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2부 (11)  

만화방총각: 눈을 떴더니 밖이 환하다. 아침햇살이 내 창문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는걸로 봐서, 늦잠을 잔거 같다.

백수아가씨: 녀석의 미소가 늦은 밤까지 머물다 갔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무도 없다. 엄마는 밥도 안차려 놓고 또 어디를 가셨을까?

자취생: 잠에서 깨었는데 밖은 아직 어둠 속에 있다. 시험공부한다고 요며칠 새벽에 일어났더니 그게 또 몸에 베였나보다. 아직 어제의 두근거림이 있다. 조깅이나 할까? 그녀 집 쪽으로... 그녀 집 골목으로 점퍼하나 입고 뛰었다.

만화방총각: 오전에 공책을 펼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감상적이 될 줄 알았는데..의외로 글이 잘 이어진다. 이제 마무리 부분으로 접어들고 있다. 주인공이 많은 심적 변화와 유혹을 뿌리치고 한 여자를 찾아간다는 내용으로 끝이날 것이다. 정경이 생각으로 한 여자를 그렸다. 그래서 요며칠 소설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늘 마음이 차분한게 글이 잘 이어지고 있다. 후후... 큰 두 눈과 맑은 눈물, 그리고 이제 와서야 달콤함을 주는 그 찰나의 입술느낌... 정경이 때문에 답답했던 내 마음이 누군가의 생각으로 참 맑아졌다. 오늘 소설 속 한 여자의 모습에는 혜지씨의 모습이 담겨졌다. 손님이 들어왔다. 이제 그만 적어야겠다.

백수아가씨: 며칠만에 편안하게 잠이 들었었다. 창문을 여니 찹지만 상쾌한 바람이 들어온다. 아침은 내가 만들어 먹어야겠다. 오늘은 뭘 할까? 요앞 대학도서관에 책이나 보러갈까? 녀석도 그 학교 다니는거 같다. 몇살일까? 몇마디 안해봤지만 억양이 서울사람 같지가 않았는데... 이름은 또 뭘까? 어제 이름이나 물어볼걸 그랬다. 이 근처에 사는 건 확실한데...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이 생긴다. 그 궁금증들이 이병씨에 대한 불안한 설레임과 답답함을 걷어내는거 같다.

자취생: 그녀 집 앞을 지나 골목 끝까지 달렸다. 그리고 다시 그녀의 집을 보며 달려왔다. 즐겁다. 춥지만 달리고 싶다. 그녀 집 쪽으로 달려가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듯한 사람이 나왔다. 내가 또 인사성은 밝잖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어! 열심히네. 그래 나중에 봐." 날 아나? 아버님께서 출근을 하시는 반대방향으로 뛰었다. 다시 돌아왔다. 너무 무리하는 걸까? 약간 숨이 가프고 찬바람에 얼굴이 따끈거린다. 혹시나 한번 볼 수 있을까. 집 앞을 뛰어봤지만, 이제는 안되겠다. 그녀의 집을 쳐다보며 천천한 걸음으로 내 자취방 쪽으로 향했다. 그녈 볼 수는 없었지만 저 곳에 지금 그녀가 내가 알지 못한 어떤 삶을 살고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묘하다. 집 대문이 열렸다. 많이 놀랬다. 그녀가 보고 싶어 왔지만 여기서 마주치면 난감하다.

"안녕하세요."
"어. 누구지?"

만화방총각: 만화방안이 많이 덥다. 졸음이 온다. 전화기를 보니 음반점에 전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망설임이 생긴다. 하지만 지금 이 차분한 기분을 잃고 싶지가 않다.

백수아가씨: 어라? 엄마가 오늘 왠일로 약수통에 물을 받아 오시는 거지. 저건 아빠도 들고가시길 꺼려하던 큰 것인데? 바깥날씨처럼 차가운 그 물이 내 마음을 적셨다. 아 시원하다. 그 시원함에 어디 외출을 하고 싶다. 그래 아까 맘먹은데로 요앞 학교나 가보자. 혹시 아냐? 그녀석이라도 보게 될지...

