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2부 (17)

만화방총각: 만화방에 돌아오니 혜지씨가 미소지으며 뜨개질을 하고 있다. 아마 저 뜨개질의 주인공을 생각하고 있나보다. 누굴까? 혜지씨가 글 잘 읽었다면서 글자 틀린거랑 어색한 부분에 토를 달아놓았다고 했다. 내 글의 느낌이 어땠을까?
"괜찮네요. 그런데로 성(性)에 대해서 주관이 잡혀있더군요."
"하하. 그래요?"
"취미로 글을 쓰시는가봐요. 경영과 나오셨다고 했잖아요."
"그냥. 내 책한권 내고 싶어서요. 이거 책으로 출판해도 괜찮겠어요?"
"..."
"별루에요?"
"그게 아니라, 그 공책 한권 분량으로 책이 만들어질까 해서..."
그랬다. 난 가장 큰 문제점을 간과하고 있었다. 공책 40페이지정도의 분량으론 아무리 그림을 잡아넣고 다른 어떤 짓을 해도 책으로 만들어지기 힘들겠다.

백수아가씨: 녀석이, 아니다 이제 현재라 불러주어야겠다. 한시간정도 지나니까 나갈려고 했다. 접시의 떡은 깨끗이 치워져 있다. 쿠쿠 내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온게 아니래. 어쩐지 예전에 내가 여기 만화책보러 올 때부터 눈에 띄더만.. "아니에요. 천오백원만 주세요." 그래 알 리가 없겠지. 어쩌면 내가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때를 기억 못할지도 모른다. 괜한말 하지 말자.
이병씨가 왔을 때 그가 무엇 때문에 그 글을 쓰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문제를 그는 몰랐던 거 같다. 책이라... 국문학도였던 나도 아직 그런 생각을 못해봤는데... 나도 글이나 쓰는 건데 그랬다. 그런 꿈이라도 품고 산다는 것이,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거 같다. 이병씨 그는 꿈처럼 살 수도 있는 사람같아 보인다.

자취생: 에이, '나 알아요?'도 모자라서 이제는 '나 잘 모르죠?'다. 어떻게 보면 그녀는 나에게 참 다정한 것도 같은데, 또 한편으론 상당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그래 난 당신을 잘 모른다. 그래서 자꾸만 다가서고 싶다.

만화방총각: 밤에 정경이와 전화를 했다. 이제는 일상처럼 그녀가 내 곁에 있다. 일상이란 잘 못느끼다가도 그것이 깨져 버릴 땐 상당한 두려움과 괴로움으로 찾아온다.

백수아가씨: 드디어 성탄절이 이번주금요일로 다가왔다. 올해는 산타할아버지가 무슨 선물을 나에게 안기실까? 내가 올해 착하게 살았나? 후. 그렇게 착하게 산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나쁜 짓도 하지를 않았다. 단단한 줄에 매달린 풍선같은 것이라도 받았음 좋겠다. 거리의 크리스마스 캐롤이 이 아낙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구나.

자취생: 우쒸. 면접일자가 연기됐다. 이 회사는 심심하면 연기다. 졸업하기 전에는 진로가 결정되어야 하는데...
성탄절엔 집에 내려가서 친구들과 놀까? 아니면 이 골방에서 티비나 볼까? 분명히 작년같았으면 집에 내려가 친구들과 성탄절을 보내고 싶었겠지만 올해는 어이해 이렇게 내려가기가 싫을까?

만화방총각: 거리에 성탄절 분위기가 내 마음을 들뜨게 했다. 정경이의 음반점에서 캐롤이 난처하지 않는 모습으로 정겹다.
"정경아!"
"왜?"
"흠. 너 우리 부모님 한번 만나볼래?"
"내가 왜?"
"응. 자꾸 선보라 그래서 맘에 둔 여자가 있다고 그랬더니, 소개시켜 달라고 하더라."
"훗."
"왜? 싫어?"
"이거 지금 프로포즈 맞지?"
"어... 그렇네..하하"
"싫어."
"...으이씨. 너 내가 싫은거야?"
"아니."
"그럼 뭐야? 그냥 친구인거야."
"아니."
"내가 말이야. 널 옛날에도 사랑하고 있었던거 아니?"
"후후. 난 지금도 그런데."
"정말? 농담처럼 말하지만 그렇구나. 그런데 왜 싫어?"
"몰라서 물어? 더이상 초라해지기가 이제는 싫어."
몰라서 물었다. 그냥 나따라 우리집에 가서 부모님 만나보면 되는거지.
"어떤 부모가 이혼한 여자 데려와서 이 여자하고 결혼하겠습니다. 그러는걸 좋아하겠니."
"..."
"너네 부모님의 난처한 눈빛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그냥 좋은 사람이다. 싶으면 마음을 줘라."
한참 만에야 난 입을 뗄 수가 있었다. 엄마의 모습이 날 많이 괴롭혔기 때문이다.
"그게 자신이 없는거니. 내가 옆에 있을 건데."
"호호. 너 착각하고 있구나. 널 사랑하지만 네가 내 마음속에서 대단한 존재는 아니야."
"우쒸. 나 갈래. 내일 다시 올께."

