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1부 (4)
  
백수: 오늘 컵라면 하나 사가지고 만화방에 갔다. 어차피 백수라고 알려진 것. 더이상 쪽팔릴 것두 없다. 그녀가 오늘따라 화사하다. 용기를 내어 "아..아.. 아줌마 뜨거운 물 좀 주세요.."라고 말했다.. 으이그... 아가씨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녀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물을 부어주었다. 근데 라면 맛이 이상하다. 상한거 같다. 이상한 고기 비린 맛이 났다. 아까왔지만 화장실에 부어 버렸다.

만화방아가씨: 그가 컵라면을 가지고 만화방에 왔다. 라면개시하라는 무언의 시위같다.
그가 또 아줌마라 그랬다. 엄청 얄미웠지만 그때 도와준 일도 있고 해서 인심을 써 육수를 부어주었다. 근데 녀석이 라면을 먹다말고 화장실로 간다. 먹으면서도 쌀 수가 있다니 부러운 놈이다.

백수: 오늘 만화방에서 더럽게 생긴 두녀석을 보았다. 한녀석은 노란추리닝에 피시에스를 낀 놈이고 한녀석은 짝이 안맞는 딸딸이를 신고 있었다. 저 녀석들 부모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그녀는 고혹한 모습으로 계산대에 앉아 졸고 있다. 사랑스럽다.

만화방아가씨: 백수 그 녀석 말고 눈에 띠는 녀석이 둘이 들어왔다. 내가 만화방 차린게 후회된다. 저것들도 단골이 될까봐 두려운 생각마저 든다. 노란추리닝녀석이 나보고 아줌마라 그랬다. 딸딸이녀석은 라면을 시켰다. 죽고싶다. 계산하고 나갈 때 딸딸이 녀석이 동전을 한움큼 내놓고 갔다. 애들 콧물이 묻어 있는거 같은 느낌이 왔다. 추리닝녀석은 피시에스를 꺼내더니.. " 내가 말이야 만화방으로 자리를 옮겼어.."라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더니 마지막에 "아줌마 이거 피시에스에요"라는 말을 던지고 나갔다. 왠지 지구인이 아닌거 같았다. 백수그녀석이 오늘따라 멋있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딸딸이(특별출연): 만화방 여주인이 이뻤다. 이 백수친구만 안데리고 왔어도. 여기를 단골로 다닐텐데.. 저녀석땜에 쪽을 다 팔았다. 짝재기딸딸이도 왠지 맘에 걸린다. 라면을 시켰는데 주인 아가씨가 아무반응이 없다. 아마 이 녀석이 아줌마라 불러서 화가 났나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돈이라곤 짤짤이해서 딴 동전들뿐이다. 나갈 때 좀 쪽팔리겠다.

노란 추리닝(특별출연): 졸라 야한 만화책이 많다. 재밌다. 주인 아줌마한테 피시에스 자랑이 하고 싶다. 나갈 때 자랑하고 나가야쥐..

백수: 오늘 만화방에서 짜장면을 시켜먹었다. 계산하려고 나왔는데 마침 그녀가 누구와 전화를 하고 있었다. 무슨 재밌는 이야기를 나누나부다. 계속웃는다. 날 보는 눈짓이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하는 것 같다. 오래 해도 돼요.. 이렇게 가까이서, 이렇게 오랫동안 그녀 얼굴쳐다본 적이 그전에 있었던가..? 행복하다.

만화방아가씨: 친구한테 전화가 왔다. 오늘 기분이 심난해서 오늘밤에 여기로 온다 그런다. 친구와 그렇게 전화를 하는데 그 백수녀석이 계산대에 왔다. 그의 얼굴을 보니 코위에 짜장이 엄청 묻어 있다. 저렇게 생긴 것두 웃긴데 짜장까지.. 막 웃었다. 친구가 얘기하다 말고 왜 자꾸 웃느냐고 지랄을 했다. 뭐가 묻었는지도 모른채 그는 행복한표정이다.

백수: 예전 만화방주인일 때는 만화방도 대신 봐주고 그랬다. 그런데 그녀는 내가 그렇게 줄기차게 다녔는데도 그런 부탁하나 안한다. 내가 의심스럽게 보였나? 하기야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백수한테 가게맡길 사람이 어디껏나..

