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 43  작성일 : 2003-06-17 

◐논공행상 論功行賞◑

▶ 공적이 많고 적음에 따라 알맞은 상을 내림

▶ 이성계(李成桂)가 조선을 세운 데에는 개국공신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래서 후(後)에 그는 공적(功績)의 많고 적음에 따라 깍듯이 예우해 주었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인 것이다.

중국의 경우 대표적인 논공행상(論功行賞)하면 주(周)나라를 꼽을 수있다.

낚시꾼 출신인 강태공(태공망 姜太公)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으므로 무왕(武王)은 그를 제(齊)에 봉했다. 또 많은 공신과 왕족을 제후(諸侯)에 봉함으로써 주는 봉건제도(封建制度)를 실시하게 된다.

도움을 준 이상 그 대가(對價)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응분의 보상이 없다면 실망·분노가 생길 수도 있다.

항우(項羽)는 진(秦)을 멸망시킨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이 공평하지 못했다. 총 18왕(王)을 봉했지만 불만을 품지 않은 자(者)가 없었다.

그중 가장 불만이 많았던 자(者)가 유방(劉邦)이었다. 결국 항우(項羽)를 타도하고 한(漢)을 세우니 잘못된 논공행상(論功行賞)으로 왕조가 바뀐 예다.

또 당태종(唐太宗·李世民)은 아버지 이연(李淵·唐高祖)을 도와 수(隋)를 무너뜨리고 당(唐)을 세우는데 가장 혁혁한 공(功)을 세운 이다.

하지만 둘째 아들이었으므로 고조(高祖)는 왕위를 큰 아들 이건성(李建成)에게 물려 주고자 했다. 극도의 불만을 느낀 그는 마침내 변을 일으켜(현무문의 변 玄武門의 變) 형을 죽이고 아버지를 협박해 왕위를 물려 받았다.

논공행상(論功行賞)은 공정·합당해야 함을 일깨워 준다.


▶ 공을 이룬 것에 대하여 논한 뒤에 그에 알맞은 상을 내린다는 뜻.

손권이 유표 토벌에 실패한 후에 그러했다 한다. 십상시도 황건적 토벌에 공을 세운 자들을 추려낸다면서 이 말을 인용하였다.

삼국시대의 魏(위)나라 文帝(문제) 曹丕(조비)는 병으로 죽기 며칠 전에 曹叡(조예)를 황태자로 정했다. 이 자리에서 문제는 장군이자 일가가 되는 曹眞(조진)과 曹休(조휴), 유교와 법에 정통한 陳群(진군), 원로인 司馬懿(사마의) 등 네 사람에게 뒷일을 간곡히 부탁했다.

문제의 죽음은 과연 吳(오)나라와 蜀(촉)나라에 위나라를 공격하는 기회를 주었다. 조예가 明帝(명제)로 등극한지 3개월 뒤 오나라의 孫權(손권)은 스스로 군대를 이끌고 위나라의 江夏郡(강하군)을 공격했다.

태수인 문빙이 공격을 막았다. 조정에서는 응원군을 보내 문빙을 도우려고 했다. 그러나 명제는 조정 중신들의 건의를 듣지 않고 이렇게 말했다.

"오나라는 전통적으로 水戰(수전)에 강하다. 그런데도 그들이 배를 버리고 육상의 싸움에 도전한 것은 우리쪽의 무방비를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 무리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얼마 못가서 지칠 것이다. 지금 문빙의 군대가 잘 버티고 있으니 攻守(공수)의 세력이 뒤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과연 얼마 뒤 손권은 후퇴했다. 오나라 장군 제갈근과 장패도 위나라를 공격해왔지만 대장군 사마의가 善戰(선전), 이들을 격파하고 장패를 목벴다. 용장 조휴도 오나라의 別動隊(별동대)를 격파했다.

삼국지는 싸움이 끝난 뒤 위나라 장병들의 「공에 따라 나누어준 포상은 그 공에 합당하게 각각에 주어졌다(論功行賞各有差․논공행상각유차)」라고 적고 있다.

▶ 삼국지(三國誌) 관련  

▶ 고담(顧譚)은, 삼국시대 오나라의 명상 고옹(顧雍)의 손자로, 어릴 때부터 수재로 알려져 일을 척척 잘 처리했고, 더우기 사물을 보는 방법이 독창적이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았다. 그는 꾸밈없는 성품으로 솔직한 생각을 말했다. 군주 손권(孫權)에게도 생각을 말한 일이 있다.

손권은 식사 중이었지만, 그 말을 듣고 관심을 가져, 그 후에 때때로 불러서 이야기를 했다. 어느 때, 노나라 왕 손패가, 같은 어머니 형제인 오나라의 태자 손화와 대우를 같이 받고 싶다고 손권에게 요구해 왔다.  

고담은 역사상의 형제의 싸움을 인용해서 손패의 요구를 물 리치라고 손권에게 진언했다. 그 이후, 손패는 고담을 미워했다. 그 때, 같은 시기에 고담과 교제하려다가 거절당한 사람 중에, 위장군 전종의 아들 전기가 있었다. 손패와 전기는 손을 잡고 고담의 실각을 꾀했다.

기원 241년, 손권은 전종(全琮)을 대장으로 삼아 위의 회남으로 출병하여, 위의 장수 왕릉과 작파(芍파)에서 격전했지만, 오군은 대패하여 중랑장 진광 등 십여 명의 장군이 전사했다. 당시, 고담의 동생 고승과 장휴 두 장수는 수춘에서 작전 중이었다. 작파의 패전을 듣고 곧 구원을 떠나 위의 왕릉군을 저지했다. 전종의 두 사람의 조카 전세와 전서도 오군의 부장으로 종군했지만, 위군의 추격이 저지당했다고 알고 공격으로 옮겼다. 위군은 그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흩어져 모두 패주하였다.  

전투가 끝나자 오의 수도 건업에서 논공행상이 행해졌다. 많은 사람이 위를 저지한 공을 세웠고 반격한 공도 있었기 때문에, 손권은 고승과 장휴에게 정장군(正將軍), 전제와 전서에 게 편장군(偏將軍)의 칭호를 수여했다. 그래서, 전종·전기 부자는 고담형제에게 더욱 원한이 깊어졌다.

그래서, 손패를 통해 손권에게 진언했다. "고승과 장휴는 전군(典軍) 진순과 친했기 때문에 공을 거짓 전달하여 주군을 속였습니다." 손권은 조사를 하지 않고, 이 말을 믿어 장휴를 포박하고, 고승의 처분은 보류하였다. 그리고, 뒷날 고담에게 사죄시키려 했다.

어느 날, 고담에게 말했다.
"동생을 어떻게 할까? 담은 사죄할까?" 오히려 나쁜 말을 믿은 손권을 책망했다. 손권은 화가 나서 형제를 지방으로 좌천시켰다. 고담은 비분의 정을 <신언(新言)>20편에 이어 썼지 만, 2년 후 지방에서 병사했다.

[출전]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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