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수 : 44  작성일 : 2003-06-26

◐문치무공 文治武功◑

▶ 문덕으로 다스리고 무위로 공을 세운다.

▶ '한비자·내저실하'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공자(孔子)는 문치무공의 정신으로 노나라의 백성들로 하여금 길에서 남이 떨어뜨린 물건을 줍지 않게 하였으며, 국력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성해지게 하였다."

공자는 "문관도 반드시 무력을 길러야 하며 무관도 반드시 문덕을 닦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 양자는 상호 의존하고 상호 촉진하는 것이므로 어느 하나도 버릴 수 없는 것이다.

기원전 500년, 공자는 노정공을 배행하여 제경공과 동맹을 맺으러 제로변계의 겹곡산으로 가게 되었다. 노정공은 두뇌가 비교적 단순하여 무력 강화 조치를 취할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공자는 노정공에게 문사를 볼 때에도 반드시 무력을 준비해야 하며, 문무지사가 서로 갈라질 수 없는 도리를 설명하였다. 그리고는 송양공이 무력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패권을 잃은 예를 말한 다음, 좌우 사마에게 군사를 거느리고 수행하게 하라고 하였다.

회맹 지점에 이르러 공자는 제나라의 많은 부대가 주위에 주둔해 있는 것을 탐지하고, 좌우 사마에게 경각심을 높이어 한시라도 싸울 준비를 할 것을 명령했다. 공자는 또 대부 자무에게 병차 300승을 거느려 회맹 지점에서 10리 떨어진 곳에 영채를 세우라고 명령하였다.

그때 제나라의 대부 이미는 제경공에게 이렇게 말했다.

"공자는 예만 알고 용맹이 없으며 또한 싸울 줄도 모르니, 내일 회맹에서 우리는 300명의 태이인(소수 민족)을 악공으로 분장시켰다가 그들이 준비가 없는 틈을 타서 노나라의 군신들을 모조리 붙들고 수종들을 죽여 버리면 노나라의 운명은 우리 손에 들어올 것입니다."

이튿날 제나라와 노나라의 양국 군신 4명이 단에 올라 회맹(서로 만나 맹세하는 일)할 때 제경공은 300명의 태이인이 앞으로 나와 본토의 음악을 울리게 했다.

노정공은 깜짝 놀라 낯색이 변하였으나 공자는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공자는 먼저 제경공더러 음악을 걷어치우게 했다. 제경공은 사태를 짐작하고 태이인들을 나가게 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서 공자는 또 제경공에게 노정공을 모욕한 악대의 대장을 법에 의하여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제경공이 동의하지 않자, 공자는 대노하여 칼을 짚고 눈을 부릅뜨며 말하였다.

"두 나라가 좋게 지내면 형제나 마찬가지인데 노나라의 집법관이면 곧 제나라의 법관이나 같은 것이다."

공자는 손을 들어 좌우 사마를 큰소리로 부르니 두 장군이 나는 듯이 단에 올라와 남녀 악대 중에서 대장을 각각 하나씩 뽑아 당장에 목을 쳐버리니 나머지는 질겁하여 달아나고 말았다.

회맹은 무의미하게 끝나고 말았다. 제경공은 몹쓸 의견을 내놓은 대부 이미를 호되게 꾸짖고 나서, 양국간의 우의를 위하여 그전에 빼앗은 노나라의 땅을 모두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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