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2부 (15)

자취생: 한판 붙었다. 그건 차라리 혼신을 다한 필사의 사투였다. 녀석의 삑사리에 웃음이 나왔다. 침착하자. 공이 이쁘게 모였으나, 각이 얇다. 내리찍기를 할 수 밖에 없다. 그게 성공한다면 적어도 서너개정도는 가볍게 몰아칠 수 있다. 그리고 쉬운 쓰리가락으로 게임 끝. 3대0에서 4대3의 기적같은 역전을 할 수 있다. 폼을 잡았다. 녀석의 견제 동작이 들어왔다. "아저씨! 150이 맛세 찍네예." 픽... 얼라이요? 삑사리! 녀석에게 너무 좋은 공을 주었다. 녀석이 내리 아홉개를 쳤다. 독한 놈. 그리고 50도 코후비며 친다는 기본우라가 떴다. 게임 끝이었다. 두시간에 걸친 사투는 결국 나의 패배였다. 으... 삑사리가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불알과 우라는 주지 말라. 그런데 난 그 두개를 동시에 주고 말았으니...나의 패배를 인정했다. 녀석이 또 전화를 한다. "내다. 내 또 이깄다. 오늘 저녁 사줄테니 나와라." "애인있는 놈은 조겄다!" 비꼬듯 말했다. "배아프면. 너도 만들어 임마."

친구애인과 함께 저녁을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모님과 과일을 먹으며 비디오를 한판 때리고 있는데, 어머니의 눈초리가 수상쩍다. "니, 서울에서 여자 사귀제?" 어머니의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와. 사귀모 어때서..."아버지도 거드신다. 아직 영문을 모르겠다.
"오늘 서울에서 어떤 여자한테서 전화가 왔데이. 서울에서 여기로 전화할 정도면 사귀는 여자아니겠냐?"
"자식이 날 닮아서 인기는 좋구만!"

누가 나한테 전화를 해? 서울에서 나한테 전화할 여자가 있나? 혹시 여기 친구들이 장난친거 아닌가?

지난 설날에도 한번 우리집에 (어머님. 안녕하세요. 저 현재 애인인데요. 현재 내려왔죠? 제가 미안했다고 말좀 전해주시겠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전화가 와가지고 낭패를 당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요 앞 동네에서 찍은 여자한테 퇴짜맞고 괴로움에 몇마디 한걸 녀석들이 바로 놀려 먹은 거였었다. 그때는 용이 애인의 짓이었다.

"엄마. 혹시 서울말이 어눌하지 않던가요?"
"아니. 아주 부드럽던데... 좀 떨긴 하더라." 부모님 앞에서 여자친구얘기는 어쩐지 어색하다.
이것들이 정말! 이번에도 제일 의심이 가는 건 오늘 당구이긴 용이녀석의 애인이다. 장난이면 내일 죽어!
밤에 잠자리에 드는데 오늘 전화한 서울여자가 누군지 궁금했다. 그리고 며칠 만화방 그녀를 못봐서 였을까. 그녀생각이 많이 난다. 모래쯤 올라가야겠다.

만화방총각: 후후. 소설제목을 바꿔야겠다. "애들은 가. 뱃가죽이 타는 밤."은 내가 생각해도 유치하다. 그냥 "타는 밤"으로 해야겠다. 있어 보인다. 오후에 혜지씨의 모습에 힘이 없어 보인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바늘을 든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 나의 어슬펐던 행동을 기억하고 있는 건 아닐까? 미안하다. 나는 이제 다 잊어버렸는데...
오늘은 정경이한테 가지를 못했다. 어머니께서 오늘 저녁에 집으로 오라고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혹시.
"혜지씨? 내일은 오전에 나와 주실 수 있으세요?" 그녀의 긍정적인 답을 받고 열쇠를 주었다.
일찍 문을 닫았다.

백수아가씨: 단골 그녀석이 내 어릴 적 그리운 추억을 공유하고 있는 놈이란게 믿기지 않는다. 철모르고 녀석에게 시집간다고 했던 그때의 내 맘이 사랑은 아니었겠지만, 그래도 난 그때의 기억을 첫사랑의 느낌이라 생각하며 지금껏 살아왔었다. 이상하다. 그냥 어릴 적 친구라 생각하고 사귀어버려?
좀 분하고 추억에 대한 느낌이 깨져서 허탈했다. 그러나 내 맘은 그가 지금껏 어떻게 살았으며, 아직 나란 존재를 기억하고, 그런 나를 만나면 어떻게 대할까?라는 생각들로 채워져 가고 있었다.

