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카투사 35話 공포의 미2사단...조회수 : 897    
    작성자 : joker작성일 : 2004-10-05    

1999.04.09 조회: 643, 줄수: 164, 분류: Etc. 매탤 02-15 17:21 | HIT : 104 | VOTE : 0 
카투사 35話 공포의 미2사단... 


★까투리 시리즈...제 35 話...★ 

꾸준히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35번째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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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는 논산의 훈련소에 비해서 까투리에게는 주체할 수 없는 많은 
시간이 주어졌었다. 대부분의 훈련병들은 그 시간에 군화를 닦았고, 
시간이 남는 병사들은 모여서 떠들고 놀거나, 영어공부를 하였다. 

물론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는 시험을 잘 쳐서 더 편하고 더 좋은 
곳으로 가려는 생각 때문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논산에서 받은 훈련과 평택에서 받은 교육의 
다른 점은 이런 부분이 정말로 크게 작용한다. 논산에서 그렇게 힘들게 
훈련을 받는 중에 형성되는 전우 간의 교감이나 감정, 우정 등등이 평택에 
오면 싸그리 녹아 없어져 버리고, 모든 교육병은 자신의 경쟁자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시험을 잘 쳐서 순위에 들어야만 좋은 곳으로 가는데, 좋은(?) 곳으로 
배정하는 성적은 절대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이니 모든 교육병들이 기를 쓰고 
공부에 전념하기 때문인 것이었다. 

물론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해서 시험을 치르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단지 시험점수 하나로 자기의 군생활 30개월을 결정짓는 다는 것에 웬지 
모를 거부감이라고 드는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그런 이유로 평택에서는 교육병들 사이에 묘한 편가름이 생기기도 하였다. 
저녁에 자기 시간이 한 시간 정도 주어지면 자기 자리로 가서 책을 읽고 
공부하는 교육병들과 모여서 떠들고 장난치며 노는 부류로 편가름이 생긴 것이다. 

내가 있던 소대는 2소대였었는데, 모두 저녁만 되면 모여서 웃고 떠들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재미있었던 시기가 그때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그 결과가 우리 패거리 12명 중에서 자그마치 10명이 
미 2사단으로 배치된 것으로 나타났었지만... 

그 10명에서 빠진 2명의 행운아는 나와 다른 한 명이었는데, 
나도 결국 나중에는 2사단으로 가게 되었으니 아무래도 우리가 있던 
자리는 2사단으로 가는 비상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우리 예비 '인디언 헤드' 패거리들이 모여있던 곳을 가리켜서 
다른 동기들은 '인디언 보호구역'이라고 지칭하였다. 

여기서 인디언 보호구역이란 미 2사단의 상징이 'INDIAN HEAD'였다는 데서 
기인한 말인데, 정확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미국 초기의 서부 개척 때 
백인들에게 잘려나간 인디언들의 머리를 추모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기회가 닿는 사람은 수유리에서 동두천 가는 버스를 타고 동두천으로 올라 
가다보면 사단 앞이라는 버스 정류장이 있는데 바로 그곳이 미 2사단이다. 
그곳의 부대 이름은 'CP Casey'이고 맞은 편에 헬기들이 모여있는 작은 
부대가 있는데, 그곳의 이름은 'CP Mobil'이다. 

여기 2사단 앞에는 2사단의 상징인 인디언 동상이 있다. 


여러분은 윤금이씨를 아십니까? 
동두천에서 미군들의 윤락여생활을 하다가 처참하게 살해당한... 

여러분은 '은마는 오지 않는다.'라는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기지촌에서 미군들에게 몸을 파는 이땅의 딸들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분들은 '기지촌'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SOFA(주둔군지위)협정, 한미안보협정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소설 '공존의 그늘'을 읽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이 모든 것들이 관련되어 있는 주 무대가 바로 동두천지역이고, 
그 지역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바로 미 2사단이다. 

처음 거기 들어가면 입구의 문위에 이렇게 적혀있다. 

"당신은 지금 세계최강의 사단에 방문하고 있습니다." 
(Now, You visit the world's most powerful division.) 

진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어쨋든 악명 높은 곳 임에는 틀림 없다. 
부대를 들어가 보면 온갖 기기묘묘한 건물들 사이로 부대내 순환버스가 
다니는데, 버스타고 가다보면 탱크, 장갑차, 트럭, 대포, 등등의 
전투차량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모습도 용산이나 한강 이남 지역의 부대와는 많은 차이점이기도 하다. 

2사단은 그 자체가 전투사단이기 때문에 전투단위로 편성되어 있다. 
사실 나도 군대 있을 때는 그렇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72전차 여단, 그리고 보병여단과 포병여단이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세가지 2사단의 주력부대의 전투병으로 간다는 것은 좋게 말하면 
오리지날의 정규병으로 훈련을 받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개고생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자대에서 작전 나갔을 때 2사단 전차병 까투리를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37일째 탱크 안에서 먹고 자고 하고 있었다. 

