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의 사랑이야기 2부 (12)

만화방총각: 저녁의 어둠이 애처롭게 짙어지고 있다. 답답함에 정경이한테 전화를 했다. 전화기 속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 오늘도 그녀는 일상처럼 그곳에 있었구나. 하하. 녀석이 왔다. 예전에 본 한여름들판의 잡초같이 머리가 엉맘이다. 거울을 안보고 나왔나보다. "아저씨! 혜지씨가 내일은 나온다고 그러던데요." 무척이나 반가운 말을 들었다. 이 말을 들을려고 내맘은 낮부터 그렇게 떨렸었나보다. "근데 무슨 안좋은 일 있었어요? 아프지도 않은거 같았는데... 혹시?" 혹시 뭐? 녀석이 내 맘을 알기나 할까? 황당한 소릴한다. "라면 못끓인다고 핀잔 주었어요?" 쿠쿠 생각하는게 자네다와보인다. "아니에요. 그냥 제가 화를 좀 내어가지고..." 나의 이 말을 듣자 뭔가 큰 불만이 있는 듯 날 째려보고 간다. 내일은 혜지씨가 나오는구나. 다시 며칠전의 그 밝은 모습 속에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오랜시간이 지나 버린 것 같은 그때의 설레이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음 좋겠다.

백수아가씨: 날씨가 많이 춥다. 목있는 니트를 입고 나왔지만 그래도 목이 시리다. 집에 들어가려다 발길을 돌렸다. 털실을 살려고 수예점을 찾았다. 털실은 내가 그것을 멀리하던 사이 엄청 비싸있었다. 이 돈이면 고급 립스틱도 살수 있겠는데... 집에 남아 있는 이달 용돈이 위태하다는 것도 잊고 가지고 온 돈을 다틀어 털실을 샀다. 다시 만화방을 지나쳤다. 털실에 담긴 따스함때문일까? 이젠 초라해져보이지 않는 만화방불빛이 친근하게 느껴진다.

자취생: 밖에 나가야되는데 거울을 보니 내 머리가 엉망이다. 머리를 감아야겠다. 물이 너무 차다. 물이 타이타닉이다. 제대를 하고 나서 외모에 대해 많은 자신감이 생겼다. 남들이 느낄 땐 객기라 해야 옳을 것 같다. 그녀는 내일 만화방에 나온다고 했다. 잘 보일 사람도 없다. 이대로 나가자. 스웨터를 하나 껴입었다. 늘어난 목. 자취생의 비애다. 아무리 깔끔하게 옷을 입고 있어도 티나 스웨터의 목이 늘어져 있다면 그 사람은 분명 자취생이다.

목이 허전하다. 만화방아저씨가 힘없는 표정을 하고 있더니 내말을 듣고 표정이 밝아졌다. 이 아저씨도 혜지씨 찍은거 아닌가? 반반한게 의심이 간다. 하지만 주제를 알아야지. 내가 감히 찍었는데 어디 만화방아저씨 주제에... '근데 무엇 때문에 그녀에게 화를 냈을까?' ("혜지씨 당신을 좋아합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안돼요. 전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여기 단골로 오는 멋있는 그 자취생이 바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아저씨는 절 포기하세요" "제 맘을 몰라주시다니 너무 합니다. 흑흑. 화. 화. 화!")쿠쿠 만화방아저씨를 쳐다보며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기분좋다.

만화방총각: 많은 기대감으로 혜지씨를 기다렸다. 오후 세시가 거의 되어서 그녀가 밝지만 어색한 듯한 인사를 하고 들어왔다. 나도 그녀의 모습처럼 어색하지만 밝게 답해주었다. 혜지씨가 카운터 안 내 바로 옆에서 신간책을 정리하고 있다. 예전처럼 편하게 대하고 싶은데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이 안에 있기가 부담스럽다. 그녀도 뭔가 어색하다. "그때는 정말 미안했습니다." 작은 목소리였지만 떨리는 음의 내 말을 그녀는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죠. 뭐. 다 잊어버렸어요."라고 그 또한 작지만 약간은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 답을 들으니 여기 있기다 더 부담스럽고 어색하다. 그러던 차에 단골녀석이 들어왔다. 그도 분위기를 느꼈을까? 혜지씨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혜지씨. 나 좀 나갔다 올께요." 그녀에게 만화방을 맡기도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갈 때가 마땅치가 않다.

백수아가씨: 예전처럼 만화방을 단지 아르바이트생으로 가면 되겠지 생각했는데 갈 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이 빨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만화방에서 이병씨를 보았다. 반가움보다 낯설음으로 다가온 모습이다. 그가 내 옆에 어색한 모양새로 약간 안절부절하는 모습이다. 미안하다고 하는 그의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내 마음속 느낌표로 다가왔는데, 이제는 물음표다. 그가 예전처럼 어딜 가주었음 좋겠다. 그렇게 지금 분위기는 싫다. 단골녀석이 밝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이병씨와 나의 분위기를 느꼈을까? 그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다. 이병씨가 헛기침을 한번하며 인사를 하고 나갔다. 만화방문을 나서는 그의 모습이 예전처럼 활기차지가 않다. 힘없고 처량해보인다.