자취생: 엄마한테 내일 올라간다고 그랬다. "니. 어제 전화 온 여자 때문에 일찍 올라 갈려고 그러는 거지?"
"마지막 면접시험 공부해야지요."좀 뜨끔하다.
우리 어머니께서 떡을 만드시고 계시다. 분명 내일 내가 들고 갈 짐 속에 저 떡이 들어있을 것이다. 내가 자기자식은 자식인가 보다. 점심때 친구들을 만나보았다. 지지배들한테 혹시 어제 우리집에 전화했었냐고 물어보았다. 모두들 배째라다. 아무도 그런 짓 안했다고 했다. 그전화 때문에 부모님께 낭패를 당했다고 했더니 "그래?"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무래도 애인없는 날 놀릴려고 장난친 것 같은데 단서가 없다.
오후에 집에 혼자 있는데 전화가 왔다. 받았는데 아무말 없다가 끊는다. 뭔가 느낌이 왔다. '녀석들이다.'
조금 있으니 또 왔다. "여보세요?...여보세요. 말씀하세요."
또 왔다. "여보세요? ... 용이냐? 아니면 그 놈 애인이냐?"
네번째로 왔다. 또 말이 없다. 짐작이 가서 다짜고짜 말해버렸다.
"난 네가 누군지 알고 있다... 그래이~"
"예?" 전혀 생각지 못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었다.
그 '예?'란 대답 한마디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누구야? 용이 애인목소리는 아닌 것 같았는데... 다른 앤가?

만화방총각: 내 예상이 맞았다. 어머닌 내일 선보라고 하셨다. 내일 입을 양복을 건네 주셨다. 깨끗하게 드라이크리닝 되어 있었고. 그 속에 와이셔츠 또한 새 것으로 깨끗해 보인다. "내일 점심때 **호텔 앞에서 보자." 먹을 것도 좀 챙겨주셨다. 그런데 별로 선보기가 싫다. 아침에 만화방 문열기 전에 양복을 입었다. 만화방은 좀 늦게 열었다.
혜지씨는 어제 내 부탁처럼 일찍 왔었다. 저번 일이 아직도 생각이 났을까? 어제 준 열쇠를 바로 건네준다.
"오늘은 양복을 입으셨네요. 멋있네요." 혜지씨가 내 모습에 대해 좋은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그 말이 별로 듣기가 좋지 않다. 난 지금 모르는 어떤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이기에...
어머니께 곧 말해야될 것 같다.

백수아가씨: 만화방에 가니 이병씨가 양복을 입고 있었다. 단정하고 멋있어 보인다. 처음 볼 때부터 이병씨는 보통의 만화방주인아저씨들과는 조금 틀린 귀공자느낌의 무언가가 있었다. 밖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이 당당해 보인다.
후후. 비교된다. 예전에 내 짐을 들어주고 뒤돌아선 녀석의 떨고 있었던 모습이 떠 올랐다. 초라한 모습이었지만 감싸주고 싶은 모습이었다.
만화방에 손님이 별로 없다. 심심하다. 단골녀석이라도 있으면 라면이라도 끓여 먹는 건데.. 전화나 해볼까?
내 지갑 작은 쪽지에 그 녀석 집 전화번호가 적혀있다.
"여보세요?" 앗 녀석같았다. 깜짝 놀라 전화를 끊었다. 다시 진정을 하고 한번 더 해보았다. 말씀하면 내가 누군지 알겠냐? 재밌네. 한번 더 해보았다. 엥? 용이는 누구야? 겨우 세번에 화를 내네. 또 해보았다.
"...너 용이지? 그래이씨. 내 애인없다. 너 잡히면 주거!"
"예?" 나도 모르게 대답이 나오고 말았다. 놀라서 전화를 끊었다. 황당한 녀석의 대답을 듣고 무심결에 말이 나오고 말았다. 앞으로 녀석한테 전화할 일이 생기면 예의를 갖추어야겠다. 잘못하면 맞아 죽을 것 같다.
그나저나 이 녀석이 언제쯤 올라올려나?

