고 기주로 돌아온 원소는 화병으로 결국 숨을 거두었다. 


원소가 죽자 막내 아들 원상이 기주를 장악하며 원소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그때로부터 기주 땅을 차지하기 위한 원상(袁尙)과 원소의 장남 원담(袁潭) 두 형제간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기원 203년, 조조가 북상해 원담을 공격해오자 두 형제는 화해하고 함께 조조와 맞섰는데 약 반년에 걸친 대결 끝에 조조군은 퇴각하였다. 그러나 얼마 못가 형제는 다시 분열되었다. 기원 204년 원담은 안평(安平), 발해(勃海), 하간(河間) 등 지역을 점령했고 원상은 더이상 머물 곳이 없게 되자 사촌 원희(袁熙)가 있는 곳으로 망명했다. 조조는 원상의 부재를 틈타 재차 기주를 공격했고 원담은 결국 조조군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때 조조와 원담에게 패하여 도망친 원상을 받아준 원희는 부하 장수인 초촉(焦觸), 장남(張南)의 배반으로 땅을 조조군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둘은 북방 오환족의 수장 답돈에게로 망명하는 신세가 되었다. 


답돈은 원소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다. 원소를 생각해서 원씨 형제에게 강산을 돌려주리라 마음 먹은 답돈은 조조가 장악하고 있는 북방 지역을 거듭 침공하며 반란을 일으켜 조조의 심기를 건드렸다. 더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조조는 우환거리를 제거하고자 오환 원정을 감행했다. 

 

기원 207 원정에 나선 조조군은 한달 남짓 지나서야 역현(易縣)에 도달했다. 이때 모사 곽가(郭嘉)가 조조에게 한 가지 계책을 진언했다. 


"병귀신속(兵貴神速), 병사는 신속을 요합니다. 지금 천리 밖에 있는 적을 습격하려는데 치중(輜重)이 많아 그곳까지 빨리 도착하기가 어려울 듯 싶습니다. 혹 적들이 알기라도 하면 필히 방비를 튼튼히 하여 우리를 기다릴 것입니다. 치중을 이곳에 남기고 정예기병만 모아 야간 행군으로 적들의 의표를 찔러야 합니다." 


조조는 곧바로 곽가의 건의를 받아들여 수천 명의 정예기병을 이끌고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북쪽으로 진군해 답돈이 있는 유성(柳城: 오늘의 요녕성 서남)에 이르렀다. 


유성에서 백여리 떨어진 곳 백랑산에서 조조군은 답돈의 군사들과 조우하였다. 그러나 전열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답돈은 조조의 불의의 습격에 순식간에 붕괴되고 혼전 중에 생포당하여 참수되었다. 


원씨 형제는 또다시 공손강이 있는 요동으로 도망갔다. 조조는 더이상 원상 형제를 추격하지 않고 군사를 물렸다. 이에 한 신하가 조조에게 원씨의 형제를 살려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조조가 대답했다. 


"놈들은 서로 싸우다 죽게 될 것이야." 


과연 얼마 못가 원희와 원상은 공손강에게 살해되었다. 


병귀신속(兵貴神速)은 "용병술(用兵術)은 적이 대응하는 틈을 주지 않도록 신속하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출전] 삼국지(三國誌) 위서•곽가전에서


郭嘉,字奉孝,颍川阳翟(今河南禹县)人。他足智多谋,受到曹操的信任和重用。
  
曹操打败了据有冀、青、幽、并四州的袁绍,杀了袁绍长子袁谭,袁绍的另外两个儿子袁尚、袁熙逃走,投奔辽河流域的乌丸族首领蹋顿单于。蹋顿乘机侵扰汉朝边境,破坏边境地区人民的正常生产和生活。曹操有心要去征讨袁尚及蹋顿,侣有些官员担心远征之后,荆州的刘表会乘机派刘备来袭击曹操的后方。
  
郭嘉分析了当时的形势,对曹操说:“你现在威镇天下,但乌丸仗着地处在边远地区,必然不会防备。进行突然袭击,一定能消灭他们。如果延误时机,让袁尚、袁熙喘过气来,重新收集残部,乌丸各族响应,蹋顿有了野心,只怕冀州、青州又要不属于我们了。刘表是个空谈家,知道自己才能不及刘备,不会重用刘备,刘备不受重用,也不肯多为刘表出力。所以你只管放心远征乌丸,不会有后顾之忧的。”
  
曹操于是率领军队出征。到达易县(今属河北)后,郭嘉又对曹操说:“用兵贵在神速。现在到千里之外的地方作战,军用物资多,行军速度就慢,如果乌丸人知道我军的情况,就会有所准备。不如留下笨重的军械物资,部队轻装,以加倍的速度前进,乘敌人没有防备发起进攻,那就能大获全胜。”
  
曹操依郭嘉的计策办,部队快速行军,直达蹋顿单于驻地。乌丸人惊慌失措地应战,一败涂地。蹋顿被杀,袁尚、袁熙逃往辽东后被太守孙康所杀。

[출전] 삼국지(三國誌)에서 晋 陈寿《三国志 魏志 郭嘉传》:“太祖将征袁尚……嘉表曰:‘兵贵神速。今千里袭人,辎重多,难以趣利,且彼闻之,必为备;不如留辎重,轻兵兼道以出,掩其不意。’”

[동의어] 속전속결(速战速决), 사불의지(事不宜迟)

[반의어] 유예부결(犹豫不决 우유부단), 우유과단(优柔寡断)


삼국지관련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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