후. 녀석이 이병씨가 나가자 나에게 다가왔다. 자기가 나하고 친한 친구나 되는냥 묻는다. "주인아저씨가 혜지씨한테 화내었다면서요? 뭔 일인데요?" 어쭈 이제는 이름까지 부르네.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아까 이병씨가 던지고 간 인사 속의 내 이름을 들었나보다. 그냥 저번처럼 나 알아요? 라고 대답해 버릴까? 그러기에는 이 녀석 얼굴이 너무 천진난만하다. "오늘은 이상한 말 안하세요?" 녀석이 머리를 긁적인다. 그렇게 긁적이니 맨날 머리가 그 모양이지. 오늘은 그래도 단정한 편이구만. 녀석이 한참 머뭇거리더니. "어른들도 누구나 처음엔 어린아이였다. 생떽쥐베리." 쿠쿠 니가 그러면 그렇지. 현상황과는 여전히 맞지가 않구나. 그런데 다음 그가 던진 말이 결코 앞의 말이 엉뚱한 말이 아님을 일깨워 주었다.

자취생: 오늘은 그녀가 만화방에 있을 것이다. 신난다. 물은 여전히 타이타닉이다. 하지만 머리를 감았다. 그러나 면도는 도저히 안되겠다.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면도를 했다. 음 깔끔해 보이는군. 거울 속 내 모습이 어제와는 다르다. 만화방에 갔더니 기대한데로 그녀가 있었다. 오늘은 만화방아저씨도 어딜 안가고 같이 있었다. 조금 어색했다. 내 분위기를 눈치챘는지 만화방아저씨가 자리를 비켜준다. 이 아저씨 어디가서 밥은 얻어먹겠군. 눈치가 빠르다.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밝지가 못하다. 또 안좋은 소리 들었나?

으이씨 내가 기껏 외어서 해준 말들을 그녀는 이상한 말이라고 했다. 아니 선현들의 주옥같은 명언들을... 이제 하지 말까 보다. 그치만 오늘은 뭘까? 하는 저 눈동자. 그녀의 기대를 저 버릴 수가 없다. 근데 어제는 안 외웠는데... 명언은 생각이 나는데 누가 한 말인지는 모르겠다. 문득 생각난게 어린왕자였다. 이런 말 했는지 안했는지도 모르지만... 하고나니 그럴싸하다. 오늘 왠지 어두운 빛이 감도는 그녀모습때문에 한마디 더해 주었다. "아직은 밝은 표정 잃지마세요." 그녀가 오랜만에 나와서 그럴까? 만화방에 예전처럼 늑대들이 많지가 않았다. 라면 끓여달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그녀한테 다시가 말을 걸 껀수가 생기지 않았다.

만화방총각: 밖에 괜히 나왔다. 엄청 춥다. 갈 곳도 없는데... 분위기 때문에 외투도 걸치지 못하고 나왔다. 빠른 걸음으로 추위를 피할 만한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간 곳은 정경이의 음반점 앞이었다. 정경이의 모습이 비추어지는 유리문이다. 그녀의 분위기가 슬퍼보인다. 내 마음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테지... 그게 아니다. 손님이 없는 음반점안에서 그녀가 글썽거린다. 그 모습에 용기를 내어 들어가 보았다. 그녀가 내 모습을 보더니 눈물을 훔친다. "응? 이병이구나. 요며칠 왜 안왔어?" 참내. 자기가 오지 말라고 해놓고선.. 하지만 그 답이 그렇게 듣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비록 울음섞인 말투였지만...

"술한잔 할래? 내가 한잔 살께"
"술? 지금? 가계는?"

그녀가 가계는 괜찮다는 듯... 날 이끌고 밖으로 나왔다. 가계문을 닫고 정경이와 나는 근처 작은 칵테일바로 들어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는 스트레이트 몇잔 들이키더니, 말이 없다. 한참 뒤 대뜸 내뱉은 소리는

"그가 새장가 간데."였다.
"요즘 찾아온 것도 이거 줄려고 했던 거였어."
정경이가 보여준 것은 청첩장이었다.
"누군데? 새장가는 또 뭐야?"
"내 전남편."
내가 뭘 잘못했다고. 꼭 나한테 따지듯 말했다.
"난. 그래도 날 못잊었다며 찾아온 그가 진심인 줄 알았는데...
결혼한다는 말을 못해서였다는 걸 오늘이야 알았어."
뭐야 그놈. 그냥 새장가 들려면 모른 척 가버리면 되지... 누구 놀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잘 가라.
정경이가 또 한동안 아무말 없다. 그냥 앉아서 조용히 몇잔 더 마셨다.
"일어서자."
정경이 눈치를 살피며 홀짝홀짝 하던 나는 그냥 아까 술집에 끌려 올 때처럼 또 끌려 나와야겠다. 시간은 생각보다 많이 흘러 있었다. 아홉시가 다 되었다.

