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극기봉공(剋己奉公/克己奉公) ◑ kè jǐ fèng gōng

▶ 克(이길 극) 己(몸 기) 奉(받들 봉) 公(공사 공)

▶ 봉공수법(奉公守法). 사욕(私慾)을 버리고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뜻. 자기를 엄격히 요구하고 일심정력으로 사업을 한다는 뜻.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해 법을 지킨다. 克己:克制自己的私欲;奉公:以公事为重。指严格要求自己;一心为公。 work selflessly for the public interest.

克己奉公和“봉공수법 奉公守法”、“대공무사 大公无私”;都含有“以公事为重”的意思。但克己奉公偏重在“克己”;“奉公守法”偏重在“守法”;“大公无私”偏重在“无私”。
 
▶ 안연이 스승 공자에게 
"사람이 어떻게 해야 인의(仁義)를 지켰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더니 

공자는 "극기복례하는 것이 인(仁)"이라고 대답했다.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매사 예의에 어긋남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극기(克己)라는 말이 여기서 처음 나왔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때 조사(趙奢)는 전조(田租·논밭에 대한 조세)를 맡은 관리였다. 그는 왕의 아우인 평원군이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것을 밝혀내고 평원군의 마름 9명을 죽였다. 

이에 화가 난 평원군은 조사를 죽이려 했다.그러자 조사는 "나으리 같으신 분이 법을 지키지 않으면 나라가 쇠약해지고 앞장서서 법을 지키신다면 나라도 강성해지고 나으리도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평원군은 일리있는 말이라고 여겨 왕에게 조사를 천거했다. 
  
[출전] 논어 안연편(論語 顔淵篇). 
 
▶ 조(趙)나라에는 염파, 인상여, 조사 등 세 명의 충신이 있었다. 그중 조사(趙奢)는 지혜가 뛰어나고 용병술에 능하였는데 강국이었던 진나라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면서 천하에 명성을 떨쳤다. 

조사가 이름이 알려지기 전에는 농지에 대한 조세를 담당하던 평범한 말단 관리에 불과했다. 그가 세금을 징수할 때에는 신분과 벼슬의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법령에 따라 공정하게 처리했다. 

한번은 조사가 징세를 위해 상나라의 평원군 조승의 집에 갔으나 하인들이 평원군의 세력을 믿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납세를 거부하였다. 

"만약 세금을 기한 내에 바치지 않는다면 나라의 조세법에 따라 엄하게 처벌될 것이다." 조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인 몇 명이 달려들더니 그에게 매를 안기고 그를 문밖으로 쫓아냈다. 

억울하게 매만 맞고 돌아온 조사는 그 일로 평원군의 가신들을 붙잡아 치죄하여 사형에 처했다. 이에 평원군 조승이 노하였다. "감히 본관을 건드리다니?" 한낱 말단관리한테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한 평원군은 조사를 파직시키는 것은 물론 죄에 따라 참수한다고 선포했다. 

사람들은 조사에게 평원군이 죽이려 한다는 소식을 전해주며 하루속히 조나라를 떠날 것을 그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조사는 이를 거절했다. 

"나는 아무 잘못도 없소. 법에 따라 집행했을 뿐인데 어찌 도망칠 이유가 된단 말이오. 지금 바로 평원군을 찾아가 말씀드려야겠소." 

조사는 그 길로 평원군 조승을 만나러 갔다. 

"상국(相国)께서는 조나라의 귀공자로서 문무백관을 통솔해야 하는 중책을 맡고 계십니다. 그런 상국께서 징세문제를 일으킨 하인들에게 물어야 할 죄를 도리어 소신한테 물으신다면 이는 나라의 법령을 어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조정의 관리 모두가 상국처럼 나라의 법을 무시한다면 어찌 되겠습니까. 백성들은 불만이 커지고 나라가 쇠약해질 것이며 그때가 되면 다른 제후들의 공격에 우리 조나라는 그저 멸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귀공자의 신분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상국의 명성을 어찌 논한단 말씀이십니까." 

평원군은 나라의 이익을 거론하는 조사가 몹시 현명하다고 판단되었지만 상국으로서 체면이 있는지라 몇 마디의 변명을 더 늘어놓았다. 

"사실 본관은 하인 몇 명을 죽였다고 그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닐세. 그건 단지 홧김에 한 얘기일뿐.... 헌데 만약 자네가 사전에 미리 본관에게 동의만 구했어도 오늘같은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껄세 흠…" 

그러자 조사가 말했다. 

"상국, 누구에게나 맡은바 관직에는 관할 범위가 있지요. 이번 일은 제가 책임지고 처리해야 할 일이니 마땅히 상국께 지시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네는 그 조급함이 문제야. 사람이 어찌 그리도 융통성이 없단 말인가." 

평원군의 나무리는 말에도 조사는 꿋꿋하게 소신을 밝혔다. 

"높으신 상국을 제가 어찌 가벼이 대하겠습니까. 다만 상국은 존귀한 신분이니 솔선수범하여 봉공(奉公)하고 나라의 법령과 제도를 지키신다면 상하가 질서있고 조정 안팎이 태평하여 나라는 더욱 부강해지고 조씨 가문도 더욱 굳건하리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부디 소신의 뜻을 헤아려주십시오." 

그 일로 조사의 공정함에 탄복한 평원군은 조사를 조왕에게 천거하였고 조왕은 조사에게 나라의 세금을 관리하는 중책을 맡겼다. 

사자성어 "봉공수법()"은 이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으며 "나라를 위해 힘을 다해 법을 지킨다"라는 뜻으로 사용된다.

▶ 祭遵,字弟孙,东汉初年颍阳人。祭遵从小喜欢读书,知书达理,虽然出身豪门,但生活非常俭朴。
  公元24年,刘秀攻打颍阳一带,祭遵去投奔他,被刘秀收为门下吏。后随军转战河北,当了军中的执法官,负责军营的法令。任职中,他执法严明,不循私情,为大家所称道。
  有一次,刘秀身边的一个小侍从犯了罪,祭遵查明真情后,依法把这小侍从处以死刑。刘秀知道后,十分生气,想祭遵竟敢处罚他身边的人,欲降罪于祭遵。但马上有人来劝谏刘秀说:“严明军令,本来就是大王的要求。如今祭遵坚守法令,上下一致做得很对。只有像他这样言行一致,号令三军才有威信啊。”
  刘秀听了觉得有理。后来,非但没有治罪于祭遵,还封他为征虏将军,颍阳侯。
  祭遵为人廉洁,为官清正,处事谨慎,克己奉公,常受到刘秀的赏赐,但他将这些赏赐都拿出来分给手下的人。他生活十分俭朴,家中也没有多少私人财产,即使在安排后事时,他仍嘱咐手下的人,不许铺张浪费,只要用牛车装载自己的尸体和棺木,拉到洛阳草草下葬就可以了。
  祭遵死后多年,汉光武帝刘秀仍对他的克己奉公精神十分怀念。

[출전] 南朝 宋 范晔《后汉书 祭遵传》:“遵为人廉约小心,克己奉公,赏赐辄尽与士卒,家无私财。”

[예문] 大公无私,积极努力,克己奉公,埋头苦干的精神,才是可尊敬的。(毛泽东《中国共产党在民族战争中的地位》)

[동의어] 렴정무사(廉政无私), 공이망사(公而忘私), 봉공수법(奉公守法)

[반의어] 견리망의(见利忘义), 손인이기(损人利己), 가공제사(假公济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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