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만성 大器晩成 daegi.jpg

▶ 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는 뜻.
①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짐의 비유.
② 만년(晩年)이 되어 성공하는 일.
③ 과거에 낙방한 선비를 위로하여 이르던 말.

큰 그릇은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인 뒤에라야 완성된다는 뜻으로, 큰일이나 큰 인물은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고 끝에 이루어 진다는 뜻이다.

▶ ⑴ 三國志 '魏志'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삼국시대, 위(魏)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풍채 좋은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사촌 동생인 최림(崔林)은 외모가 시원치 않아서인지 출세를 못하고 일가 친척들로 부터도 멸시를 당했다.

하지만 최염만은 최림의 인물됨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큰 종(鐘)이나 솥은 그렇게 쉽사리 만들어지는 게 아니네. 그와 마찬가지로 큰 인물도 대성(大成)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너도 그처럼 '大器晩成' 하는 그런 형이야. 두고 보라구. 틀림없이 큰 인물이 될 테니……."

과연 그 말대로 최림은 마침내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삼공(三公)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

▶ ⑵ 後漢書에 보면,

후한을 세운 광무제(光武帝 : 25-57)때 마원(馬援)이란 명장이 있었다.

그는 변방의 관리로 출발하여 복파장군(伏波將軍)까지 된 인물이데, 복파장군 이란 전한(前漢) 이후 큰 공을 세운 장군에게만 주어지는 칭호이다. 마원이 생전 처음 지방관리가 되어 부임을 앞두고 형인 최황(崔況)을 찾아가자 그는 이렇게 충고했다.

"너는 이른바 '大器晩成'형이야. 솜씨 좋은 대목이 산에서 막 베어 낸 거친 원목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좋은 제목으로 다듬어 내듯이 너도 네 재능을 살려 꾸준히 노력하면 큰 인물이 될 것이다. 부디 자중(自重)하라."

▶ ⑶ 老子에도,

'큰 네모(四角)는 모서리가 없으며 큰그릇은 늦게 만들어진다(大方無隔 大器晩成)는 말이 있다. 큰 인물은 짧은 시간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大 클 대. 器 그릇 기. 晩 늦을 만. 成 이룰 성.

[동의어] 대기난성(大器難成)

[유사어]대재만성(大才晩成)

[출전] 삼국지(三國志) 魏志 / 後漢書 / 老子


노자(老子) 41장에서 나온 말이다.

노자는 이 장에서 옛글을 인용하여 도(道)를 설명하였는데 "매우 밝은 도는 어둡게 보이고,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는 도는 뒤로 물러나는 것 같다. 가장 평탄한 도는 굽은 것 같고, 가장 높은 덕은 낮은 것 같다. 몹시 흰 빛은 검은 것 같고, 매우 넓은 덕은 한쪽이 이지러진 것 같다. 아주 건실한 도는 빈약한 것 같고, 매우 질박한 도는 어리석은 것 같다.”라고 말하였다.


또 "그러므로 아주 큰 사각형은 귀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大器晩成). 아주 큰 소리는 들을 수 없고(大音希聲), 아주 큰 형상은 모양이 없다(大象無形). 왜냐하면 도는 항상 사물의 배후에 숨어 있는 것이므로 무엇이라고 긍정할 수도, 또 부정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 삼국시대 위(魏) 나라에 최염(崔琰)이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다. 동한(東漢) 말년 최염은 하북성 원소(袁紹)의 진영에서 문객(門客)으로 있었다. 당시 원소군은 규율이 무척 산만했는데 지방을 공략할 때마다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훔친 뒤 시체를 황야에 버리고 달아났다. 이에 백성들이 몹시 분노했다. 

 

이 광경을 본 최염이 더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지령을 내릴 것을 원소에게 간하였다. 그러자 원소는 문제를 제기한 최염을 기도위(騎都尉)직에 봉했다. 


얼마후 원소가 "관도대전"에서 조조에게 참패하고 최염은 조조에게 포로로 잡혔다. 조조는 최염의 재능을 한눈에 알아보고 그에게 관직을 맡겼다. 당시 북쪽의 흉노족들은 수차례 침략했지만 그때마다 조조군으로부터 큰 타격을 입고 날이 갈수록 세력이 약화되자 결국 사신을 파견하여 조조에게 공물을 바치며 평화회담을 요구했다. 


"위왕(魏王)은 무예가 뛰어나 전쟁에서 번마다 백전백승을 이루어냈다고 들었습니다. 그 풍채를 한번 뵙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흉노 사신이 간곡히 부탁하였다. 


부하로부터 보고를 들은 조조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흉노사신을 만나주기로 했다. 


흉노사신과 만날 시간이 가까워져 오자 조조는 불안해했다. 키가 작아 자칫 외국 사신 앞에서 위엄없게 보이지 않을까 우려되었던 것이다. 결국 조조는 최염을 위왕의 신분으로 내세우고 자신은 검을 찬 근위병으로 분장하여 옆에 조용히 서 있기로 했다. 


회견이 끝난 뒤 조조는 흉노 사신에게 사람을 파견해 자기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흉노사신이 말했다. 


"위왕은 아름다운 풍채에 도량이 넓은 분 같습니다. 옆에 검을 차고 호위하던 병사 역시 쳐다만 봐도 두려울 만큼 위엄이 있어 보였습니다. 꼭 황제의 상(相)을 지닌 것 같습니다." 


