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심치복(推心置腹) ◑ tuī xīn zhì fù

▶ 밀 추(推), 마음 심(心), 둘 치(置), 배 복(腹)

▶ 남을 믿고 진심과 성의를 다해 상대방을 대한다는 의미. 믿음으로 흉금을 털어놓다. 속을 털어놓다.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다. 성심성의껏 대하다. 把赤诚的心交给人家。比喻真诚待人。推:拿出;置:安放。 take one's heart and place it in other's breast
 
▶ 동한(東漢) 광무제는 자가 문숙(文淑), 이름이 유수(劉秀)이며 한(漢)고조 유방(劉邦)의 9세손이다. 유수는 아홉살에 부모를 여의고 숙부인 유양의 손에서 자랐다. <상서(尙書)>를 정통했으나 정작 학문보다는 농작물에 관심이 많았던 유수는 진중하고 고지식한 성격의 소유자로 평소 일상에서도 법규를 어기는 일이 별로 없었다. 반대로 그의 아우 유백승(劉伯升)은 성격이 호방하고 용감하여 관내외의 영웅호걸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서기 5년에 왕망(王莽)이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신나라를 세웠다. 서기 19년이 되던 해에 수재, 한재, 황재(메뚜기로 인한 곡식재해)가 잇달아 중원 일대를 덮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그중 자연재해와 세역의 부담이 가장 컸던 남양 일대에서는 왕망의 정권에 반대하는 농민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이 기회를 틈타 유수 형제는 봉기에 가담하여 왕망 정권에 반기를 든 농민들을 격려하였다. 서기 23년, 봉기군에 의해 유현(柳玄)이 한나라 왕으로 추대되고 연호를 경시(更始)로 하였다. 대상편장군(大常偏將軍)에 봉해진 유수는 8천여 명의 용사들을 이끌고 곤양, 정릉, 언성 등 지역 정벌에 나서게 되었다. 

이 소식은 왕망의 분노를 자아냈다. 왕망은 즉각 대사공 왕읍(王邑), 대사마 왕심(王尋)에게 유수 군을 물리치고 곤양을 수복하라고 명령하였는데 그때 동원된 병사만 무려 백만명에 달하였다. 펄럭이는 깃발이 천리를 뒤덮은 가운데 호랑이, 표범, 코끼리 등 맹수를 탄 맹장들을 앞세워 곤양(昆陽)으로 진군하는 대군의 모습은 그야말로 살기등등했다. 

이에 비해 유수의 군사는 고작 천명에 불과했으니 왕망의 기세에 당황한 유수가 즉각 곤양에서의 후퇴를 명령했다. 이때 한 수하 장군이 수백 리를 뒤덮은 적군의 부대가 성북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해왔다. 겁에 질린 장군들은 유수에게 서둘러 계책을 세워 달라고 요구했고 급기야 유수가 직접 13기의 기병들을 이끌고 언현, 정릉으로 가서 지원군을 소집했다. 그곳에서 정예군사 천여 명을 얻은 유수는 곧바로 곤양에서 오육리 떨어진 왕망의 군영으로 가서 선공격을 가했다. 왕망이 천명의 군사를 내보내어 막아 보았지만 말에 박차를 가하며 무섭게 달려드는 유수군의 기습을 막아내지 못하였다. 

한편 유수의 형 유백승은 이미 완성(宛城)을 수복하였다. 유백승은 유수에게 지원군을 보낸다는 내용의 거짓 서신을 꾸며 왕망의 손에 흘러들어 가도록 했다. 유백승의 계책에 빠져든 왕망이 불안에 떨고 있을 때 적군의 군심이 혼란한 틈을 타 유수는 적군의 군령 중심부를 기습하였다. 무방비 상태였던 군령은 서로 밟고 도망치는 병사들로 삽시에 초토화되었고 유수군의 전략에 왕망의 주력 부대는 전멸되고 말았다. 곤양전투에서 유수는 적은 병력으로 백만대군을 소탕하여 역사에 그 이름을 날렸다. 얼마 지나 유백승은 경시왕에게 살해되었지만 유수는 전쟁에서의 공을 인정받아 소왕(蕭王)에 봉해졌다. 천하는 여전히 혼란했고 유수는 천하를 평정하고자 계속 정벌에 나섰다. 서기 24년, 유수는 하북에서 일어난 농민봉기를 격파하고 그 잔여 병력을 흡수하여 재편성하였는데 과거에 유수와 적수였던 장군들에게도 원래의 관직을 돌려주었다. 