백수아가씨: 오늘은 현재가 오지를 않았다. 만화방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울려퍼지는데, 내 맘은 좀 허전하다. 이병씨도 돌아올 시간이 지났는데,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저녁 8시가 지나서야 집에 가서 잘테니 만화방 잠궈 놓고 가라는 전화
가 왔다.
사람들도 별로 없다. 목도리가 이제 거의 완성이 되어간다. 녀석에게 이걸 줘 말어?

자취생: 청담동 가로수에 많은 불빛들이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었다. 곳곳에 성탄절을 축복하는 음악이 새어 나오고 있다. 오늘은 만화방에 가지를 안했다. 겨울양복 한벌 사러 나왔다가 거리풍경에 이끌려 여기까지 왔다.
많은 연인들이 즐거운 듯 가로수 불빛들을 그들의 눈망울에 담고 있었다. 갤러리아 백화점 쪽으로 올라오는데 참 신선하게 눈 안에 들어오는 무엇을 보았다. 내 자취방보다 큰 유리창속에 은은한 빛으로 감싸인 채 순백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혜지씨보다 덜 예쁜 마네킹이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헤 그래도 예쁘다. 그리고 졸라 비싸겄다.
그 앞에서 잠시 명상에 잠겼다가 발걸음을 계속 백화점 쪽으로 재촉했다. 백화점에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아임에프시대 맞어? 그냥 점원이 어울린다고 거짓말 친 瀛뮌?한벌 사서 백화점을 나올려고 했다. 일층이다.
내 책상보다도 작은 유리관 안에 참 혜지씨한테 어울리겠다 싶은 핑크빛 손장갑에 눈길이 갔다. 아직 내 차가왔던 손바닥에 닿았던 그녀의 두손가락, 그 따뜻한 느낌을 난 잊지 못하고 있다.
"이거 얼맙니까?"
"16만 5천원입니다."
뜨악! 원래 여자 장갑은 그렇게 비싼가? 저 조그마한게 내 양복 반값이다. 그냥 집에 가자. 울엄마가 저걸 사서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에게 선물했다는 사실을 알면 얼마나 꺼이 꺼이 우실까?
버스에 자리를 찾아 앉았다. 비싼거라 그런지 포장이 예쁘다. 그나저나 이번 성탄절은 짤없이 내 골방에서 티비나 봐야겠구나. '미쳤지! 내가.' 백화점 현관을 나오는데 떨이로 목돌이를 팔고 있었다. 내 목이 허전한데 잘되었다. 7000원짜리 하나를 샀다. 그런데 그 순간 목도리같은걸 짜고 있던 그녀의 하얀 손이 다시 떠올랐다.
다음달 한달은 허리띠를 더욱 졸라메야 겠다.

만화방총각: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렸다. 내가 마음에 둔 여자가 이Ⅳ蓆箚?.. 항상 내 편일 것만 같았던 아버지도 나보고 미쳤냐고 했다. 밖에 내놓았더니 네가 외로움을 타서 그런 거라며 내일이라도 당장 집으로 들어오라고 하신다.
"진정으로 이혼녀는 안되겠습니까?" 돌아앉은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다.
"니가 뭐가 아쉬워서... 니가 못난게 뭐냐?"
"취직도 못해서 부모님 의지해 만화방하는 내가 잘난 건 뭡니까?"
"훗. 새해가 되면 내 바로 취직시켜주마. 넌 취직 못한게 아니야."
"알았습니다. 다른 여자 찾아보겠습니다."