정경이가 자기 집이 예근처인데 바래다 달랬다. 물론 바래다 주지. 암... 그녀 집은 근처의 그리 크지 않은 오피스텔이었다. 문 앞까지 왔다. 열쇠를 따고 정경인 "잘 가."라는 인사만 남기고 바로 문을 닫고 들어가 버렸다. 그 문 앞에 약간은 멍한 채 몇분간 서 있었다. 오늘 정경이가 자기 기분대로 날 대했다. 그렇지만 내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오히려 정경이가 안되어보였다. 그래 잘 갈께. 너도 잘 자라. 돌아갈려는데 문이 열렸다.

"안가고 있었네? 들어와서 차한잔 하고 갈래?"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러면 기분데로 뭔 일을 저지를 것도 같다.
"아니야. 만화방일 때문에..."
"만화방?" 아차 실수했다.
"아 저번에 말한 도서사업이라는게 만화방이야. 하하. 그럼 나 갈께."
등을 돌려 발걸음 떼었다.
아직 문을 닫지 않고 있는 그녀 방의 불빛이 오피스텔복도에 비치고 있다.
"이병아. 내일도 올거지?" 그녀의 그 말에 내 입술에 미소가 맺혔다.
일부러 고개를 돌리지 않고 손만 흔들었다.
"그래. 잘 자."
"내일 꼭 와야돼. 나. 지난 일년동안 너무나 외로웠었어..."

그녀의 독백같은 작은 목소릴 들었다. 뒤돌아 그녀한테 달려가고 싶었지만... 오늘 만화방에서처럼 어색한 후회를 하긴 싫다. 급히 만화방으로 갔다. 혜지씨는 카운터에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오는 모습에 뜨개질하던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올 때는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었는데...? 만화방안을 둘러보았다. 단골녀석이 아직도 있다. 만화책은 보지 않고 난로 옆 만화방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곤하게 자고 있었다. 만약 계속 있었다면 지금이 열시니까.. 여섯시간정도 만화방에 있었던게 된다. 단골녀석과 혜지씨가 같이 나갔다. 나가는 그 둘의 모습이 서로 아무말 없었지만 동화처럼 정답게 느껴진다.

백수아가씨: 단골녀석이 들어와서 한마디 하고 난 후로는 아무말이 없다. 나도 굳이 그를 불러 말시키고 싶지는 않다. 오랜만에 왔더니 만화책 볼 것도 많아서 좋네 뭐. 그런데 만화책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털실이나 가져올걸 그랬다. 뜨개질이나 하는건데... 단골녀석을 불렀다. 잠깐동안만 만화방을 봐 달라고 부탁했다. 집으로 털실을 가지러 갔다. 만화방에 돌아왔더니 녀석이 라면을 끓여 손님한분에게 갖다 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웃음짓게 한다. 내가 온것을 보자 다시 여기로 오지 않고 자기 자리에 가 앉았다.

막상 짤려니까 뭘 짜야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시작은 해보자 맘에 안들면 다시 풀면 되니까... 만화방안이 따뜻한게 아늑하다. 손님도 더 이상 들어 오지 않는게 뜨개질하기에는 너무나 좋은 환경이다. 그리고 녀석이 여기 있다는 느낌이 또한 좋다. 한참동안 뜨개질에만 열중했다.

목이 조금 아프다. 고개를 들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녀석이 갈 생각을 안하네? 녀석을 찾았다.푸하하..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예 이부자릴 깔아라 깔아. 기도하는 듯 두 손을 가슴에 얹고 의자에 기대어 녀석이 잠들어 있다. 이 털실처럼 푸근한 느낌으로 녀석이 만화방안에서 자고 있다. 곤한 녀석의 모습을 괜히 깨워 돌려보내기가 싫다. 다시 뜨개질을 시작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배가 고프다.

손님들이 하나 둘 나갔다. 아직 그는 일어날 생각을 안한다. 거의 열시가 되어서 이병씨가 돌아왔다. 늦어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그의 말투는 낮에처럼 어색하지는 않았지만 술냄새가 났다. 그가 단골녀석을 보더니 나보고 "깨울까요?" 라고 물어보았다. 저 녀석 깨우는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걸까? 만화방을 녀석이 부시시한 모습으로 나를 따라나왔다. 이병씨가 녀석한테 만화요금을 받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서 나는 일부러 빨리 걷지를 안했다. 녀석이 나를 지나쳐 앞서 가기를 바랬지만 녀석은 그러지 않았다. 신경이 쓰인다. 녀석의 뒷모습이 보고싶다. 고개를 돌려보았다. 녀석이 하품을 하다가 놀라 입을 손으로 가린다. 골목이 나뉘는 부분에서도 녀석은 아무말 없이 녀석의 골목 쪽으로 사라졌다. 아직 잠 덜깼나? 늦은밤 저녁도 안먹고 배는 고프지만 그냥 잠들어야겠다. 녀석이 오늘 한 말 때문에 괜히 다시 일어나 불을 켰다. 그리고 유치원 앨범을 꺼내 보았다. 그 앨범에 최혜지란 꼬마아이가 수줍은 듯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내가 아닌냥 그립다. 그 날 난 머리맡에 유치원 앨범을 놓아두고 잠이 들었다.
  
13편에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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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 이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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