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2부 (4)

백수아가씨: 아침에 또 쌀사러갔다. 엄마는 그냥 쌀한가마니 사다가 먹지, 왜 조금씩 사는지 모르겠다. 우리 아버지또 박카스에 초코파이드시고 출근하셨다. 정이 참 넘치는 아침식사다. 그리고 쌀은 왜 꼭 아침에 떨어지는지 모르겠다. 쌀사러 가는데 만화방앞에 아르바이트생구한다는 글을 보았다. 글자가 참 이쁘다. 만화방아저씨가 썼나보다.

기회다. 쌀을 집에 갖다놓고 바로 만화방으로 갔다. 만화방에 아무도 없다. 나한테 관심도 가지고 있는거 같은데 백프로 날 채용할 것 같다. 근데 반응이 시원찮다. 누구 생각해논 사람이 있다고 그러는데... 오늘 저녁쯤 다시 한번 와줄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야 자존심상하네... 옛날같으면 두말않고 돌아섰을텐데, 백수고 만화방아저씨도 맘에 들고해서 참았다. 저녁먹고 갔더니 내일오후 3시부터 나오라고 했다. 그럼 그렇지 괜히 한번 튕겨본거구나.

오후 3시부터 끝내는 시간은 정해지지 않았다. 그냥 하루하루 시간당 이천원으로 해서 계산하자고 그랬다. 좋다고 했다. 야 나도 직장이 생겼다. 월급받으면 아예 그돈으로 립스틱 종류별로 다 사버려야지...

자취생: 수업도 일찍 끝나고 내일 집에 내려갈 준비를 할려고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만화방앞 구인광고는 아직 붙어 있다. 그녀 때문에 보기시작한 만화가 재밌다. 만화방을 들어갔는데, 만화방아저씨가 혹시 아르바이트할 생각없냐고 물어보았다. 해버릴까? 하지만 학교 때문에 힘들거같다고 말했다. 아저씨가 이상한눈빛으로 학생이었냐고 물었다. 괜히 기분이 그렇다. 학생맞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 대답을 듣고 "아 그랬어요. 그럼 오전에온 사람으로 해야겠다. 난 학생이 참 맘에 들었었는데, 좀 아쉽네요."라고 그아저씨가 말했다. 뭐야 벌써 구했어? 누굴까?
나보다 아주 나이어린 고딩이나 아니면 아예 나보다 나이 훨씬 먹은 유부남이었음좋겠다. 그 아르바이트녀석이 단골인 그녀한테 관심가질까봐 두렵다. 학생이고 뭐고 그냥 한다고 그럴껄. 그녀가 오후늦게까지 오지를 안했다. 할 수 없다. 다음주에 봐요.

만화방총각: 단골아가씨를 아르바이트생으로 결정했다. 그 무지하게 만화좋아하는 녀석이 학생이랜다. 그럼 그때 그머리로 학교를 갔단말이야! 그 뻔뻔한 배짱이 놀랍다. 오히려 잘됐다. 단골 그아가씨 꾸밀때는 상당히 예쁘던데. 생각지도 않던 그 아가씨하고 이제는 알게되는구나. 조금 설레인다.

백수아가씨:후후. 내일부터 만화방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구나. 만화방 주인아저씨하고는 자연스럽게 알게되겠지. 어쩌면 뭔가 사연있는 인연이 될지도... 어릴적 첫사랑. 고등학교때의 선생님을 향한 짝사랑. 대학때는 아쉽게도 가슴을 절이게 한 사연이 없었는데..기대된다. 엄마한테 나도 취직했다고 했다. 취직이고 뭐고 빨리 시집이나 가랜다.
만화방에 취직했다고 그랬다간 당장 팔려갈 거 같아 그말은 차마 못했다. 밤에 잠자리에 드는데 나를 스쳐간 그래도 기억에 남는 사내들을 떠올려보았다. 제법 되는구나. 만화방아저씨가 떠올랐다. 그리고..그 요즘 자주 눈에 띠는 낯이익은 녀석도 이상하게 떠올려졌다.

