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강인의(差强人意) ◑
 
▶ 어긋날 차(差), 굳셀 강(强), 사람 인(人), 뜻 의(意)
 
▶ 대체(大體)로 사람의 마음을 만족(滿足)하게 함을 뜻한다.
 
▶ 오한(吳漢)은 자가 자안(子顔)이고 남양(南陽) 완현(宛县) (지금의 하남성 남양시) 사람이다. 집안이 어려워 정장(亭長)직을 맡으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왕망(王莽) 말기에 수배를 받고 우양(渔阳)에 도망간 그는 말을 팔아 생업을 꾸려갔으며 하북(河北) 경내를 드나들며 연나라와 조나라의 많은 의기로운 영웅호걸과 친교를 맺었다. 

유수(刘秀)가 반란을 일으켜 명성을 떨친 후 오한은 북주(北州) 태수(太守) 팽방(彭庞)에게 유수에 귀순하라 권했다. 유수가 오한을 편장군(偏将军)으로 봉한 뒤 그는 병사를 거느리고 왕랑(王郎)을 물리치고 한단(邯郸)을 점령한 공으로 건책후(建策侯)로 봉받았다. 

유수는 유주(幽州)의 강군과 협동작전 할 타산이라 누가 이 중임을 맡을 수 있을지 등우(邓禹)한테 물었더니 그는 오한을 추천했다. 오한은 대장군으로 임명받고 군사를 이동배치할 수 있는 부절을 가지고 유주에 도착했다. 허나 유주의 주장인 묘증(苗曾)은 갱시제(更始帝)의 명을 따르는 자라 비밀리에 소속 군현의 부대에게 오한의 동원에 거역하라고 명을 내렸다. 한편 오한은 이미 정찰을 통해 묘증의 의도를 알아차렸지만 내색을 하지 않고 스무몇명의 기마병만 데리고 무종(无终)에 가서 묘증을 만났다. 묘증은 오한이 아무런 방비도 없는 줄 알고 성밖으로 마중나왔다. 오한은 묘증이 방심한 틈을 타서 그를 죽이고 그의 부대를 자기 휘하로 재편성시켰으며 유주의 병마를 동원시켜 남진하여 유수와 합치기로 했다. 

광무제(光武帝) 4년, 격현(鬲县)(지금의 산동(山东)성 덕주(德州))의 백성들이 지방관리를 몰아내고 성곽을 강점하며 반란을 시도했다. 마침 오한이 진준(陈俊), 왕량(王梁)등 장군들을 거느리고 동군(东郡), 청하(清河), 오원(五原)일대를 평정할 때였다. 뭇 장군들은 격현을 진격할 것을 주장했지만 오한은 이에 호되게 반대하며 말했다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은 지방관리들의 탐욕이 빚어낸 일이니라. 감히 격현에 파병한 자는 반드시 죽일것이다." 

한편 오한은 격현의 지방관리를 체포하라는 명을 내렸고 다른 한편으로는 봉기를 일으킨 자에게 사죄했더니 그들은 곧 성문을 열고 귀순하였다. 다른 장군들은 오한의 뛰어난 용병술에 탄복을 금치 못하면서 "싸우지 않고 성지를 수복할 수 있다니 이것은 그 누구도 비할 수 없네."라고 찬양하였다. 

건무시기(建武) 11년, 오한은 정남대장군(征南大将军) 잠팽(岑彭)과 같이 공손술(公孙述)을 토벌하러 사천(四川)으로 진군했다. 잠팽이 암살을 당한 후 오한이 그의 부대를 친히 지휘하며 승세를 타고 성도(成都)까지 접근했다. 오한은 몸소2만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강북(江北)에 주둔했고 부장군 유상(刘尚)에게 만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강남(江南)에 주둔하라 명하였다. 

오한의 이러한 군사배치를 알게 된 유수는 놀란 나머지 조서를 내렸다. 

"내가 자네더러 신중하게 처사하라 하지 않았는가? 자네가 적군을 눈앞에 두고 고집을 부리면 고군분투하는 것과 다름없고 또한 병력을 분산시켜 공순술이 유상을 공격한 동시에 파병하여 자네의 증원부대를 저격한다면 유상이 전패하는 즉시 자네도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네. 봉변을 당하기 전에 어서 합병시키야 하네." 

하지만 유수의 조서가 도착하기 전에 공손술은 이미 대군을 파견하여 공격을 개시하였다. 오한은 패전하여 주둔지로 돌아왔고 유수도 포위당하고 말았다. 오한은 병사한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유수와 합쳐야 하니라. 이렇게 양쪽에서 포위당하다가는 죽기 마련이네." 

오한은 삼일 동안 병영을 봉쇄하고 영내에 수많은 깃발을 꽂아 밤만 되면 급행군하여 유수와 합병했다. 강북에 주둔하고 있는 적군이 오리무중에 빠져있을 때 강남은 이미 오한과 유상의 대군에 패했고 그제야 오한은 위험한 고비를 넘었다. 

그후 오한과 공손술은 성도에서 여덟회나 격전을 했으나 번마다 오한의 완승으로 끝났다. 공손술은 끝내 패전하고 오한에게 목숨까지 잃었다. 오한은 훈공을 세우고 영지로 돌아왔다. 

오한은 말수가 적었다. 유수를 수행하여 출병할 때, 일단 전투가 불리한 상황에 다달으면 대부분의 장군들은 몹시 낙담하여 항적할 대책을 내지 못해 유수의 고민을 풀어주지 못할 때마다 오한만이 태연자약하며 전혀 급한 내색을 하지 않아 다른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했다. 유수는 사람을 보내 암암리에 오한의 행적을 관찰한적 있다. 그는 수하더러 공격에 사용할 무기를 점검하게 하고 훈련을 강화하며 고도의 경계를 중요시하며 또한 매일 부지런히 시찰했다. 유수는 아주 기뻐하며 싸움터에서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처한 오한을 본보기로 삼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유수의 이런 특질이야말로 진정한 능력있는 장군이고 전투에서 필승의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오한을 찬양하며 말했다 "그래도 오한이 사람의 마음을 만족하게 해주는구나(吳公还算差疆人意)…" 

강(强)와 강(疆)은 통용된 한자이기 때문에 훗날 사람들은 차강인의(差强人意)라고도 쓴다.
 
[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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