만화방아가씨: 내일은 내 친구 결혼식이다. 삼촌이 요즘 바빠서 만화방을 못봐준다고 그랬다. 할 수 없이 내일은 문을 닫아야 하나... 그 백수녀석이 떠올랐다. 나쁜녀석같지는 않다. 아니 착한거 같다. 그에게 내일 하루만 봐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

백수: 오늘 그녀가 내일 만화방 좀 봐달라고 했다. 기뻤다. 날 믿는다는 증거다. 이일을 계기로 그녀와 가까워졌으면 좋겠다. 오늘밤은 그녀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만화방아가씨: 그가 아침 일찍 왔다. 제시간에 화장을 끝마쳤다. 그에게 열쇠와 오늘 신간 값 치를 3만원을 맡겼다. 그가 어디가느냐며 물었다. 날 아줌마로 아직 생각하고 있을까봐 선보러간다고 말했다. 내가 아줌마아닌게 그렇게 충격적이었나? 그가 씁슬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이제는 아줌마 소리는 안하겠지.. 그가 내 얼굴을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화장이 잘못되었나..? 괜히 신경이 쓰인다.

백수: 아침 일찍 그녀의 만화방으로 달려갔다. 뽀얗게 화장한 그녀 모습이 아름다웠다. 용기를 내어 어디가냐고 물었다. 선보러 간다고 했다. 슬펐다. 미웠다. 밝히는 여자니 이번달내로 시집을 가버릴것 같은 불안감이 밀려왔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 진하다 싶게 화장한 그녀 얼굴이 꼭 헤픈 술집여자같이 보였다.

만화방아가씨: 친구가 예쁜 드레스를 입고 사랑하는 남자와 행복하게 그 둘만의 인생길을 떠났다. 사랑하는 맘에서 꾸밈없이 나오는 행복한 웃음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맑았고 아름다웠다. 그런 그 둘앞에 내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축하는 해주었지만 왠지 내마음한구석이 공허하다. 만화방으로 돌아왔다. 그 백수가 내가 늘 앉아 있던 자리에서 졸구 있었다. 내가 졸던 모습도 저러했을까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가 날 쳐다봤다. 고마움에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석이 날 보더니 "오늘 선본 남자가 굉장히 맘에 들었나 보죠..? 입이 다물어지지가 않네.." 대뜸 이렇게 말했다. 저 백수녀석은 좀 좋아질려 하면 꼭 먼저 초를 친다. 기분이 나빠서 다다음주에 시집갈 날을 잡았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가 한참 머뭇거리더니 "그럼..으..하여간 시집 잘가쇼.. 아줌마..! 그리고 오늘 번돈 8만 칠천 구백 구십원하구 아까 신간 값치루고 남은 삼천오백원 여기 서랍에 넣어 두었소.. " 그리구선 홱 나가 버렸다. 뭔가 급한 볼일이 있는걸까 아니면 내가 늦게와서 삐진걸까..?
오늘 만화방 봐준거에 대한 고마움은 다음에 해야겠다. 그 백수녀석 여전히 속하나는 좁은거 같다.

백수: 그녀가 선본다는게 분했다. 어떤 녀석이 만화책값으로 10원짜리 스무개를 냈다. 열받는데 석유를 붓는거 같았다. 그 중 한개를 냅다 그 녀석한테 던졌다. 근데 이 녀석이 쉽게 피해버렸다. 괜히 10원만 잃어 버렸다. 그녀 방을 살며시 열어 보았다. 깨끗하게 정돈된 자그마한 방이었다.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종일 그녀가 *나게 맘에 안드는 놈이 선보는 자리에 나오라 기도했다. 근데 뭐가 기분이 좋은지 그녀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절망의 벽을 느꼈다. 열받으니 말이 술술 나왔다. 흑흑.. 그녀가 다다음주에 시집을 간댄다. 나는 어떡하라고 .. 눈물이 앞을 가려 정신없이 뛰쳐 나왔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그녀가 너무 야속했다.
  
5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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