자취생: 집으로 내려가는 버스에 앉아 바깥을 보고 있다. 벼베기를 끝낸 논바닥이 알몸을 드러내 부끄러운듯 움츠려있다. 집으로 내려갈때면 항상 마음이 울쩍하다. 다시 올라올때의 아쉬움을 먼저 느껴서 그런가보다. 더군다나 아르바이트생이 생긴마당에 그녀를 만화방에 홀로 남겨두고왔다는 생각이 날 불안하게 했다. 그러나 집에서 부모님을 만나고 친구들을 만나고 하니 울쩍한 마음이 가셨다.
몇달동안 비어있던 내방에서 잠자리에 들었다. 온기가 있는걸루 봐서 어머니가 나온다고 낮부터 보일러를 켜놓았었나보다. 자취방과는 다른 아늑함을 준다. 내 어릴적, 사춘기적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방이다. 고등학교때 써놓은 시집하고 사진첩을 꺼내보았다. 유치한 시와 까까머리의 내모습이 귀엽다. 중학교, 고등학교 앨법들도 보았다. 다 남학교만 나와서 그렇게 볼건없지만 소식이 끊긴 친구들의 모습이 새롭다. 하하 기계과 들어가서 대학졸업앨범도 남자들만 있을줄 알았는데... 여자하고 나오는구나. 빨리 졸업앨범을 보고싶다.
그리고 우리동네 그녀. 그녀는 지금쯤 뭐하고 있을까?

만화방총각: 아침에 만화방을 보면서 억지로 내 소설의 글을 이어갔다. 오늘 내마음속 그녀의 음반집을 찾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설레임인지 맘이 떨렸다. 오후에 단골아가씨가 왔다. 약속시간에 정확히 맞게 왔다. 정장차림은 아니지만 다른날과는 다르게 깔끔하고 세련된 옷차림이다. 화장은 안했지만 얼굴이 뽀얗고 이쁘다. 만화방일에 대하여 가르쳐주었다. 요즘은 주문하는 사람이 없지만 그래도 모르니 라면끓이는 곳도 가르쳐주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최혜지라고 그랬다. 또 나이는 26살이라고 그랬다. 놀랍다. 난 한 스물두세살로 밖에는 생각안했는데... 말놓기가 그렇다. 나보다 한살밖에는 적지가 않다. 나보고 뭐라 부르면 되냐고 물어봐서 그냥 이름부르라고 그랬다. 이름 가르쳐줄려고 그랬는데 갑자기 병신이라고 욕을 한다. 뭐 이런게 다 있냐? 좋게 봤는데... 생각해보니 간판때문인거 같다. 이 아가씨 우리단골이었지. 그렇게 생각할만도 하다. 다시한번 애써 떼어놓은 그 '신'자 붙인놈이 밉다. 잘해보자며 내이름은 이병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신 이병이라고...

