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카투사 1話 시험...그리고 입대...조회수 : 1458    
    작성자 : joker작성일 : 2004-10-05    

▶ 카투사 1話 시험...그리고 입대... 
1999.03.18 조회: 1768 매탤 02-11 08:27 | HIT : 516 | VOTE : 0 


이 글은 웃음을 주는 것도 목적보다는... 
일반인들이 잘 알지 못하는 카투사 
- Korea Agumentation To the United States Army, 
미8육군에 배속된 한국군인- 들의 참 모습을 하나도 빠짐없이 
밝혀내어 카투사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오해를 불식시키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쓴 글입니다. 

이 글이 카투사로 제대하신 분들에게는 추억을... 
카투사를 지망하시려는 분들에겐 정보를.. 
카투사 사병을 후배나 친구나 애인으로 둔 분들에겐 이해를... 
그리고 그 외에 카투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겐 미소을 줄 기회가 
되길 바라며,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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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3월은 아마도 내 인생의 새로운 전기가 될만한 날이었다. 
난 그때 이미 대학교 입학하기도 전에 입대 영장을 받아놓은 상태였다. 

대학을 늦게 들어간 관계로 이미 입대를 한번 연기하였기에 다시 연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대학교 입학할 때 쯤에는 이미 89년 8월 26일로 
영장이 발부되어 있는 상태였다. 

모든걸 체념하고 한학기 열심히 다닌 다음 입대할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부산에서 형이 전화를 해서 카투사 시험을 쳐 보라고 했다. 

당시에 난 카투사가 뭔지도 몰랐는데, 형이 말하기를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데, 
아주 편하고 좋다고 하였다. 

그러나 내 생각으로는 어자피 군대 30개월을 보내야 되는데 편하거나 힘들거나 
군생활하기는 마찬 가지라고 생각하여 형에게 "별로 시험 치고 싶지 않다"라고 
했는데, 당시에 전역한 한 형이 말하기를 

" 편하고 안편하고는 군대에 들어가서 하늘과 땅 차이 니까 시험 꼭 쳐라. 
제발 형 말좀 들어라!!!" 

라고 신신당부를 하여 얼결에 학교의 학군단에 가서 카투사원서를 접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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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사회에서도 카투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카투사를 
제대로(?)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카츄사라고 알고 있다. 
물론 나도 입대하고 나서 평택의 KRTC(Katusa Reception Training Center, 
카투사교육대)까지 가서 카투사라는 것을 알 정도였으니 말이다. 

카츄사는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Voskresenie)'에 나오는 비련의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고 카투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데,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지 몰라도 카투사가 카츄사로 통한다. 

그래서 미군부대에서 근무하는 카투사들이 나약하고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불려지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더군다나 이미 잘 알려진 '카츄사의 노래' 도 
이런 이미지 재고(?)에 일조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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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를 접수하는데 보니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 틈에 섞여서 원서를 접수하고 수험번호(?)를 받으니 
나도 모르는 경쟁심이 다시 발동하였다. 

원서에 찍힌 시험일은 3월 20일 경으로 기억한다. 일요일 아침 9시부터 
2시간 동안 성남의 모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에서 시험을 치렀는데, 
그 전날 밤새워 마신 술이 채 깨지도 않은 상태에서 잠에 취하고 술에 
취한 몽롱한 정신으로 성남까지 갔었다. 

내심 수험표말고는 가진게 없어서 시험장소를 찾지도 못하고 돌아오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지만 그건 잠실역에 내리자마자 기우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곳에 내린 모든 장정들이 수험표와 학교위치가 그려진 지도를 
들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군중속에 휩쓸려서 무사히 시험장으로 들어갔다. 당시에 국민학교를 6개를 
빌어서 시험을 치렀는데, 한 학급에 40명 정도가 시험을 치렀다면 학급 
수와 학교 수를 계산하여 경쟁률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 수험번호가 
2만 몇 번이었는데 뽑는 인원은 900명 정도였으니 그 치열함이 짐작될 
만도 할 것이다. 

시험과목은 영어 50점, 국사 25점, 윤리 25점으로 100점 만점 이었는데, 
시험지를 나누어주던 하사관이 

"지난번에 시험치고 또 치는 사람 손들어봐!" 

하고 이야기 할 때 

'훗 이것도 재수하는구나!!!'하고 생각하며 혼자 미소를 지었었다. 

문제 수준은 학력고사(지금은 수능시험)보다도 조금 더 쉬운 수준이었지만, 
난 전날의 모자란 잠과 술기운 때문에 문제지를 어떻게 봤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시험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와서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20일 정도가 지난후 병무청 앞에 발표자 명단이 붙었다. 
친구를 데리고 올라가서 보니 한쪽 벽에 번호가 붙어있는데 2만 번대는 
아무도 붙어있지 않았었다. 

'참, 이것까지도 떨어지다니!' 하고 낙담하며 돌아서서 나오는데, 나오는 
출구 입구에 2만번대 번호가 붙어있었다. 
그 곳에는 낯익은 수험번호도 같이 올라가 있었다. 

'합격이었다!' 

그렇게 카투사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실 그때까지도 난 '카투사나 한국군이나 무슨 차이가 있으리?' 하고 
생각하였지만,그래도 치열한 경쟁(아마도 30:1 정도가 될 듯)을 뚫고 
합격했다는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긴 했었다. 