자취생: 내일 또 서울로 올라갈려니 마음이 심난하다. 또 추억을 되짚으려 앨범들을 꺼내보았다. 즐거운 모습의 나를 보고 웃었다. 잘나온 사진들을 볼 때면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음. 이만하면 미남이군!' 졸업앨범들도 넘겨보았다.
잘나오지 못했다. 웃을걸 그랬는데...
유치원앨범도 넘겨보았다. 그래 이때는 잘나갔었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항상 손잡고 다녔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어릴 때는 그 기억이 별로 떠오르지 않아 유심히 봐두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그 여자아이가 누구였을까?하는 궁금증이 자꾸 생긴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 기억은 바래져버렸다. 국민학교도 같이 들어갔었다. 그때 나이를 한살 더 먹었다고 그 애가 손잡고 가자는걸 뿌리치고 도망갔던 기억이 새롭게 떠오른다. 그러나 기억만 있을 뿐 그녀의 모습은 생각이 안난다.
누구였지? 내 사진 주위의 여자애들을 짚어보았다. '김정미, 박소영, 이지연, 정미자, 최혜지, 하이미, 홍주영,,,.'
에이,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만화방총각: 내 앞에 한 여자가 앉아있다. 예쁘고 착해보였다. 그러나 난 관심을 가질 수가 없었다. 그녀와 같이 있던 시간은 그렇게 길게 가지 못했다.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정경이네 음반점을 찾아갔었다.
"야. 오늘은 정말 멋있어보이네."
"그래?"
"어디 갔었어?"
"응. 집에서 선보라고 해서?"
"...그래? 그럼 선보러 가는 길이야?"
"아니. 보고 왔어."
"벌써? 어때? 맘에 들어?"
"예쁘고 착해보이더라."
"그럼 됐네. 잘하면 국수 얻어먹겠다."
"허. 내가 여기 오는게 싫어?"
"아니. 왜?"
"야. 내가 장가가고 나면 여기 올 수 있을거 같냐?"
"그래서?"
"혼자 있는게 싫다며."
"그래. 싫어."
"누구 나 말고 여기 오는 사람 있어?"
"없는데..."
"그럼 뭐야?"
"그래. 너 결혼하지말고 매일 여기나 찾아오곤 했음 좋겠다."

만화방에 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오늘 선본 여자 맘에 들지?"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저. 엄마. 전 맘에 둔 여자가 이미 있어요."

백수아가씨:밤에 이제는 완연히 녀석을 줄 작정으로 목돌이를 짜고 있다. 괜히 웃음이 나온다. 옷을 말릴려면 제대로 말리지. 늘어난 목이 안스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뜨개질을 하고 있는데 아빠가 노크를 하셨다. "안자니?"
"예. 아빠. 들어오세요." "어 뜨개질 하는구나? 요즘 젊은 애들 뜨개질하는거 참 보기 힘든데.."
"왠 일이세요? 엄마는 주무세요?"
"응. 혹시 초코파이 어디 놓아둔지 아니?"
"예? 그거 냉동실 안에 있을 거에요."
"그래? 고맙다. 참 그거 누구 줄려고 짜는거니? 혹시 나냐?"
"호호. 죄송해요. 담에 꼭 아빠 것두 짜드릴께요."
"그래. 좀 섭섭하다. 잘 자라."
아침에 일어나니 겨울까치의 울음소릴 들었다. 누구 반가운 사람이 올려나?