유수에게 살해될까 두려움에 떨던 장군들은 유수가 조금도 경계하지 않자 "성의껏 사람을 대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니(추심치복) 어찌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충성을 맹세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된 사자성어 "추심치복"은 남을 믿고 진심과 성의를 다해 상대방을 대한다는 의미이다. 
 
▶ 서한(西漢) 말기, 왕망(王莽)이 정권을 찬탈하자 천하의 많은 사람들은 이를 반대하며 군사를 일으켰다. 

서기 23년, 녹림군(綠林軍)은 유현(劉玄)을 황제로 옹립하고, 유수(劉秀)가 곤양(昆陽)에서 왕망을 크게 물리치자, 유현은 그를 파로(破虜)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왕망이 죽은 후에, 유수는 다시 한단을 점령하고, 자칭 천자였던 왕랑(王郞)을 죽였다. 유현은 유수의 전공을 인정하고, 그를 소왕(蕭王)에 봉하였다. 

당시, 유수는, 많은 지역의 군대가 통일되지 않아 평온이 오래가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계속적인 정벌에 나섰다. 
서기 24년, 유수는 하북(河北)에서 농민들이 봉기하여 이룬 동마군(銅馬軍)을 격파하고, 그중 잔여병력을 흡수하여 재편성하고, 동마군의 장수들은 모두 해당 관직에 배치하였다. 

그러나 재편성되거나 흡수된 병사들 가운데 상당수는 과거에 유수와 적대관계에 있었으므로, 유수의 신임을 받지 못할까 걱정하였다. 

이런 상황을 간파한 유수는, 이러한 장수들을 각각 과거 자신들이 속하였던 부대로 다시 배치하여, 그들로 하여금 소수의 병력을 데리고 순찰을 돌거나, 지휘를 맡게 하였다. 

유수가 조금도 경계하지 않고 그들을 자기 사람 대하듯 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들 말했다. 

"소왕은 성의껏 사람을 대하며 자신의 속마음을 사람들에게 내어주니, 어찌 목숨을 걸고 싸우지 않을 수 있겠는가[蕭王推赤心置腹中, 安得不投死乎]?" 

* 녹림군(綠林軍) : 서한(西漢) 말, 왕망에게 반대하며 왕광(王匡)과 왕봉(王鳳) 등이 주도하여 녹림산(綠林山; 지금의 호북성 당양현 동북쪽)에서 봉기한 집단. 

[출전] 후한서(後漢書) 권1 제기(帝紀)제1 광무제기(光武帝紀)상. 

▶ 西汉未年,王莽篡政,引起天下大乱,各地农民纷纷起义,群雄讨莽。公元23年初,刘玄被立为天子,刘秀任偏将军。王莽多次派兵攻打刘玄。在这些战斗中,刘秀屡立战功,被刘玄封为“萧王”。同时,刘秀与另一草莽英雄王郎也曾在今河北省中南部的滹沱河、滏阳河流城征战多年。打了不少胜仗。公元24年秋,刘秀率兵攻打民起义军于邬(今河北束鹿县东南),大破之,封降兵渠帅为列候。但降者并不很放心,担心刘秀是否出于真意。刘秀获悉这一情况后,为使其放心,便采用安抚之计,下令降者各归其本部统领其原来的兵马,刘秀本人则轻骑巡行各部,无丝毫戒备之意。这样一来,降者都信以为真了,只听他们经常三三两两地在一起低语:“萧王推已之红心,置他人之腹中,我们还担心什么?还不为他打天下,出力吗。”《后汉书·光武皇帝本纪》里的原话是:“萧王推赤心置人腹中,安得不报死乎!”
后人根据这段历史,将“推赤心置人腹中”句概括为“推心腹”成语,以喻真心待人之意。

[출전] 南朝 宋 范晔《后汉书 光武帝纪》:“萧王推赤心置腹中,安得不投死乎!”

[예문] 由于他平素对朝廷不满,又感于尚炯的推心置腹,就把他平日不轻对人谈的话都谈了出来。(姚雪垠《李自成》第一卷第二十六章)

[동의어] 촉슬담심(促膝談心), 간담상조(肝胆相照),  적성대인(赤诚待人)

[반의어] 거심파측(居心叵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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