자취생: "아.. 그때 눈길에 넘어졌던 학생이구나." 이런! 내가 쌀가마니 들어준 것은 기억 못하시나? 아줌마의 한 손에는 자그마한 물통이 들려있었다. "어디. 운동가나보지?" 운동 다했는데... "예. 매일 여기서 학교까지 조깅하는데요. 참 상쾌하거든요." 잘 보일려면 할 수 없다.

"학교? 요앞 대학교말이지? 그 학교 학생인가보지?"
"예."
"잘 되었네. 나도 그 학교 안에 있는 약수터가는데..."
"아. 그래요."
"나하고 같이가면 되겠다."
"예?" 집에 가야되는데... 이제는 배도 고픈데.
"잠깐만..."

그 아줌마께서, 아니 어머님께서 집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래 가다 이런저런 이야기하다보면 그녀 이야기도 나오겠지. 근데 집에는 왜 다시 들어가셨을까? 한번밖에 안 봤는데, 이집 식구들은 사람들한테 친하게 잘 대한다. 어머님께서 나오셨을 땐 아까의 작은 물통대신 20리터 큰 물통이 들려져 있었다.

"우리 아들도 이 학교 다니는데."
"아. 예."
"학생은 무슨 과야?"
"기계공학과 다니는데요."
"정말? 우리아들도 기계공학과 다니는데. 지금은 군대가 있지만."
"아. 예. 몇학번 누군데요? 제가 아는 학생일수도 있겠는데요."
"95학번이고 이름은 최혜철인데..작년 봄에 군대갔어. 내년 봄에 제대할거야."

두가지 정보를 얻었다. 그녀의 성은 최씨고 남동생이 하나 있구나.

"아. 제가 군대 있을 때 입학했네요. 그리고 제가 복학했을 때는 군대가버렸고.. 전 92학번이거든요."
"그래? 학생이 많이 선배네. 호호 길게 말하니까. 사투리가 많이 표난다. 경상도 어디서 올라왔어?"
"예. 진주라고...혹시 아세요?"
"진주? 우리남편이 진주사람이잖아. 나도 삼천포사람이고.. 우리 예전에 진주에서 살았었어. 야 반갑네.".
"예. 반갑네요.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드려야겠네요."
"그래. 내년에 우리아들 제대하면 잘 봐줘"
"저 곧 졸업하는데요."

학교 안 약수터에 도착할 때까지 어머님은 혜지씨에 관한 말씀은 하지 않았다. 에고 무거워라. 어머님은 여전히 말을 많이 하신다. 사촌이 땅을 샀다느니. 자기 남편이 어디회사 실장이다라느니. 군대가서 고생하는 아들보니 맘이 아팠다느니.. 하지만 올 때도 그녀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

설사 그녀얘기를 하셨다하더라도 난 대답이나 다른 어떤 질문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물통이 장난이 아니게 무겁다. 배도 고프고 이미 뜀박질로 체력이 다한 상태서 이 무거운 물통은 차라리 삶의 무게였다. 하지만 사랑은 노력하는 자만이 얻을 수 있다. 애써 힘든 표정을 감추고 물통을 낑낑 들고 걸었다. 그녀 집 앞에 물통을 내려놓았을 때 난 반사상태였다. 이렇게 추운 날씨에 이렇게 많은 땀을 흘려 본게 몇년만일까? 어머님께서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나다." 참 반가운 목소릴 들었다.

문이 열리고 어머님께서 낑낑거리시며 겨우 물통을 끌고 들어가신다. 첨부터 나한테 맡길려고 작정하시고 큰 물통으로 바꾸신게 틀림없다. "고마워. 학생. 참. 아까 그 목소리 내딸인데.. 참 이뻐. 담에 소개시켜주께." 하하. 드디어 그녀 얘기가 나왔다. 그리고 소개까지 시켜준댄다. 참 기뻐해야 하는데, 내몸은 이미 내몸이 아니었다.