자취생: 아침부터 서둘렀다. 날이 밝을 때 서울에 도착하기 위해서다. 먹을게 푸짐하게 든 박스가 탐스럽지만 또한 부담스럽다. 겨울 옷 몇가지를 넣은 옷가방을 포함해 짐이 모두 세개다. 에구 저걸 어떻게 다 들고가나?
여기야 아버지가 태워주면 되지만, 서울서는 좀 힘들겠다.
서울에 도착했다. 시간이 두시 반쯤 되었다. 빨리가면 혜지씨를 골목에서도 만날 수 있겠다. 택시를 잡는데 짐 때문에 태워주질 않는다. 목숨을 걸고 모범택시를 잡았다. 모범택시는 태어나 처음 타봤다. 아저씨가 내려 짐까지 실어준다. 좋네. 뒷 자석에 앉았다. 꼭 사장이 된 기분이다. 차비를 계산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범택시를 탔건만 혹시나 하고 만화방 근처에서 내렸다. 후회했다. 그녀도 볼 수 없었고 짐도 많이 무거웠다. 박스는 어깨에 메고, 내려 갈 때 들었던 가방은 다른 어깨에 걸었다. 그리고 남은 손으로 옷가방을 들었다. 거의 우리집쪽 골목으로 꺽이는 부분까지 왔다. 맞은편에는 그녀가 사는 집으로 가는 골목이 있다. 한번 느껴볼까? 짐을 내리면 다시 들고 가기가 힘들다는걸 알지만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녀 집 쪽의 골목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하하! 그녀가 바로 앞에 서서 날 빤히 쳐다보고 있는게 아닌가? 내 기분이 지금 뭘 훔쳐보다 들킨 기분이다.
그녀의 한손에는 뜨개질도구가 든 종이가방이 들려있었다. 계속 만화방에서 뜨개질을 했었나보다.

만화방총각: 엄마가 오늘 아침에도 전화가 왔다. 내 마음에 둔 여자가 누군지도 물으신다. 뭐 하는 애냐? 나이는 몇살이냐? 나한테 소개를 시켜야 되지 않냐? 많은걸 물으셨다. 하지만 난 자신있게 정경이를 소개시킬 수가 없다.

백수아가씨: 만화방 갈 시간이 다가왔다. 오전내내 뜨개질만 한 것 같다. 목돌이의 대상이 결정되고 나니까 한결 빠르게 진행이 된다. 이제 만화방을 가야겠다.
우리골목 끝자락에서 내 첫사랑이라 생각이 드는 사람이 보였습니다. 한쪽 어깨에 든 박스 때문에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고, 겨울 외투가 낯선 것이었지만 그 모습은 예전에도 본 모습이었습니다. 참 무거워 보이는데 잘도 들고 갑니다. 내가 여기서서 그 사람을 보고 있다는 걸 모르는 듯 그저 묵묵히 걸아가고 있습니다.
박스야 떨어져라. 아니면 미끄러져 넘어지던가? 그냥 내가 고함이나 질러볼까? 이제 그도 설레임으로 다가와 있었다. 이런 내 맘이 전해졌을까? 그가 가던 걸음을 멈추고 박스를 내려놓는다. 힘들었나보다. 어깨에 걸친 가방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맺힌 내 모습이 추억되어 아름답다.
"에..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했다.
"에..예."
"지금 올라오시나보죠?"
"예.."
"짐이 참 많네요?"
"예."
"뭐에요?"
"그냥 옷하고 먹을거..."
"무거워요?"
"조금.."
"제가 좀 들어드릴까요."
"...."
"안무거워요?"
"아니 무겁긴한데... 만화방에 가는 길 아닌가?"
"조금 늦어도 되겠죠. 들어드려요?"
"에. 예"
"그 가방 이리주세요."
"이건 좀 무거워요. 옷가방이나.."
"아니 그 가방주세요. 별로 안무겁네요." 참 많이도 후회했다. 그나저나 이 무거운걸 어떻게 세개씩이나 들고왔냐?
가방을 힘겹게 들고 녀석을 따라 갔다. 우리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녀석의 자취방이 있었다. 녀석이 자기 방문을 열쇠로 열더니.
"이제 이리주세요."
"아니 안까지 들어드릴께요."
"예?" 생각해보니 남자혼자 사는 방까지 들어갈려고 했다.
"그럼 여기 놔 둘께요. 가보겠읍니다." 그가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닫히지 않은 방문 틈새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넓지도 좁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지저분하지도 않는 그러나 포근해 보이는 그의 방안에서 녀석이 방금 막 들고 들어간 박스를 힘차게 찢었다. 그리고 뭔가를 꺼내어 가지고 나왔다.
"이거 드세요."
"이게 뭔데요?"
"떡이에요."
"예?"
"그때 보니까. 떡 좋아하시데요 뭐."
  
16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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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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