전체 합격자 수가 대략 900명이었는데 5월부터 입대를 한다고 했다. 
150명씩 생일순으로 6기수로 나누어서 5월,6월,8월,9월,11월,12월에 
입대를 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난 생일이 늦은 편이라서 9월로 입대 
일이 결정되어서 나오게 되었다. 

참 사람의 운명이란 것은 장난같은 것이다. 만일 카투사 입대일이 5월이나 
6월로 나왔으면 난 카투사를 포기하고 한국군으로 갔을런지도 모른다. 
그 때는 조금이라도 더 사회에 있고 싶을 때였으니까. 

이전에 나온 나의 입대일은 8월 20일 경이었으니 카투사로 나온 영장이 
8월 이전이었다면 아마도 사회에 조금이라도 더 있고 싶어한 나머지 
한국군으로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카투사 입대일은 9월이었고, 
나의 원래 한국군으로 입대일은 8월 26일이었으니 난 주저하지 않고 
카투사로 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순간순간에 결정되는 것이 사람의 운명이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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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투사 징집제도도 많이 바뀌었는데, 내가 입대할 때만 해도 시험을 쳐서 
카투사로 입대하는 사람과 논산에서 차출되는 사람이 반반이었다. 

그래서 시험쳐서 입대한 카투사를 '시험군번', 차출되어 입대한 카투사를 
'차출군번'이라고 했다. 요즘은 논산훈련소에서 선발하는 것을 폐지하고 
토익성적 6백점 이상자를 대상으로 무작위 전산선발한다고 한다. 

카투사 지원기회도 1회로 제한한다고 하는데, 이는 지원자들이 재수, 삼수 
까지해서 응시하여 소위말하는 '카시(카투사 고시)'라는 말까지 나오는 등의 
과열 경쟁의 폐단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추첨되고 남은 인원중에서 성적순으로 70여명을 한국군 
어학병으로 모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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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입대한 년도는 89년 입니다. 많은 부분이 바꿨는지는 몰라도 
* 기본적인 갈등 구조나 카투사의 골격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을 
* 후배 카투사들에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 그러나 많은 시간이 지난 것이라는 것은 참고하길 바랍니다...^^* 


작성자 : 93군번 조회: 572, 줄수: 7, 분류: Etc. 
Re: 카투사 2話 평택, 파라다이스로.. 

평택역에 처음 내렸을 때.... 많은 카투사 예비역들이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간혹은 밤안개가 아스라한 역. 어슴푸레한 가로등. 잠깐 눈붙인 졸음이 채 가시지 않아 어리벙벙한 가운데 허겁지겁 TMO에서 뛰어내렸을 때 그들 앞에 나타난 일단의 무리들....

89년 당시의 교관과 93년의 교관에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저의 기억에 남아있는 교관들은 <찍어낸 로보트들>이었지요. 열 명 가까운 그들이 뱉어내는 말들은 목소리만 다르다 뿐 거의 같았습니다. 독특한 말투, 말끝마다 붙이는 "상놈의 새끼야"(실제 이 이외의 욕설은 하지 않더군요) 하나같이 껑충한 키(최소 180이상이었습니다), 바싹 내려쓴 soft cap(군모).... 그리고, 처음에 가장 적응 안되던 그들의 cadence(구령)...

옛날에(?) 카투사로 복무한 선배들에게 90년대 초반, 중반에 복무한 사람들이 케이던스네 하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 "그게 뭐냐?"고 묻는다고 하더군요. 참,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뭣합니다. 직접 들어야 하거든요.... 케이던스란 말대로 구령이라는 뜻인데, '2조 번호붙여 가'의 하나, 둘, 셋, 넷,... 의 패턴에 변박을 주기 때문에 발 맞추기가 처음엔 정말 힘듭니다. 그리고 그 발음도 하나둘셋넷이 아니라 하, 퓌, 헷, 네 정도로 들리고, 소리가 참 크죠. 밤에 들으면 귀신의 곡성 같기도 합니다. 

그 귀신의 곡성을, 그 싸늘한 표정의 교관들이, 평택역 광장 새벽 한 시에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내지르면.... 거참, 정신이 없지요.... 물론, 평택에서의 교육이 끝날 때쯤이면 그 케이던스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교육병이 꼭 나타난다고 합니다만. 



작성자 : 93군번 조회: 914, 줄수: 9, 분류: Etc. 
Re: 카투사 1話 시험...그리고 입대... 

약 4년 정도 늦게 카투사로 입대한 사람입니다. 

소소하지만 적지 않은 변화가 있었던 듯하여 93년-95년 시기와 비교하여 적어 보겠습니다.

먼저 시험.

시험은 92년 상반기 시험부터 상당히 어려워졌습니다. 특히 영어가 대학원 시험 수준의 어휘로 채워지는 등, 학력고사수준이라는 말을 믿은 사람들이 여지없이 당해 나가떨어지는 결과가 초래됐죠. 저는 92년 10월 시험을 통해 입대했는데 당시 커트라인이 100점 만점이 71점이었습니다.

물론, 이제 토익으로 완전히 바뀐 체제에서는 의미없는 지적입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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