백수아가씨 :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취직된거 때문에 배짱으로 밥차려 달라고 엄마한테 때쓰다가 쫏겨날뻔 했다. 결국 엄마아침까지 내가 차려드렸다. 엄마가 아침안드신걸루 봐서, 오늘도 아빠는 초꼬파이에다 박카스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오후가 되어 만화방에 갔다. 학교다닐때처럼 조금 꾸몄다. 화장도 일부러 옅게 하고 갔다. 설레이는 맘으로 만화방문앞에 섰다. 세시가 될려면 아직 이십분이 남았다. 퀸카였다고 자부한 내가 약속시간보다 무려 20분이나 일찍 들어간다는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만화방앞에서 서성거렸다. 내가 붙혀논 신자가 뿌듯해보인다. 시간이 되어 만화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만화방아저씨가 반갑게 날 맞이해주었다. 만화방보는일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있었다. 빌려가는 사람 장부를 보여도 주었고, 시간당 얼마이며 단골같다 싶은 사람은 삼십분까지는 시간넘겨도 그냥 봐주라고 그랬다. 라면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내가 없을때 라면시키는 사람이 있으면 끓여주라고 그랬다. 그러면서 아임에프때문인지 라면시키는 사람이 없으니 수고스러울 일은 없을것이라고도 했다. 호호. 아직 자기라면 끓이는 솜씨를 모르나보다. 나니까 그때 먹어줬지. 이름을 물어보길래 나이까지 말해주었다. 왜이러는지 몰라? 그의 나이가 알고 싶어서 그랬다. 그는 27살이고 그냥 이름을 불러 달랬다. 이름이 이상한데..불러달래니 할수 없이 병신이라고 한번 불러 주었다. 갑자기 그가 황당한 듯 화난 표정을 지었다. 뭔가 생각하더니 웃으며 자기이름은 이병. 신이병이라 그러며 잘해보자고 했다. 그럼 간판의 이병신은 뭐야? 그때 떨어진 '신'자 일부러 떼어 놓은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취생: 고향방문 이틀째다. 친구를 만나 당구도 치고, 자기 애인자랑도 들었다. 당구를 이기고 애인한테 전화하며 자랑하는 그녀석이 미웠다. 그동안 연마한 날라차기를 시험해볼 절호의 찬스였는데, 사고치기 싫어 참았다.
우끼고 공감되는 이야기를 들었다. 공대생의 삼대 즐겨쓰는 용어. 밥먹었냐? 레포트좀 빌려줘. 저여자 졸라 이쁘지 않냐? 특히 마지막 용어는 진짜 공감이 들었다. 저녁에 부모님과 오붓한 시간을 갖고난 후 내방으로 가서 이번 고향방문의 마지막밤을 맞이했다. 조금 허전한 생각이 든다. 이 기분 때문에 집에 내려올때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오래된 기억의 저편까지 꺼집어 내어 보았다. 유치원앨범과 국민학교앨범을 덜추어보았다. 이 시절에는 그래도 여자친구들의 기억이 많이 남아 있다. 유치원때는 나한테 시집온다는 여자애도 있었다. 오래되어 앨범에서도 누군지 찾을 수 없지만... 하하 나도 잘나가던때가 있었다.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앨범들을 머리맡에 두고 난 잠이 들었다. 잠들기 바로직전에 우리동네그녀의 모습이 떠올려졌다.

만화방총각: 단골아가씨인 혜지씨에게 만화방을 맡기고 친구에게 들은 그녀의 음반집을 찾아갔다. 정경레코드. 쿠 그녀도 자기이름으로 음반집을 개점했구나. 맘을 먹고 찾아왔지만 막상 들어갈려고 하니까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녀는 나보다 삼년이나 일찍 졸업을 했다. 그후도 자주 만나긴 했지만 그녀가 결혼을 하고나서는 일년정도 거의 소식이 끊어진 상태다. 그녀의 음반점에서 조금 떨어진 가로수 뒤에 숨었다. 유리창너머로 그녀가 카운터에 앉아있다. 간혹 들어가는 손님들에게 미소짓는 모습은 예전에 나에게 보여준 미소와 다름없이 밝은 모습이었지만 다시 혼자가 되면 그 모습이 사라졌다. 한참이나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도저히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다음을 기약하고 돌아서야겠다. 날씨가 제법 쌀쌀하다. 청소부의 빗자루에 쓸려가는 낙엽처럼 가을은 이제 이 찬바람속에 내년으로 쓸려가는가 보다. 고개를 돌려 그녀가 비치는 음반집유리창을 한번 더보고 만화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5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
원작자: 이현철


한국 Korea Tour in Subkorea.com Road, Islands, Mountains, Tour Place, Beach, Festival, University, Golf Course, Stadium, History Place, Natural Monument, Paintings, Pottery, K-jokes, 중국 Chin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J-Cartoons, 일본 Japan Tour in Subkorea.com Tour Place, Baduk,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History, Idioms, UNESCO Heritage, E-jokes, 인도 India Tour in Subkorea.com History, UNESCO Heritage, Tour Place, Golf Course, Stadium, University, Paint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