만화방총각: 혜지씨가 출근하는 시간이 되어온다. 오늘도 나오지 않는걸까? 기다려진다. 그 단골녀석이라도 와주면 좋겠는데, 그 녀석도 보이질 않았다. 많이 기다렸지만 혜지씨는 오지 않았다. 또 답답해진다. 그 답답함에 정경이에 대한 생각까지 겹쳤다. 괜히 정경이한테 전화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혜지씨의 오지 않음이 전화할 용기마저 꺾어 놓았다. 마음이 불안하게 붕떠오른다. 잡지 못한다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밖이 깜깜해져오고 있다.

더 깊이 짚어보면 더 아름다게 정겨운 추억이 있었지만. 최근의 음반점에서의 애틋함과 밝은 표정의 정경이 모습이 떠 올랐다. 그리고 지금 별것 아닌 것 같은 일로 태도가 참 많이도 바꼈던 정경이의 모습이 날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그걸 잊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무언가 잡힐 듯한 꿈때문이었을까? 오늘 혜지씨가 많이 기다려졌었고 올 것만 같은 기대가 들었는데... 이제 내 옆에는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공허함만 있다는 느낌이 든다.

백수아가씨: 쌀가마니 들어 주었던 학생이 조금 들어주었다는 엄마말씀에 의심이 간다. 그때도 그랬지만 대부분 엄마가 들고 왔다는 말이 믿기지 않는다. 아무래도 엄마의 술수에 선량한 학생하나가 희생당한거 같다. 것두 두번이나... 에구 불쌍한 사람. 우리엄마한테 찍혔구만. 앞으로 우리 엄마눈에 안뜨이기만을 빌어줄께. 그래도 그 착한 학생이라는 사람이 고맙긴하다. 우리엄마 수고들어주어서... 밥을 먹고나서 오랜만에 화장도 하고 정장차림에 버버리코트까지 입었다. 기분전환이다. 내가봐도 모델같다. 립스틱은 바르지 않았다. 분위기 망치기 싫기 때문이다.
학교를 한바퀴 걸었다. 학기말 고사가 끝나 학생이 별로 없는 차분한 분위기의 교정이다. 차운 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한다.

이 학교에서 녀석이 캠퍼스추억을 만들고 있었구만. 몇번 와봤지만 오늘은 느낌이 다르다. 도서관엘 갔다. 바코드출입구가 눈에 거슬린다. 하지만 내가 못들어갈소냐? 남학생하나 붙잡고 학생증 좀 빌려달랬다. 기분좋게 빌려준다. 들어가서 돌려주었다. 내미모는 학교 때 제법 인정을 받지 않았더냐. 호호. 소설책하나를 골라 오랜시간 보았다. 여유롭다. 왜 진작 이런생활을 못했을까? 시간은 자기가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있구나. 졸업하고 너무 마음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게 별로 하는 것도 없이 시간적으로도 여유를 갖지 못했었다. 저녁이 되어 갈무렵 도서관을 나왔다. 혹시나 하며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공대 앞에서 커피를 하나 뽑아 마셨다. 후후. 족구금지푯말을 네트삼아 족구를 하고 있는 공대생들을 보았다. 우리학교는 공대가 없었다. 여고생이 남자고등학교에 온 듯한 묘한 설레임이 든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어두워져 가는 겨울하늘 아래 공대지붕이 걸려있다. 녀석을 못보고 돌아왔지만 마음은 차분하게 정리되는 듯한 느낌이다. 만화방불빛이 오늘은 그렇게 초라하게만 느껴지질 않았다. 내일은 만화방을 다시 나가봐야겠다.

자취생: 집에 돌아오니 팔에 감각마저 없어졌다. 밥이고 뭐고 귀찮다. 저번에 사다 놓은 초코파이랑 박카스로 허기만 때우고 깊은 잠에 빠졌다. 일어나니 해가 꾸역꾸역 지고 있었다. 내 창문빛이 오늘따라 유난히 빨갛다. 더 자고 싶지만 배가 너무 고프다. 만화방아저씨한테 혜지씨가 내일은 나온다는 말도 전해주어야 된다. 일어나자.

12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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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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