또한 보병 여단으로 간 동기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작전 나가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들판에서 텐트도 없이 그냥 바닥에 슬리핑 백을 깔고 잔다고 한다. 
그리고 헬기 탄 이야기, 듣도 보도 못한 비행기 탄 이야기, 만화에서나 들어본 
듯한 장비 다루는 이야기 등등을 들어보니 절로 숙연해졌었다. 

그것과 더불어 2사단이 힘든 이유중 하나는 미군들은 돈이 무지무지 많은 관계로 
훈련이 엄청나게 많다. 또한 미국인들의 그 합리적은 특성 덕분에 훈련 나가면 
대충대충이 통하지 않고, 훈련 과정과 내용을 규정대로 작전이 끝날 때까지 
해야한다고 한다. 양놈들은 돈이 아주 많은 관계로 작전 나가면 엄청나게 많은 
장비, 탄약, 연료, 등등을 가지고 가는데, 이런것들 모두 다 써야되기 때문에 
작전이 끝나는 날까지 첫날처럼 힘들게 보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다. 

훈련도 훈련이지만 같이 훈련받는 미군들의 체력이나 힘쓰는 것이 카투사들이나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이런 얘들과 같이 훈련받고 보조를 맞춘다는 것은 
한국군들 잘 하는 말로 악과 깡으로 이겨야 하는 것을 요구한다. 무식한 양놈 
들은 사회에서 무엇을 하고 왔던 상관하지 않고 힘세고 강한 것을 숭배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고 체력이 약한 까투리들은 조롱거리가 되는 경우가 허다 
하기 때문에 그런 비웃음을 싸지 않기위해서는 이를 악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부분뿐만이 아니고 훈련 중에 시시각각으로 생기는 다양한 상황을 
영어로 이야기하고 영어로 표현하고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육체적, 정신적 스트레스가 2사단으로 가는 것을 그렇게 싫어하게 
만드는 지도 모르겠다. 

또한 그렇게 2사단으로 가기를 싫어하는 이유 중의 하나도 부대 배치를 할 
때 마지막까지 남는 병사들이 모여서 가는 곳이 2사단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험을 가장 못쳤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전투지역에서 근무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외부에서도 까투리들에 대해서 어느정도는 알기 때문에 
2사단에 간다고 말하는 사실이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고...등등의 
이유가 복합되어서 그럴 것이다. 


그러나 군대 갔다 오신 분들은 공감하겠지만 군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직이다. 자기가 맡은 일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론 후방지역이나 본부나 사령부에 있으면 아무래도 전투지역보다는 
편한 보직을 얻을 확률이 크지만 그 확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2사단 내에서의 까투리들은 보통 작전과 상관없는 보직이 거의 대부분이다. 
까투리들은 머리가 좋기 때문에 서류상의 일(paper job)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나도 처음에는 8군으로 가서 차량 운전을 하는 보직을 받았다. 
그러나 2사단으로 간 동기들은 거의 대부분이 행정병이나 보급병 보직을 받아서 
편하기로 생각하면 나보다 더 편한 군생활을 하는 듯 하였었다. 

그리고 한가지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만약 카투사로 오게 된 동기가 
마냥 미군들과 편하게 군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다른 민족과 
몸으로 부딛치면서 비록 저속하지만 살아있는 영어와 문화를 배울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차라리 용산이나 평택보다는 2사단에서 근무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로 내가 군생활해 보니, 그 기나긴 군생활 중에서 기억이 남는 것은 
작전지에서 느끼는 여러가지 감정, 재밌는 에피소드, 색다른 경험 등등이었다. 
그 외의 부대에서 파티를 한다거나 주말마다 서울에 와서 논 기억은 거의 
사라져 버리고 남아 있지도 않게 된다. 


지나고보면 누구나 다 느끼는 것이겠지만, 
군대는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던지 좋은 것만 있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좋을 수만 있다면 국방의 의무를 지을 필요조차도 없겠지. 
누구나 다 하고싶어 하지 않겠는가? 

특히 까투리들은 시험에 따라 부대배치가 이루어지니 어디를 가면 좋고 
어디를 가면 힘들다는 식의 이야기가 아주 신빙성있게 전해져 내려온다. 
그러나 조교나 교관들이 하는 말은 까투리는 어디를 가나 힘들고 안힘들고는 
비슷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직이니 시험에 너무 연연해하지 마라고 
그렇게 이야기하지만, 훈련병 때는 그건 귀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러다가 결국 시간이 지나고...계급이 올라가고...그러다가... 
제대하고...회고해보면... 그말이 그렇게 와 닿는 것은 왜일까? 


------- Written by ELO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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