흉노사신의 평가를 전해 들은 조조는 그의 안목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실제로 최염은 외모가 출중했을 뿐만 아니라 사물을 분석하고 인품과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도 뛰어났다. 


최염에게는 최림(崔林)이라고 부르는 사촌동생이 있었다. 최림은 평소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 친지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외모도 빈약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출세가 늦어지자 최림은 친척들로부터 종종 멸시를 당했다. 그러나 최염만은 그의 재능을 꿰뚫어 보고 이렇게 말했다. 


"한 사람의 미래를 지금 당장 가늠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성공이 늦게 찾아올 수도, 빨리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저는 최림에 비해 몇년 일찍 관직에 올랐을 뿐 특별히 잘난 것 없습니다. 큰 솥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물도 성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입니다. 최림은 대기만성(大器晩成)할 인물임이 틀림없습니다." 


과연 얼마 지나지 않아 최림의 재능을 발견한 조조가 그를 주박(主薄)직에 명했고 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로 봉했다. 문제(文帝)시기에 이르러 최림은 사공까지 역임하였고 안양후로 책봉되어 위나라에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가 되었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三國志)>, <위지•최염전(魏志•崔琰傳)>.에 기록되어 있다. 사자성어 "대기만성(大器晩成)"은 '큰 그릇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큰 인물이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함을 비유하는 말이다. 오늘날에는 나이 들어 성공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흔히 사용되며 오랜시간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을 위로할 때에도 자주 쓰인다. 


▶ "大器"는 큰 기물이라는 말로서 큰 인재를 비유한다.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 
 
동한말년, 최염(崔琰)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하북(河北)성 원소 (袁绍)의 군대에서 문객으로 있었다. 당시 원소의 군대는 기율이 매우 산만했는데 그들은 매개 지방을 점령할 때마다 무덤을 파헤쳐 보물을 빼앗아가곤 했으며, 시체의 뼈는 여기저기에 마구 버리고 달아났기에 백성들의 분노를 샀다. 

최염은 이 광경을 보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금지령을 내릴 것을 원소에게 권했다. 원소는 제때에 문제를 제기한 최염에게 기도위(骑都尉)직에 봉했다. 

"관도대전"에서 원소는 조조에게 참패를 당했다. 따라서 최염은 조조에게 포로로 잡히게 되었다. 조조는 최염이 유능한 인재임을 알고 그를 옆에 남겨두어 관직을 맡겼다. 

그때 북쪽의 흉노들은 몇번이나 침략을 시도했으나 번마다 조조의 군대로부터 큰 타격을 입었으며, 세력은 날이 갈수록 약화되었다. 그러자 흉노들은 사신을 파견해 조조에게 공물을 바치며 평화회담을 요구했다. 

흉노의 사신은 위왕(魏王)이 무예가 뛰어나고 백전백승을 이루어내는 사람이라 경모하고 있으니 한번 만나뵙기를 청했다. 

부하로부터 보고를 들은 조조는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사람을 시켜 흉노사신을 만날 시간을 정하게 했다. 

흉노사신과의 회견을 앞두고 조조는 외국사신앞에서 키가 작아 위엄있게 보이지 않을까 우려되어 최염을 위왕의 신분으로 내세워 흉노의 사신을 만나게 하고 자신은 근위병으로 분장하여 옆에 서있기로 했다. 

회견이 끝난뒤 조조는 흉노의 사신에게 사람을 파견해 자기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흉노사신은 "위왕은 멋지고 품위가 있으며 도량이 있어 보였습니다. 옆에 있는 근위병은 보기만 해도 두려운 인상을 줄만큼 위엄이 있어 보였습니다. 꼭 황제의 상(相)을 지닌 것 같았습니다." 

흉노사신의 평가를 전해들은 조조는 흉노사신의 안목이 보통이 아님을 느꼈다. 

실제로 최염은 용모가 뛰어났을 뿐만아니라 사물에 대한 분석능력도 대단했고 사람의 인품과 재능을 알아보는 안목 역시 훌륭했다. 

최염에게는 최림(崔林)이라고 부르는 사촌동생이 있었다. 그는 평소에 말수가 적고 성격이 비교적 내성적인편이라 친지나 벗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으며 어른이 된 이후에도 별로 크게 출세하지 못했다. 

최씨가문에서는 최림을 떠올릴 때마다 그는 앞으로도 크게 성공하지 못할 것이며, 최염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고 평가를 했다. 

하지만 최염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친지나 벗들에게 자신은 다만 최림에 비해 몇년 일찍 관직에 올랐을 뿐이며, 최림은 앞으로 꼭 큰 일을 해낼 사람이라고 주견을 밝혔다. 

최염의 예견은 과연 틀리지 않았다. 최림은 어릴적부터 열심히 글을 읽었고 사물의 변화에 중시를 돌리며 많은 지식을 쌓아온 유능한 인재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최림의 재능을 발견해낸 조조가 최림을 주박(主薄)직에 명했고, 후에는 어사대부(御史大夫)에 명했다. 

문제(文帝)시기에 이르러 최림은 안양후(安阳侯)로 책봉되어 위나라에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신하가 되었다. 

성어 "大器晚成"은 "로자(老子)"에서 최초로 사용되었다. 이 이야기는 "3국지-위지-최염전(三国志-魏志-崔琰传)"에서 유래되었으며,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성공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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