백수아가씨: 어라? 만화방문이 닫혀있네. 열쇠를 안가지고 나갔었나? 내가 가지고 있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조용하다. 그냥 나갈려고 했는데... 쿠쿠 녀석이 왔다. 바로 내 첫사랑...
근데 목돌이는 왜 하고 온거야? 내가 이걸 주기가 좀 그렇잖아. 내일쯤이면 완성될 것 같은데...
저녀석 만화책 다 볼 때까지만 내가 만화방 주인행세를 하지뭐.

자취생: 오늘은 만화방에 한동안 손님이라곤 나혼자였다. 만화방이 예전처럼 그렇게 따뜻하질 않았다.
"현재야. 아니 현재씨 커피한잔 할래요?"
저 아가씨가 지금 뭐라 그러는거야? 그때 라면끓이던 그곳에서 물을 끓이다, 뭔 뜬금없는 소리더냐.
"어이. 커피한잔 안할래요?" 나? 목도리로 목을 감아 눈밖에는 안보였겠지만 그녀는 내 표정에서 "나? 저 말입니까?"라는 걸 읽었나보다. "여기 누구 다른 사람 보여요?" 헤~ 그럼 앞에 현재는 내 이름이었단 말이지. 보던 만화책을 팽개치고 그녀가 있는 카운터 안으로 쫄래쫄래 다가갔다.
햐. 라면은 못끓이더니 커피는 기가 막히네. 별로 많은 대화는 못했지만 꿈결같은 시간이었다.
그런데 나갈 때 그녀가 또 뜬금없는 말을 했다. 그것도 분명 내가 듣기에 반말이었다. "나 정말 모르겠니?"

만화방총각: 어머님을 설득시키는데는 힘들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아버지도 그럴 줄은 몰랐다. 아주 낯선 표정을 보았다.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아침에 편지한장 남겨두고 집을 나왔다.
'집에 들어오겠습니다. 잠깐 바람 좀 쏘이고 올께요.'

"정경아."
"또 왜?"
"어제 우리부모님께 네 얘길 했어."
"후후, 그래? 뭐라 그려셔?"
"관심은 있나보다?"
"아니 별로..."
"아주 딴 사람들같아 보였어. 나보고 미쳤냐고 그러던데.."
"흠. 쯔쯧 괜한 짓을 했네..."
"그래. 괜한 짓 했지. 그래도 맘은 편하다."
"뭐가?"
"부모님 말씀에 따르기로 했거든."
"그래 잘했어."
"근데, 너한테 장가가겠단 마음은 굳어졌어."
"체. 네 맘데로구나."
"너 정말 나한테 시집올 생각없냐?"
"없는데..."
"정말?"
"..."
"말이 없군. 정말 싫은가 보구나. 네가 그냥 좋다는 말한마디만 해주면... 난 각오가 섰는데."
"..."
"쩝. 할 수 없군."
"야이 바보야. 그렇게 모르겠니! 난 니가 모르는 한남자의 여자였었단 말이야.
이미 순결을 그 남자에게 바친 여자란 말이야. 그런 나를 니네 부모님들이 좋아할 것 같애?"
"너 우리 부모님하고 살거니?"
"내가 이혼녀인데도 너는 내가 좋니?"
"그래 좋다."
"내가 순결을 잃었는데도? "
"여자들도 순결이라는 걸 따지는구나. 풋 그게 뭔데? 그래...
그 순결이라는거 나하고 기억을 공유한 시간만은 지켜주길 바래. 하지만 과거의 페이지는 넘겨졌어."
"...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
"이제 새로운 종이 위에다 내 이름만 쓰면 되는거란 말이지."
"후훗. 그 말은 더 모르겠는데?"
"하하. 내 소설마지막에 썼던 말이야. 하하하."
"그냥 분위기가 이상하게 되어 버렸네. 이게 아니잖아."
"그렇네. 에 나 집 나왔어. 어디 여행이라도 가고 싶은데..."
"흠... 나랑 같이 갈래? 멀리... 따뜻한 남쪽으로..."
"그래. 넌 내 맘을 이제야 아는구나. 새해는 따뜻한 남쪽에서 볼까?"
"그럴까? 성탄절은 어디서 보내지?"
"어느 낯선 고장의 성당은 어떨까?"
"그것도 괜찮겠다. 그럼 나 준비하러 집에 갔다올테니까. 가게 좀 봐줘."
"지금?"
"그럼 아니야?"
"빨리 다녀와."

18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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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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